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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국회의원의 연임 제한은 바람직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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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국회의원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최근 여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되었다. 야당이 새로 준비하고 있는 정강정책 초안에도 연임 제한의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하고, 여론 또한 늘 그랬던 것처럼 국회의원들에 대한 반감이 높으니,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조만간 3선 이상의 다선(多選)의원이 국회에서 ‘제도적으로’ 사라질 날이 올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흔치 않게 여야와 여론이 동의하는 ‘인기있는’ 사안이다.

국회의원의 다선 연임 제한 #정치신인에 대한 환상보다는 #연속성·전문성·대표성 걱정돼 #법 체계상 개헌사항으로 보여

기득권과 고인물이 삶의 곳곳을 지배하고 있고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신음하는 현실에서, ‘물갈이’가 시대의 덕목으로 생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국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 오래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 온갖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의원들의 연임을 제한한다는 것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돌파구이자, ‘정치 신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는 제도적 개혁 시도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충분한 진단과 토론, 그리고 고민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매우 중요한 제도적 개혁, 그것도 나라의 가장 중요한 대의제의 한 축인 국회가 구성되는 근본적 규칙을 바꾸는 것이 단순한 정치혐오나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선출직의 연임 제한(term limit)이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시장, 도지사, 구청장 등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지방자치법에 의해 그 재임을 3기로 제한받고 있고, 따지고 보면 단임제인 우리의 대통령직도 연임 규정의 제약을 받고 있는 셈이다. 매우 다양한 나라의 수반들이 이처럼 일반적으로 연임 제한을 받는 반면, 의회의 구성원인 의원들이 연임 제한의 대상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는 여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임 제한에는 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비용은 무엇보다 국회의 제도적 연속성과 일관성의 약화이다. 연속성과 일관성은 그 정의상, ‘참신성’이나 ‘정치신인’과는 양립할 수 없다. 의원 교체율이 100%인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만약 4년마다 모든 의원들이 교체되어 국회가 전면적인 리셋이 된다면 정책 토론과 입법추진의 유효기간은 4년에 불과할 것이며, 수백개의 정부부처와 관련 기관들에는 4년마다 모든 것들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악몽과 함께 4년만 버티면 된다는 희망을 함께 줄 것이다.

현실은 사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지난 21대 총선에서 의원 교체율은 58%에 이르렀고, 비교적 최근 총선에서 의원 교체율은 꾸준히 50%에 육박하여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연임 제한을 입법화한다면 의원 교체율은 물론 이보다 확실하게 높아질 것이다. 정치신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취지도 좋지만 이러한 문제들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연임 제한의 두번째 문제는 행정부에 대한 의회 전문성의 약화이다. 주지하다시피, 4년의 ‘임시직’인 국회의원들이 모인 국회가 행정부의 개별 부처들에서 수십년간 같은 업무를 수행해온 관료들에 비해 해당 사안을 파악하는 정책 전문성에 있어서는 애초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정책의 디테일을 모르는 의원이 1 년에 한 번 국정감사장에서 기관장에게 호통만 쳐대는 그림을 언론이 즐겨 그리지만, 그 이유는 사실 정보와 전문성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의원의 연임을 제한한다는 말은 이들이 국회에서 쌓은 경력과 성과와는 무관하게, 그리고 지역민들의 선호와는 무관하게 세 번만 임기를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의원들에게 특정 정책 영역을 파고들 인센티브가 사라질 것이며, 특히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임기에 이르면 지역 구민들의 이해를 굳이 대변할 인센티브도 사라질 것이다. 후자는 연임 제한의 세번째 문제로 ‘대표성의 문제’라 불러도 될 것이다.

법 체계의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의 공직선거법은 선거절차를 규정하는 법이지 선출직의 임기를 규정하는 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이 대통령의 임기와 연임 제한을 함께 규정하고 있고, 지방자치법이 단체장들의 임기와 연임 제한을 함께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국회의원들의 연임을 제한하는 조항을 넣는다면 그 임기가 규정되어 있는 헌법(42조)에 포함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다시 말해, 선거법 개정이 아닌 개헌 사항이라는 점이다.

세계 모든 의회들이 입법과정을 운용하는 가장 중요한 불문율은 선수(選數: seniority)에 따른 리더십이다. 조금이라도 국회에 더 오래 있었던 의원이 의장단을 맡고, 상임위원장을 맡아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구조인 것이다. 지역구민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오래 받은 것이 수치가 아니라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일이며, 거기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 리더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의원 개인의 리더십이 사라진 곳, 초재선 들과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3선의원들만 있는 곳에 남는 것은 강력한 정당 기율과 당파적 대립일 것이라는 점이 매우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