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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커플 이흥구 부부, 조국과는 서울 법대 '피데스 동지'

중앙일보

입력

이흥구 대법관 후보가 1990년대 사법고시를 합격했을 때의 모습.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1호 사시합격자였다. [중앙포토]

이흥구 대법관 후보가 1990년대 사법고시를 합격했을 때의 모습.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1호 사시합격자였다. [중앙포토]

신임 대법관 후보로 제청된 이흥구(57) 부산고법 부장판사를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은 2014년 저서『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이흥구 군'이라 불렀다. 조 전 장관은 그를 "법대 동기로 같이 잘 어울렸다. 정의감이 투철했다"고 기억했다.

이 후보 아내 김문희 판사도 피데스 출신

1997년부터 부산 지역 법관으로 근무했던 이 부장판사에 대한 기록은 흔치 않다. 조 전 장관의 저서는 이 부장판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다.

이흥구와 조국의 인연  

조 전 장관과 이 부장판사의 인연은 책에 나온 것처럼 깊은 편이다. 이 부장판사는 조 전 장관이 편집장을 맡았던 서울대 법대 편집부인 'Fides(피데스)'의 핵심 멤버로 함께 활동했다. 이 부장판사의 아내인 김문희(55) 부산지법 서부지원장도 같은 피데스 출신이다. 피데스는 공개 써클이었던 만큼 구성원 중에 학생운동에 열심인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이흥구·김문희 커플은 운동권 커플로도 유명했다.

당시 피데스에 잠시 몸을 걸치는 법대생들은 많았다. 하지만 조 전 장관과 이 부장판사, 김 지원장처럼 꾸준한 활동을 하는 회원은 손에 꼽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부장판사의 서울대 법대 3년 후배인 김 지원장은 이 부장판사가 1985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을 당시 옥바라지를 하다 인연을 맺어 결혼을 했다. 피데스 출신의 한 법조인은 "옥바라지 전에 김 지원장은 이 부장판사의 얼굴만 알았다. 둘이 정신적으로 통했던 것 같다"고 했다.

다시 주목받는 피데스 인맥 

'피데스'는 조 전 장관이 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에 올랐을 때 처음 주목을 받았다. 피데스 선·후배들은 다른 써클보다 더 끈끈한 편이어서 '피데스 인맥'이란 말이 나왔다.

조 전 장관은 대학교 3학년 시절 피데스 발간사에서 "(피데스는) 서울대 법대 유일의 합법적 표현매체"라 불렀다. 조 전 장관이 구속됐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의 리더격인 백태웅(58) 현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도 피데스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백 교수는 검찰이 조 전 장관 수사를 시작하자 "인사청문회 전까지 수사자료를 봉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조국 전 장관의 변호를 맡고있는 피데스 출신 이광범 LKB파트너스 변호사.[중앙포토]

조국 전 장관의 변호를 맡고있는 피데스 출신 이광범 LKB파트너스 변호사.[중앙포토]

현재 조 전 장관의 변호를 맡고있는 LKB파트너스의 이광범(61) 변호사도 피데스 출신이다. LKB파트너스는 조 전 장관은 물론 이재명과 김경수 지사의 변호를 맡아 '여권의 변호인단'이라 불린다. 민중기(61) 현 서울중앙지방법원장도 피데스 멤버였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부장판사를 포함해 모두 진보 성향이 뚜렷한 인물들"이라 설명했다.

대림동 반지하 대학생활  

통영이 고향인 이 부장판사는 여유로운 가정형편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통영 특산물인 굴 캐는 일을 하셨다. 이 부장판사는 서울대에 입학한 뒤에도 월세를 아끼려 신림동이 아닌 대림동 반지하에 살았다. 당시로서는 꽤 큰 돈인 5만원 차이였다.

그와 인연이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는 "많은 법대생들이 이 부장판사의 그 집을 들락거리며 숙식했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까지 됐지만 이 부장판사는 평소 진중하고 온건한 성격을 지녀 후배들이 따랐다. 그에게 사법시험을 권유한 것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원희룡 제주지사였다고 한다.

조국 전 장관, 이흥구 대법관 후보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원희룡 제주지사의 모습,[연합뉴스]

조국 전 장관, 이흥구 대법관 후보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원희룡 제주지사의 모습,[연합뉴스]

이 부장판사와 법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도진기(53) 전 부장판사는 "이 부장판사가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사실은 이번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 성향을 드러내는 분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 부장판사의 아내인 김 지원장의 성격은 반면 털털하고 화끈한 편이라고 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지원장은 대학 때부터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부부의 성격이 반대라서 함께 결혼해 사는 것을 신기해하는 판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김 지원장은 2015년~2019년까지 5년 연속 부산변호사회가 뽑은 우수법관으로 선정됐다. 부산변호사회가 법관 평가를 실시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를 잘 아는 현직 법관은 "밤을 새며 일하는 스타일이다. 남편이 대법관 후보로 오르기 전까지 차기 여성 대법관 후보로 거론됐었다"고 말했다.

1984년 서울대 법대 잡지 '피데스'의 편집장을 맡은 조국 전 장관이 쓴 발간사. [중앙포토, 서울대도서관]

1984년 서울대 법대 잡지 '피데스'의 편집장을 맡은 조국 전 장관이 쓴 발간사. [중앙포토, 서울대도서관]

대법원 진보 쏠림에 대한 우려  

이 부장판사의 성품에 대해선 그를 아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법조인들 모두 높은 평가를 한다. 다만 많은 이들은 "이념 성향은 별개로 하더라도…"란 단서를 붙인다. 성향은 확실한 인물이란 것이다.

진보 성향의 판사모임인 국제인권법 연구회에서 활동했던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부장판사는 대법관이 되어 선택을 요구받는 사건이 왔을 때 물러서지 않을 인물"이라 전망했다. "대법원의 진보로 너무 쏠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법관은 국보법 위반 이력 1호 사시 합격자가 된 뒤의 언론 인터뷰에서도 "운동권 출신이 자연스럽게 현실에 흡수돼 가는 인상으로 비쳐져서는 안될 것"이란 말을 했었다. 한 고위 법관은 "이 부장판사의 스타일이라면 국회 청문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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