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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집값 해법, 현실에서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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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서울 가까이서 살면서 앞서가는 문화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오직 서울의 십 리 안에서 거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 오세진 편역)

다산 정약용 “서울 가까이 살아라” #비강남권 교육·인프라 개선해야 #강남 집 쉽게 팔 수 있도록 하고 #수요 있는 곳에 공급하는 게 순리

요즘 얘기가 아니다.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폐족이 된 가문을 유지하기 위한 훈계지만 실학자다운 판단을 엿볼 수 있다.

편지에 나오는 서울을 ‘강남’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다산이 말한 ‘문화의 안목’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지식과 교육이다. 지식과 교육은 좋은 일자리와 권력으로 가는 기초가 된다. 거주하면서 재산 증식도 할 수 있다.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강남 아파트에 집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강남 집값 문제의 해법 찾기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강남이 아니더라도 문화적 안목이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강남권에 두 채의 집이 있는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집을 팔지 않았다고 이런저런 비판을 받았다. 막상 그 입장이 됐을 때 쉽게 집을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구나 중과세에 걸려 수억 원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를 비난하기보다 강남 집을 쉽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정책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임대주택을 등록시켜 임대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주요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러 혜택을 줬다. 하지만 집값이 계속 오르자 임대사업자는 부동산 적폐가 됐고 혜택이 축소됐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중 최악은 임대사업자와의 신뢰를 깬 것이다. 당근책을 내놓아도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 뒤집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서소문 포럼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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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소규모 가로정비사업이나 도심 재생으론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거지를 만들 수 없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해법이다. 정부는 뒤늦게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건축 단지에 용적률을 최고 500%로 올려주고 용적률 상승으로 얻는 추가 이익의 90%를 환수하겠다고 한다. 마치 10%의 이익을 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용적률이 높은 아파트는 그만큼 대지 지분이 줄고 과밀해진다. 복잡한 제도 만들지 말고 현 수준에서 빨리 재건축·재개발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이미 이익 환수 장치는 다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중산층도 선호하는 임대주택을 짓는다고 하는데 중산층이라면 자가 보유를 할 수 있게 정책을 펴야 한다. 지금 15억원이 넘는 주택은 아예 대출 대상이 아니다. 대출 규제는 원래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수요 억제를 위해 과잉 규제를 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와 외국어고 등 특목고를 폐지하는 것도 강남 집중 현상을 가속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주위에도 자식 교육을 위해 강남에 전세로 들어가는 사람이 여럿이다. 외고나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지 말고 해당 구(區)에 거주하는 학생을 절반 이상 선발하면 어떤가. 정부가 2025년 본격 시행한다는 고교학점제가 활성화되려면 학생들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도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때 지역에서 허브 역할을 할 선도 학교가 필요하다. 자식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무리해서 강남 가지 않도록 해야만 강남 집중 현상이 완화된다.

비강남권에도 충분한 인프라 투자를 해야 한다. 삼성동·잠실 일대에 대규모 마이스(MICE) 시설을 조성하면서 강남 집값 잡겠다는 것은 모순된 일이다. 그런 시설을 구로디지털단지 같은 곳에 조성하면 어땠을까.

수도권 집중도 해결 과제다. 지방국립대 육성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 뜨거운 감자인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 자칫하면 서울~세종이 연담화하면서 다른 지역의 사람과 자원을 흡수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 정의를 실현해 나가겠다.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집값 오름세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상승세가 둔화할 수 있지만 부동산 가격 안정을 말하기는 이르다. 주거 정의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외면하면 곤란하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해법은 공허하다.

김원배 사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