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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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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문재인 대통령은 확실한 ‘야당 복(福)’이 있는데, 보통 복이 아니라 천복(天福)이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민생당 의원 시절인 지난해 11월 초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공관병 갑질 의혹의 당사자인 박찬주 전 대장을 영입한 데 이어 영문을 알 수 없는 단식투쟁으로 당과 자신의 발목을 뒤틀고 있었다. 5개월 뒤 미래통합당은 무너졌다.

그러던 통합당의 위상이 3개월 만에 급반전됐다. 최근엔 통합당의 지지율이 34.8%로 민주당(35.6%)과 1%p도 차이 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왔다. 통합당에선 “골든크로스가 눈앞”이란 소리도 들린다. 그런 조사 결과가 기이하게 느껴지는 건 통합당이 그동안 보여준 것이라곤 어수선함 뿐이기 때문이다. 과장하면 ‘윤희숙의 5분’이 전부였다.

노트북을 열며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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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원구성 협상과정에서 7개 상임위원장 자리와 국정조사 일부 수용 제안을 걷어찬 통합당이 선택한 건 ‘항의 후 표결 불참’이라는 무기력이었다. 통합당에선 정권 말 쏟아지는 의혹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의원도, 상임위에서 정책의 허점을 물고 늘어지는 의원도 찾아보기 어렵다. 상임위에서 온종일 따질 수 있는 주제를 5분짜리 기자회견으로 때우곤 했다. ‘수영 월북’으로 군이 발칵 뒤집힌 날도, 당정이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뺏겠다고 다짐한 날도 통합당은 더뎠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외교·산업 등 대부분의 국정 영역에서 풀리는 일이 없음에도 그동안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 온 것은 ‘야당 복’에 기댄 바 크다. ‘야당 복’은 그저 행운이 아니다. ▶공감 능력 부재▶정보력과 판단력 부재▶수권 의지 부족▶계파 이익 우선▶순발력 저하▶표현력 미달 등 통합당의 복합적 역량이 발현된 결과다.

그럼에도 야당의 팔자가 변한 건 굴러온 ‘여당 복’ 덕이다. 176석 거여는 7월 임시국회에서  토론과 조정을 완전히 생략한 채 속도전의 진수를 보였다. 9월엔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등을 다시 밀어붙일 기세다. 역시 공룡 경찰 탄생에 대한 우려에는 눈을 감고 있다. 자신들이 뽑아 임기를 보장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에게 린치를 가하는 모습과 잇따라 터진 광역단체장의 성추행 사건과 대응, 청와대 참모진의 다주택 논란 등에서 드러난 오만과 이중성에 고개를 젓는 이가 급증하고 있다.

일방처리를 끝낸 뒤 한판승을 거둔 선수마냥 주먹을 불끈 쥐는 여당 원내대표의 모습을 보면 통합당에 떨어진 여당 복이 백일몽이 아니라는 걸 믿게 된다. ‘야당 복’으로 버텨온 민주당이 돌연 휘청이듯 ‘여당 복’으로 통합당이 보게 된 장밋빛도 순간 잿빛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민은 무섭다.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