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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선진국은 코로나 백신 입도선매 한창인데 우리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83)

코로나19 펜데믹의 위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금만큼 백신의 중요성을 절박하게 느껴본 적이 과거에 있었나 싶다. 그런데 근년 지구촌에 터무니없는 백신 괴담이 유행했었다. 국내에서도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와 ‘안예모(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가 괴담을 주도했다.

자연주의를 표방한 엄마의 모임이 논란의 발단이다.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거나 백신을 맞히는 대신 민간요법으로 치료하거나 자연치유를 바라는 모임이었다. 즉 ‘병원이 어린이들에게 지나치게 약물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면역반응이 일어나 치유되거나 간단한 민간요법으로도 나을 수 있는 병을 과잉진료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과잉진료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백신 전반에 연결 짓는 건 옳지 않다.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은 홍역, 수두, 디프테리아, 백일해,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 독감 등은 치명적이지 않으며 자연치유로 면역을 획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어느 한의사가 ‘안아키’라는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 운동을 주도했다. 허무맹랑한 소리에 한의사협회가 이를 고발해 사이트가 폐쇄됐고 운영자인 한의사는 처벌 됐다.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은 홍역, 수두, 디프테리아, 백일해,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 독감 등은 치명적이지 않으며 자연치유로 면역을 획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사진 pixabay]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은 홍역, 수두, 디프테리아, 백일해,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 독감 등은 치명적이지 않으며 자연치유로 면역을 획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사진 pixabay]

얼핏 들으면 약물 남용이나 과잉진료가 횡행하는 작금에 일리 있는 말로 들리나 그렇지 않다. 백신과 과잉진료하고는 관계가 없다. 백신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전에는 지구촌에 매년 수십~수백만 명의 영·유아가 사망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나서 사망률이 99~100% 감소했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어린이에게 11가지 백신을 필수적으로 예방접종 하는 게 백신 프로그램이다. B형간염과 결핵(BCG),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DTaP), 폴리오(IPV),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폴리오(DTaP-IPV),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MMR), 일본뇌염, 수두, 파상풍·디프테리아(Td),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Tdap), 뇌수막염 등의 예방주사이다. 몇 가지는 동시에 혼합 주사하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백신 괴담은 역사가 깊다.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세계적 학술지 ‘란셋(Lancet)’에 ‘홍역·볼거리·풍진을 막는 MMR 백신이 자폐증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면서부터다. 당시 의학계는 발칵 뒤집혔고 이에 대한 반박 논문이 연일 쏟아졌다. 대규모 역학연구에서 MMR 백신과 자폐증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2014년 8월에는 미국 랜드연구소와 미국 보스턴 아동병원 등 공동연구팀의 메타 연구가 ‘소아과학’에 발표하면서 MMR 백신이 어린이의 자폐증 발병과 관련이 없음을 밝혔다.

또 이 연구는 MMR, DTaP, Td, Hib 및 B형간염 백신이 소아 백혈병과도 관련이 없다는 것을 동시에 알아냈다. 이런 연구기 속출하자 논문 저자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스스로 해당 논문이 거짓이라며 오류를 인정하고 논문을 철회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백신과 과잉진료는 관계가 없다. 백신이 도입되기 전에는 지구촌에서 매년 수십~수백만 명의 영·유아가 사망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나서 사망률이 99~100% 감소했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사진 pixnio]

백신과 과잉진료는 관계가 없다. 백신이 도입되기 전에는 지구촌에서 매년 수십~수백만 명의 영·유아가 사망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나서 사망률이 99~100% 감소했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사진 pixnio]

그런데도 백신 괴담은 전 지구촌에 퍼졌다. 한번 퍼진 헛소문은 지금의 엉터리 건강식품과 같이 불사조처럼 번졌다. 유명인들도 이를 유포하여 대중을 선동했다.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 플레이보이지 모델 제니 매카트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이 그들이다. 세 사람 모두 공개석상에서 “홍역백신이 유아 자폐증 발병 확률을 높인다”고 언급한 것이 백신에 대한 불신감을 증폭했다.

이런 불신이 퍼지자 과거 크게 줄어들었던 홍역이 2000년대 들어 다시 창궐했다. 홍역은 백신을 맞으면 95% 이상 예방되는 질병이다. 2010년에는 미국에 홍역이 거의 사라져 완전퇴치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백신 괴담이 돌고 나서부터 접종을 소홀히 해 지구촌에 13만 6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괴담의 대가치고는 가혹한 결과였다. 작년에 국내에도 홍역이 발생했다.

백신 괴담은 WHO가 선정한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한번 잘못된 연구결과가 얼마나 파장이 크고 생명력이 질긴지 실감하는 대목이다. 의약품은 아니지만, 타산지석이 있다. 사카린이다. 한 연구자의 어설픈 연구가 거의 백 년 동안 탈 없이 먹어오던 사카린을 발암물질이라 발표하면서 유통이 금지된 이력이 있다. 최근에 명예회복이 됐다. 이제는 사카린을 항암물질로 예찬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50세 정도였던 인류의 수명이 근년 80세 안팎까지 늘었다. 그 주요 원인이 백신, 항생제, 정수기의 개발을 든다. 특히 백신이 사망률 감소와 인구증가에 절대적으로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백신 괴담이 대중들에게 먹혀 들였다니 정말 인간의 심성이 불가해다.

코로나19 백신은 아직 시험 중이지만 선진국이 막대한 자금으로 입도선매, 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자기 인구보다 많은 물량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사진 pixabay]

코로나19 백신은 아직 시험 중이지만 선진국이 막대한 자금으로 입도선매, 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자기 인구보다 많은 물량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사진 pixabay]

마지막으로 백신이 얼마나 안전하게 개발되는지에 대해 한마디. 먼저 개발 초기 병원균으로부터 적당한 항원을 조제하고 이를 동물실험에서 안전성을 확보한 다음, 인체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행한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백신 투여량에 따른 안전성 및 면역반응을 시험하는 1상, 인원을 늘려 추가 안전성 및 면역원성(백신의 효과)을 확인하는 2상, 최종적으로 다수를 대상(수천~수만)으로 확실한 효과 및 안전성을 검증하는 3상까지 진행하여 허가가 난다. 이런 단계를 거친 뒤에도 백신의 부작용을 모니터링하며 대규모 집단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의 효과 및 안전성을 재차 검증하는 단계까지도 거친다.

간혹 백신의 종류에 따라서는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은 가혹할 정도의 검증을 거쳐 허가되니 안심해도 문제가 없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도 곧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사정이 급하다 보니 졸속으로 허가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다만 우리가 아닌 외국에서 백신이 먼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걸린다. 아직 시험 중인데도 선진국이 막대한 자금으로 입도선매, 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자기 인구보다 많은 물량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영국의 한 의약 시장 조사업체는 2022년 1분기까지 세계 총생산 규모는 10억회 분량 미만일 것이라면서, 백신을 선구매하지 않은 국가는 백신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는 어떠한지가 궁금하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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