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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마지막 독재자'에 반기…벨라루스 시위 3000명 체포, 1명 사망

중앙일보

입력

‘유럽 마지막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대통령. AP통신=연합뉴스

‘유럽 마지막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대통령. AP통신=연합뉴스

한 대통령이 26년째 집권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 벨라루스에서 대선 결과에 불복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틀 만에 시위대 3000명 이상이 체포됐고 1명이 숨졌다.

1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벨라루스 수사위원회는 전날 시위에 참여한 3000여명을 소요 및 경찰 폭행 혐의로 체포해 구금하고 있으며, 이들이 징역 8~15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대통령은 1994년 이래 26년째 벨라루스 대통령직을 맡고 있다. 6번째 연임에 도전하면서 이번 대선에서는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와 맞붙었다. 야권은 승리를 예상했지만, 개표 결과 루카셴코 대통령이 80.08%의 득표율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 지지자들은 반발했다. 출구 조사 결과가 나온 9일 밤부터 수도 민스크를 비롯한 비텝스크, 브레스트 등의 도시들에서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밤새 이어졌다.

야권은 선거 조작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티하놉스카야 대선캠프 측은 투표 조작 의혹이 불거진 개표소에서의 재검표를 요청하는 한편, 정부 측에 평화적 정권 이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 개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야권 인사들의 후보 등록을 방해하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을 이유로 선거 감시단 수를 제한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벨라루스 야권 대선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 EPA=연합뉴스

벨라루스 야권 대선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 EPA=연합뉴스

티하놉스카야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내 두 눈으로 봤다. 과반은 우리였다”면서 “정부 당국은 정권을 평화적으로 우리에게 이양하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 측이 선동 혐의 등을 들어 야권 인사를 자의적으로 체포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집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폴란드나 영국ㆍ체코 공화국 등이 이번 시위의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며 모든 ‘불법 집회’에 강경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10일에도 집회는 이어졌다. 이날 오후 7시부터 민스크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는 재검표와 대통령 하야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가디언은 시위를 조직하거나 주도하는 명확한 단체는 없었다고 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텔레그램을 이용해 시위 전략을 논의하거나 보호 장비ㆍ구급상자 등을 배분했다.

10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10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경찰은 고무탄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섰다. 벨라루스 당국은 이날 대치 과정에서 집회 참가자 1명이 경찰을 향해 폭발물을 던지려 시도하다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 근현대 정치를 전공한 데이비드 마플스 앨버타 대학 교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루카셴코 집권 이래 최대의 시위”라면서 “이번 선거는 루카셴코가 치른 여느 선거와는 다르다. 나라 전체가 변화에 찬성하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벨라루스를 향해 대선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을 것과 함께 야권 지지자들을 향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우르술라 폰 데어 라에엔 EU 집행위원장은 “평화적인 시위대를 향한 가혹함과 폭력적인 탄압은 유럽에 설 자리가 없다”고 경고했다.

10일 민스크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팔짱을 끼고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0일 민스크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팔짱을 끼고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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