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늘 야근” 통화 30분뒤 ‘펑’··· 베이루트 울린 실종자들 사연

중앙일보

입력

가산 하스루티(59)는 레바논 베이루트항 곡물 저장고(사일로)에서 38년간 일해 온 성실한 가장이었다. 아침 출근할 때마다 그의 안전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나보다 가족이 더 걱정”이라고 말하던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베이루트항 사일로서 38년 근무한 성실 가장 #폭발 30분전 "오늘 밤 야근" 마지막 통화 #느려터진 구조작업에 실종자 직접 찾아나서 #딸 "작별 인사 나눌 기회 없어 … 희망 안버려"

지난 4일 레바논 베이루트항에서 발생한 폭발 참사로 실종된 가산 하스루티(오른쪽)와 그의 아내가 함께 찍은 사진. 그는 베이루트항의 사일로에서 38년간 일했다. [트위터 캡처]

지난 4일 레바논 베이루트항에서 발생한 폭발 참사로 실종된 가산 하스루티(오른쪽)와 그의 아내가 함께 찍은 사진. 그는 베이루트항의 사일로에서 38년간 일했다. [트위터 캡처]


지난 4일 오후 5시30분쯤(현지시간)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곡물을 실은 배가 오늘 밤에 도착해서 사일로를 떠날 수가 없다. 사일로에서 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통화를 마지막으로 하스루티는 가족과 소식이 끊겼다. 

하스루티 부부가 통화를 마친지 30분여분 지난 오후 6시8분쯤 베이루트항에선 도시를 강타한 대규모 폭발이 발생했다. 하스루티가 일하던 사일로 옆 창고에 6년간 보관돼 있던 질산암모늄 2750t이 폭발한 것이었다. 이 참사로 지금까지 158명이 숨지고, 6000여 명이 다쳤다. 하스루티의 일터인 사일로도 폭발 직후 무너져 내렸다.  

10일 기준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는 수십 명이다. 폭발 직전까지 베이루트항에서 일했던 하스루티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와 한 팀으로 일하던 동료 6명도 함께 실종됐다. 10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하스루티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 4일 레바논 베이루트항에서 발생한 폭발 참사로 실종된 가산 하스루티. [트위터 캡처]

지난 4일 레바논 베이루트항에서 발생한 폭발 참사로 실종된 가산 하스루티. [트위터 캡처]


폭발 당일 하스루티의 가족은 그의 사진을 들고 밤새도록 여러 병원을 헤매고 다녔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가 사망자나 부상자 중에 있는지 물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스루티의 가족은 그와 그의 동료 6명이 사일로 아래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있다. 또 그들이 생존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애타는 가족은 레바논 당국의 구조 작업 속도를 지켜보며 속이 타들어 간다. 하스루티의 가족은 로이터통신에 “당국의 구조 작업이 너무 느리고 체계적이지 못해 그들을 구조할 기회를 잃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가족은 “당국에 폭발 당시 그가 있었던 정확한 위치를 알려줬는데도 구조 작업이 (폭발한 지) 40시간이 지나서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스루티의 생사를 알 길이 없는 가족은 매일 집에 모여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가족은 “당국이 구조 상황 소식도 잘 전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스루티의 아들 엘리 하스루티(35)는 "실종된 사람들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다"며 애타는 심정을 호소했다.

하스루티의 가족이 지난 9일 집에 모여 그의 소식을 기다리며 TV를 시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스루티의 가족이 지난 9일 집에 모여 그의 소식을 기다리며 TV를 시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결국 실종자 가족들은 당국의 느린 구조작업을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병원과 무너진 건물들을 오가며 실종자를 찾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레바논 국민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정부를 대신해 직접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장기간의 경제난 여파로 레바논 당국의 구조 작업은 느리고 비효율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응급 요원들이 도착해도 구호 장비가 부족한 경우가 다반사라고 외신은 전했다.

그의 딸 타티아나(19)는 소셜미디어(SNS)에 실종된 아버지의 사진과 글을 올리고 있다. 혹시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연락을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다. 그는 “아버지는 같은 사일로에서 40년 가까이 일할 정도로 자기 일에 헌신했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남을 돕는 사람이었다”며 그리워했다. 

체념과 희망 사이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와 동료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