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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백신과 산소마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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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지난 6월 미국에서 생명공학 전문가와 글로벌 제약사가 함께하는 바이오디지털2020 행사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 식품의약처(FDA)의 피터 마크스 박사가 한 말이다. “코로나19 백신은 비행기의 산소마스크와 같다.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내가 먼저 쓰고 그다음에 남들을 돕는 거다.” 그러니까 생산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 개발한(혹은 확보한) 국가가 먼저 접종을 마친 뒤 다른 나라를 도와주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백신 개발이 요원해 보이던 때라 다들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젠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장까지 연내 혹은 연초에 백신이 나올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백신 확보가 눈앞에 닥친 일이 되자 ‘산소마스크’ 이야기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 부적절한 비유였다는 비판과 함께 말이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글로벌 아이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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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사실상 ‘백신 민족주의’에 대한 변명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31일 트럼프 대통령은 대형 제약업체와 21억 달러 규모의 백신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일단 개발되면 미국을 위해 1억 명 분이 확보된다고 했다. 문제는 이러지 못하는, 다른 나라가 산소마스크를 다 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들이다. 선진국의 건장한 청년과 저개발국의 기저 질환자 중 백신은 누구에게 더 시급한 것일까. 미국외교협회 토머스 볼리키 박사는 “산소마스크는 일등석과 이코노미석에 다 있지만, 백신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둘째, 이렇게 해서 효과를 내겠느냐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백신으로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다시 나라 문을 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웃에 아직 산소마스크를 쓰지 못한 나라가 많다면 면역 효과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셋째, 국제정치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백신이 없는 나라는 있는 나라와 불균형한 관계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필리핀이 그렇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확진자가 급증하자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전화해 백신을 주면 남중국해를 양보할 수 있다는 뜻까지 밝혔다. 이런 일이 지구 어느 편에서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애에 기반을 둔 백신 강대국들의 협력이다. 하지만 이를 이끌 세계보건기구(WHO)는 무력해 보인다. 백신을 평등하게 나눠 갖자고 산하에 만든 기관(COVAX)엔 중국·인도·미국이 가입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멀스멀 퍼지고 있는 ‘백신 민족주의’가 코로나19보다 더 막기 힘든 바이러스가 될까 걱정이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