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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집값 상승 진정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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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동산 상황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문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주택 처분 소동을 벌인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개편은 민정수석 등 3명에 그쳤다. 정작 부동산 실패에 책임져야 할 청와대 정책라인과 실무를 담당하는 각료들은 바꾸지 않았다. 부동산 정책을 비롯한 국정 운영 기조를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파악에 끝없는 땜질 정책 #청 수석 3명만 교체…국정 기조 개선 의지 없어

문 대통령은 “주택 불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전방위적인 대책을 마련했다”며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세제개혁으로 투기 수요를 차단했다”고 했다. 마치 부동산 정책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평가한 셈이다. 이를 접한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참모가 이런 식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실은 어떤가. 부동산 대책을 23차례나 쏟아낸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값은 52% 뛰었고,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56주 연속 상승했다.

굳이 수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구가 집중한 수도권, 특히 서울 집값이 지난 3년간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은 누구나 체감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있다”고 말하면 도대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문 대통령은 또 “실수요자들을 위한 획기적인 공급 대책을 마련했고, 임차인의 권리를 대폭 강화했다”고 평가했지만 이 또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고밀도 재건축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임대주택 비율이 과도해 재건축을 포기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임대차 3법’ 역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임대 기간을 2+2년으로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제 시행의 부작용으로 전셋값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주택 보유자와 무주택자,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커지는 것을 정치권과 언론 탓으로 돌린 것도 부적절한 인식이다. 남 탓을 하기 전에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진솔한 유감 표명을 먼저 하는 게 순서다. “보유세 부담을 높였지만 다른 나라보다는 낮다”는 설명도 타당하지 않다. 세금은 예측 가능해야 마땅한데, 징벌적 세금폭탄을 투하해서는 국민이 안정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설치 구상도 우려스럽다. 그간 23차례에 걸쳐 수많은 규제를 쏟아내고도 또다시 규제의 칼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의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대목에선 부동산을 경제 문제가 아닌 현 정부의 정책 이념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더 늦기 전에 국민을 볼모로 한 정책 실험을 접고, 수요와 공급에 따른 자유시장 원리에 순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