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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해 복구 시급한데 당장 쓸 돈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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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국을 휩쓴 물난리로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이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다. 피해가 커지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당정 협의를 열어 긴급 복구 지원을 위한 추경 편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야당도 필요할 경우 추경 편성에 반대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정부는 일단 예비비 긴급 투입으로 대처한다는 계획이지만 내부적으로는 4차 추경 편성을 위한 실무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해 네 차례 추경 편성은 1961년 이후 59년 만의 일이다.

코로나로 예비비 바닥, 4차 추경 급부상 #“재정 쌓아 두면 썩는다”던 호기는 어디로

수해가 심각한 상황이라 추경 편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예비비가 있긴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으로 2조원도 채 남지 않은 상태라 효과적 대처에는 역부족이다. 필요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정부와 정치권이 신속한 추경 처리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예산은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 수해 극복을 위한 추경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서라도 재정이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낭비의 요소는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세 차례에 걸쳐 60조원 가까운 추경이 편성됐다. 늘어나는 국채 발행으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암묵적 마지노선인 40% 선을 넘겨 43.5%로 역대 최고 수준이 됐다. 이런 속도로 가면 곧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문제는 현 정부 들어 늘어난 나랏빚의 상당 부분이 불요불급한 선심성·현금성으로 낭비됐다는 점이다. 여당은 총선을 앞두고 정부를 압박해 소득 하위 70%에게만 지급하려던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전 국민 지급으로 바꿨다. 일자리 예산의 상당 부분은 정책 효과를 보여주기 위한 단기 일자리 확대에 쓰였다. 일단 쓰고 보자는 태도는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경쟁적으로 코로나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자연재해 대비용 재난관리기금이나 재해구호기금을 헐었다. 그 결과 대부분 지자체의 재난기금이 바닥나 막상 일이 닥치자 신속한 대응 대신 중앙정부의 지원만 바라보는 형편이 됐다.

지난해 말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확장 재정 과속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곳간에 재정을 쌓아 두면 썩어버리기 마련”이라며 호기를 부렸다. 그러다 불과 몇 달 만에 코로나19와 자연재해 등을 연거푸 맞으면서 빈 곳간을 걱정하게 됐다. 앞으로 재정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 극복과 한국판 뉴딜 사업 등 대규모 예산이 들어갈 곳도 수두룩하다. 그 과정에서 경제 효과가 낮은 낭비적 요소는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재정 악화를 방치했다가는 진짜 써야 할 곳이 생겼는데 곳간이 바닥나 쩔쩔매는 난맥이 벌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