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 이어 태풍 ‘장미’ 경남 상륙…수재민들 ‘엎친데 덮친 격’ 한숨

중앙일보

입력 2020.08.10 17:45

업데이트 2020.08.10 23:27

지난 9일 오후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상인들과 주민들이 섬진강 범람으로 침수된 상가를 복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9일 오후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상인들과 주민들이 섬진강 범람으로 침수된 상가를 복구하고 있다. [뉴시스]

10일 오전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김유열(58) 상인회장이 "침수 피해 복구에만 열흘 이상이 걸릴 텐데 또 태풍이 온다니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수마(水磨)가 할퀸 자리엔 흙탕물이 범벅이 된 가재도구가 뒹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5호 태풍 '장미(JANGMI)'가 올라온다는 소식에 복구작업에 나선 사람들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황강변인 경남 합천군 쌍책면 건태마을에서 한우 130마리를 키우는 정성철(56)씨는 태풍 북상 소식에 이날 오전 트랙터를 동원해 수해로 죽은 소 20마리를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정씨 부부는 "3분의 2 정도 물에 잠긴 주택은 벽이 무너지고 흙탕물이 찼는데도 일손이 없어 손을 못 대고 있다"며 태풍 '장미' 북상에 또다시 피해를 볼까 걱정했다.

10일 태풍 장미 북상으로 부산항 5부두 관공선부두에 많은 배들이 피항에 있다. 송봉근 기자

10일 태풍 장미 북상으로 부산항 5부두 관공선부두에 많은 배들이 피항에 있다. 송봉근 기자

비행기와 선박 발 묶인 제주 

 태풍 '장미'가 이날 제주 동쪽 해상을 지나 경남을 관통하면서 남부 지방에 많은 비를 뿌렸다. 가장 먼저 태풍 영향권에 들어간 제주에선 항공기 22편이 무더기 결항했고, 선박들이 발이 묶였다. 여객선 역시 모두 결항했다. 제주공항은 항공기 결항 전 제주를 떠나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높은 파도로 인해 해수욕장은 모두 통제에 들어갔다. 그나마 '장미'가 제주에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세력이 약해짐에 따라 큰 침수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제주지방기상청은 이날 오후 1시를 기해 제주 전역에 내려졌던 태풍주의보를 해제했다.

 태풍 '장미'는 제주를 지나 이날 오후 2시 50분께 경남 거제도 남단에 상륙했다. 경남에 상륙하면서 태풍 '장미'는 급격히 세력이 약해졌다. 최근 집중 호우로 피해가 컸던 부산 경남 지역은 태풍 '장미'가 관통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지만 10일 오후 5시 소멸하며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풍 영향으로 이날 김포에서 출발해 오전 8시 30분 김해공항 도착 예정이던 제주항공 7C202편을 시작으로 오후 2시 기준 국내선 63편이 사전 조치로 운항이 취소됐다. 또 부산항에서 선박 650여척이 피항했고 부산과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 입출항도 통제됐다.

 울산에선 오후 3시부터 태풍의 영향권에 들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면서 선박들이 일제히 대피했다. 울산 지역엔 지난 7일부터 이틀간 하루 평균 11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리면서 지반이 약화해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커지자 울산시는 이날 오전 긴급 점검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태화강 유역 댐 역시 만수위가 돼 월류도 시작되자 태화강변 등 공영주차장 시설물을 높은 지대로 옮기기도 했다. 중구 성남 둔치 공영주차장은 침수 우려로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제5호 태풍 ‘장미’가 북상하고 있는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구례여중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주택 침수로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이 점심을 먹고 있다. [뉴스1]

제5호 태풍 ‘장미’가 북상하고 있는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구례여중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주택 침수로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이 점심을 먹고 있다. [뉴스1]

전국 곳곳에서 이재민 발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1일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로 이날 오후 9시 기준 전국 11개 시·도에서 총 7274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발생한 데 이어 태풍 장미 영향권에 들자 하천 범람에 따른 주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주민 대피를 하도록 했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섬진강 인근 곡성읍·입면·오곡면 주민 954명이 체육관과 인근 고등학교로 피신했다. 구례읍 등에서도 주민 563명이 중학교로 대피했고, 함평군 등 영산강 수계 인근 지역 주민 112명도 경로당과 교회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집중호우와 태풍의 영향으로 이날 전국의 일시 대피자 수는 1만272명에 달했다.

 강원지역에서도 한탄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주민 218가구 389명이 대피했다. 전남 곡성, 구례 등에선 1640명이, 전북 남원, 진안 등에선 741명이 마을회관과 학교 등으로 대피했다. 경남 하동과 합천, 창녕 등 주민 216명도 추가 비 피해 우려로 대피소로 이동했다. 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지금까지 집중호우로 3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8일 오후 경남 하동군 하동읍 두곡리 두곡마을 일대가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왼쪽 편은 전남 광양시와 연결된 섬진강이다. [연합뉴스]

8일 오후 경남 하동군 하동읍 두곡리 두곡마을 일대가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왼쪽 편은 전남 광양시와 연결된 섬진강이다. [연합뉴스]

무너진 제방 응급 복구 나섰지만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이날 오전부터 폭우로 유실된 남원시 금지면 일대 섬진강 제방에 대한 응급 복구 작업에 나섰다. 익산 국토청 관계자는 "응급 복구는 유실된 제방에 토사 등이 담긴 마대를 쌓은 형식으로 진행되며, 최소 2~3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유실됐던 낙동강 제방도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낙동강 제방을 위탁 관리하는 수자원공사는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제방 폭과 높이를 원래 제방과 같이 맞추며 복구작업을 서둘렀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태풍이 오더라도 오후 8시까지 완전 복구 후 천막 등을 두르는 방수포 작업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집중호우 피해 및 대처상황 점검 회의에 참석해 "전국 곳곳을 강타한 집중 호우로 인한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태풍이 다가와 이재민뿐만 아니라 국민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풍이 불거나 비가 올 때 무리한 작업이나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해 달라"며 "현장 재난대응 관계자들도 임무 수행 시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한편 강원 춘천 의암호 선박 전복사고 닷새째를 맞은 이 날도 실종자 수색 작업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7시 50분경 실종자 5명 가운데 한명인 춘천시청 공무원이 댐으로부터 2㎞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현예 기자, 창원·합천·남원·제주·울산·춘천=이은지·황선윤·김준희·최충일·백경서·박진호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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