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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반만에 11만명 존엄사 택했다…거부 최다는 심폐소생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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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8일 동안 인공호흡기 고통 

일러스트=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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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한 여성 환자는 최근 18일 동안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가 인공호흡기를 떼고 숨졌다. 제거한 지 10여 분 만에 호흡을 천천히 멈추고 평온하게 사망했다. 이 환자는 파킨슨병을 오래 앓았고, 급성심부전(각종 심장병 때문에 전신에 혈류를 충분히 보내지 못하는 병)으로 인한 폐부종(폐혈관 밖의 구조물인 허파꽈리 등에 체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됨)으로 호흡이 곤란한 상태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의료진은 '소생실'에서 기관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중단 첫 연보

 인공호흡기 치료는 연명의료의 한 형태였지만, 다급한 순간이고 평소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문서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진이 그리했다고 한다. 보호자 동의 여부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에서 잠시 의식이 돌아온 환자는 인공호흡과 자가호흡이 부딪치면서 괴로워했고, 이후 의료진 처치에 따라 깊은 수면상태로 들어갔다.

더 이상 고통을 줄 순 없다 

 점차 소생 확률은 희박해지고 상태가 악화했다. 가족들은 인공호흡기 치료가 환자의 고통만 안기고 존엄성을 극도로 훼손한다고 판단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다. 평소 환자가 "곱고 편하게 죽고 싶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당부한 사실을 되새겼다. 신장투석·심폐소생술·기관지 절개 인공호흡 등의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환자의 자녀는 "기관 삽관 상태로 환자가 마지막까지 견디는 것을 지켜보다 입원 18일째 환자의 상태를 보고는 '더 이상 고통을 줄 순 없다'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의료진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연명의료 중단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연명의료 중단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연명의료를 선택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11만명을 넘어섰다. 또 이들이 가장 많이 거부한 연명의료 행위는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9일 이런 내용을 담은 연명의료결정제도 연보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2017년 10월~2018년 1월 시범사업) 이후 지난달까지 11만2239명이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했다. 올 5월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은 후 계속 늘고 있다.

가족 2명이 환자 평소 뜻 증언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네 가지 방법이 있다. 가족 2명 이상이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확인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가 32.7%로 가장 많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같은 문서로 자신의 뜻을 남기지 않아서 가족 2명이 평소 의사를 확인한 것이다. 80대 여성 파킨슨병 환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많이 택한 연명의료 중단 유형은 가족 전원 합의였다. 32%가 여기에 해당한다. 환자의 평소 뜻을 잘 몰라서 배우자나 자녀,부모 등의 가족 전원이 합의해 존엄사를 결정한다.

연명의료 행위별 거부비율(중복선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연명의료 행위별 거부비율(중복선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해까지 존엄사를 택한 사람이 가장 많이 거부한 연명의료행위는 심폐소생술(CPR)이다. 거부한 연명의료행위가 확인된 8만283명의 99.5%가 CPR을 거부했다. 70대 거부자가 가장 많다. 인공호흡기 착용은 85.9%가 거부했다. 혈액투석(83.7%), 항암제 투여(61.8%), 체외생명유지술(34.4%), 혈압상승제 투여(23.5%), 수혈(17.2%) 등의 순이다.

67만명 연명의료 미리 거부 

 또 올 7월까지 67만7974명이 사전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전산망에 등록했다. 인구의 1.3%에 해당한다. 여자가 47만3979명으로 남자의 2.4배에 달한다. 이 계획서는 임종상황에 접어들면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문서다. 주로 건강할 때 작성했다가 임종 상황에 닥치면 활용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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