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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해용의 시시각각

“왜 그리 정권 초에 많이 올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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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에디터

손해용 경제에디터

10년 넘게 친분을 쌓아 온 중소기업 대표 A씨를 만났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5%로 결정된 이후라 자연스레 화두가 됐다. ‘그나마 다행’ 정도의 촌평을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한 불평이 나왔다. “나라 경제가 무슨 실험 대상도 아니고, 이럴 거면 정권 초반에 왜 그리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느냐”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2018, 2019년에는 두 자릿수대로 과속하다가 2020년부터 급브레이크를 밟는 식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다 보니 경제·경영 전반에 불확실성을 가중하고, 노사 대립만 부추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결과론적이지만 차라리 매년 일정하게 7% 정도만 올렸다면 인건비 부담에 직원들을 내보내거나 쪼개기 알바를 쓰는 등의 꼼수가 남발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여력으로 지금 같은 때 최저임금을 평소처럼 올렸다면 상생 분위기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라고 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1999년(2.7%) 외환위기 때보다 낮은 역대 최저다. 결국 문재인 정부 4년간 연평균 인상률(7.75%)은 박근혜 정부 4년간(7.42%)과 불과 0.33%포인트 차이가 됐다. 코로나19에 따른 고용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라지만, 문 정부가 유독 노동 존중 사회와 소득주도 성장을 강조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결과다.

노(勞) 측은 반발한다. 국가부도 사태로 경제가 마이너스 5.1% 성장했던 외환위기 때보다 낮은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역대 최악”(한국노총), “참담한 결과”(최저임금연대) 등의 격한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A씨처럼 사(社) 측에서도 다양한 불만이 나온다. 인상률은 최저지만 그간 최저임금 금액 자체가 커진 만큼 소폭의 인상도 부담이다.

정권별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권별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무엇보다 조삼모사(朝三暮四)식 결정이 국가 경제 전반에 무리를 줬다. 급속도로 올라간 최저임금 탓에 고용시장이 악화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미 직원을 감축한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예전보다 낮아졌다고 해서 바로 채용에 나서진 않는다. 사회적 갈등도 키웠다. 인상률 급가속 기간에는 인건비 부담이 커진 소상공인·자영업자와 해고 위기에 놓인 저임금 노동자들 사이에 이른바 ‘을과 을’ 갈등 구도가 형성됐다. 이후 급제동 기간엔 노·정 갈등이 심화했다. 여기에 정부는 부작용을 수습하느라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애초부터 안정적으로 매년 7~8%씩 최저임금을 올렸다면 노동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 측은 문 대통령의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을 들먹이며, 사측은 매년 7~8%의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올렸던 박근혜 대통령 때를 거론하며 불만을 토로한다. 문제를 삼는 포인트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정권 초 최저임금을 많이 올린 이유가 뭔가”라는 푸념을 내뱉는다.

최저임금은 정치 논리나 여론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영업이익률 같은 경제지표와 우리 시장의 수용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1만원’이라는 수치를 앞세워 문제에 접근했다. 순서가 거꾸로 되다 보니 결정도 엉망이 됐고 최저임금 차등 적용, 주휴수당 지속 여부 등 더 중요한 문제들을 놓쳤다.

이참에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은 정부가 위촉하다 보니 정치적 입김이나 여론전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근로자·사용자위원들은 파행을 거듭할 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근본적인 구조적 한계도 있다. 공익위원의 중립성을 강화하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핵심 경제지표와 연동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에 민감한 소상공인,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영세사업장 근로자, 취업 문이 더 좁아지는 청년 등의 이해가 반영되도록 위원회 구성도 바꿔야 한다.

손해용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