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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옮기기, 서울대 쪼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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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천인성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24부디렉터(EYE)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내가 왜 서울 집값 상승의 주범인 적폐가 된 거냐? 누가 설명해달라.” 지난달 말 서울대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느 이공계 대학원생이 올린 글이다. “지방에서 넉넉지 못하게” 살다가 독학으로 “오지게 공부해서” 서울대로 진학한 자신을 ‘범죄자’ 취급한다는 불만이다. 곧 “서울대가 지방 가면 집값 내려가 내 집이 생기냐” “근시안적인 정책을 표팔이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담긴 학생들의 글이 이어졌다.

서울대가 난데없이 집값 논쟁에 휘말렸다. 지난달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집값 상승에 대응하는 카드로 ‘행정수도 완성’을 내놓으며 서울대 이전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어 다른 여권 인사들도 서울대 이전을 전제로 한 ‘국공립대 네트워크’ 등을 주장했다. 전에도 서울대 폐지 등이 나왔지만, 이번과 맥락이 달랐다. 지금까지는 ‘서·연·고, 서·성·한’식의 대학 서열화 극복, 국토 균형발전의 대안으로 검토됐다. 부동산 안정과 같은 경제정책에 서울대를 직접 연계한 건 처음이다.

노트북을 열며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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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울대 옮기기’ ‘서울대 쪼개기’가 서울 집값 억제에 얼마나 보탬이 될까. 전문가들은 “상징성 외엔 큰 효과는 없을 것”(서진형 대학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이란 반응이다. 사실 대학이 주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대에 인접한 관악구 봉천동의 아파트 매매가(3.3㎡당 평균 2183만원, 6월)는 인근 서초구의 방배동(3746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기자에겐 ‘서울대 옮기기’보다 어느 입시전문가의 ‘농담’이 훨씬 설득력 있다. 서울대 대신 서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한 특목고·자사고 같은 ‘입시 명문’을 몽땅 옮기자는 제안이었다. ‘역대급’ 규제에도 강남 집값이 끄떡없는 건 ‘대전족(자녀 교육을 위해 대치동에 전세 사는 사람)’로 상징되는 교육 수요 때문이니, 이를 역이용하자는 얘기다. 효과만 따지면 그럴듯한데 정부나 여당은 실행 불가능하다. 특목고·자사고를 일괄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니까. 하긴 교육정책만 보면 정부가 강남 집값 상승을 부추긴 면도 있다. 조국 일가의 입시 비리 의혹을 대입 정시 확대란 카드로 대응하는 바람에 “대치동·목동에 가도 내신 불이익이 적다”는 ‘믿음’이 퍼졌다.

서울대 이전 제안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2012년 국립대 법인이 된 서울대는 국가의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100만평 넘는 캠퍼스, 200개 이상의 건물을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은 고려조차 안 됐다. 실현 가능성, 실제 효과는 따지지 않은 채 정치적 셈법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