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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화장 안하면 마스크 벗긴다" 인천 피부과 병원의 갑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스크 착용 때문에 용모단정에 신경 안 쓰는 분들 있는 것 같은데 다니는 곳이 회사야. 마스크랑 개별로 화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내일부터 민얼굴로 다니면 마스크 벗깁니다.”

인천 부평의 한 피부과 대형 의원 관리자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직원들에게 남긴 주의사항이다. 관리자 B씨는 지난달 30일 데스크 직원ㆍ피부 관리사ㆍ간호조무사 등 직원 17명이 모여있는 단체 메신저 방에 이런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해당 병원은 피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B씨의 화장 압박은 다음 날도 계속됐다. 이 의원 직원에 따르면 B씨는 지난달 31일 직원의 마스크를 하나씩 내리고 입술 화장을 하지 않은 직원들을 나무랐다. B씨의 요구가 있고난 직후 일부 직원들은 “이렇게 강요하는 식으로 말하면 정말 다 퇴사하라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한 직원은 “직원들에게 화장하라는 사실을 돌려서 말할 수도 있는데 마스크를 벗겨버리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 연락했더니 한 관계자는 지난 7일 “담당자를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답했다. 이후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취재진이 병원 관계자와 통화를 마친 이후 해당 메신저 방에 속한 직원들은 ‘대화방에서 모두 나가달라’고 요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방을 새롭게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화장' 강요하는 꾸밈 노동 논란

꾸밈 노동은 이전에도 논란이 됐다. 2017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용모ㆍ복장 매뉴얼에 ‘여성 의사는 생기 있는 화장을 하고 머리가 옷깃에 닿는 경우 올림머리를 하라’는 내용을 담으려다 비판받은 바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철도공사의 업무 매뉴얼에도 “여성은 반드시 메이크업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거나 “립글로스는 지워지므로 반드시 립스틱을 사용한다”고 적시해 비난을 샀다.

‘여의사는 생기있는 화장할 것’을 담은 서울성모병원의 용모 복장 매뉴얼 초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중앙포토]

‘여의사는 생기있는 화장할 것’을 담은 서울성모병원의 용모 복장 매뉴얼 초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중앙포토]

아르바이트생도 예외가 아니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은 지난해 12월 알바생 37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장에서 외모 관련 지적을 받은 경험은 2명 중 1명꼴이었다. 응답자 55.8%가 외모 품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서비스 직군(60.4%)이 높았다. 성별로는 여성(64.6%)이 남성(44.5%)보다 외모 품평을 겪은 경험이 많았다.

'꾸밈 강요는 성차별' 법안 자동폐기

꾸밈 노동은 근로자의 활동성을 제약하고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2월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들에게만 과도하게 요구되는 감정노동과 꾸밈 노동은 여성이 업무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며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노동자가 아닌 장식품으로서 기능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이는 여성의 업무 능력을 저하하고 건강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꾸밈 노동은 논란이다. 여성 직원에게 하이힐을 강요한 일본에서도 지난해 11월 여성복장 규정 개선을 요구하는 ’구투(Kutoo)‘ 서명운동이 일어나 2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구투는 일본어로 각각 구두와 고통을 뜻하는 '구쓰(靴)', '구쓰(苦痛)'의 첫 글자와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을 합쳐 만든 용어다.

현재 꾸밈 노동 강요를 규제하는 법안은 없다. 2018년 3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자 등에게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복장의 착용을 요구하는 등 성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한 법안(성별에 의한 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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