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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군부지 주택 개발 논란…서울 주택난 해결, 군부지가 정답일까

중앙일보

입력

부동산대책의 약발이 떨어지자 군(軍)부지가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택난 원성이 심해지자 수도권 주택 ‘수혈’을 위해 군부지 중 노는 땅(유휴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정부는 이를 의식한 듯 6·17 부동산대책 직후인 7월 1일 서울권 5곳을 주택으로 개발하겠다고 기습 발표했다. 그 중 4곳이 군부지로 남태령 군관사(서울 남현동), 수도방위사령부 부지(서울 본동), 위례 군부지(성남 창곡동), 서울지방병무청(서울 신길동)이다. 이어 7·10 후속 대책을 통해 도시 주변 유휴부지·국가부지 등 신규 택지를 추가·발굴하겠다는 뜻도 굳혔다. 정부는 범정부 실무기획단(TF)을 꾸려 땅 찾기에 나섰다.

정부 “땅 내놔” 압박하며 군과 실랑이… ‘베드타운’ 아닌 지역균형발전 고민도 필요

이에 군은 불편한 분위기다. 정부와 땅 찾기 ‘밀당’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군 역시 군부지 말곤 마땅한 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국방부 소유 군부지가 민간·공공기관 부지보다 개발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군부지는 민간 업체가 개발하면 군사보안 규제로 인허가부터 제약이 많지만 정부가 개발 주체로 나서면 밀어붙일 수 있다. 땅값과 개발비가 저렴한데다, 저층 건물과 임시시설 정도라 철거도 쉽다. 옮겨갈 대체 부지만 결정되면 개발 속도도 높일 수 있다.

군부지 외에 공공기관들이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와 각 지역(혁신도시)으로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매각되고 극소량만 남아 정부의 선택폭이 넓지 않다. 기관·기업용 건물·토지 거래를 대행하는 A업체 컨설턴트는 “비어있는 공공기관 부지 중 지금까지 매각되지 않고 남은 곳은 그린벨트여서 개발도, 매매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가격협상이나 개발계획을 두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도 실랑이를 벌여야 해 손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속전속결 주택 공급으로 민심을 달래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좌지우지하기 쉬운 군부지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국방부 장관과 발 빠르게 만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정부의 마구잡이식 서울권 주택 개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자체 발전계획이나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군부지를 베드타운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 유치 온데간데 없고 주택 분양만 줄줄이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와 태릉골프장 전경. / 사진: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와 태릉골프장 전경. / 사진:연합뉴스

국방대학교 부지(덕은동 291-1)가 속한 경기도 고양시 덕은지구(덕양구 덕은동 일대 약 64만5672㎡)는 2010년 5월 국토해양부 고시에 따라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될 때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고양시가 협의해 ‘자족기능을 위한 미디어밸리’로 조성하겠다는 포부를 내걸었다. 영화촬영세트장·방송아카데미·스튜디오 등 미디어 제작·지원 관련 지식산업을 유치하겠다는 내용이다. 미디어 기업들이 밀집한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가 옆에 있어 이와 연계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국방대는 2017년 9월 충남 논산으로 떠나고 빈 부지는 2400여 가구 조성 계획이 수립돼 덕은지구 도시개발구역에 편입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덕은지구엔 아파트 행렬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대방건설·중흥건설·아이에스동서·현대엔지니어링 등이 아파트를 분양한 데 이어 올해는 GS건설과 삼정건설이 아파트 분양에 나서고 있다. 덕은지구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 받지만 전용 84㎡ 분양가가 인근 상암동 월드컵파크 단지와 비슷한 8억~9억원대에 달해 고분양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향후 상업·업무시설 분양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개발을 마치면 덕은지구는 7500여 가구 규모의 신흥 주거지가 된다. 이렇게 되면 상암 DMC와 마곡 산업단지의 배후주거지 역할에 머무를 뿐 자족기능은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 토지이용계획도 주택 공급 위주로 짜여져 미디어밸리 조성을 방해한다. 용지 대부분이 단독·공동주택과 근린생활시설·공원·녹지·학교 등 주거환경 조성에 쓰이고, 지식산업을 위한 업무용지는 12%(대지 7만9473㎡)에 그친다.

경기도 고양시 덕은지구 옛 국방대 정문. 철거를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사진:박정식 기자

경기도 고양시 덕은지구 옛 국방대 정문. 철거를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사진:박정식 기자

덕은지구 옆 서울 은평구 수색동 S부동산 관계자는 “광역철도 덕은역이 신설될 예정이지만, 기업 유인 효과가 없다면 수색증산뉴타운의 베드타운 연장선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옛 육군 도하부대 부지도 7년 전엔 일본 롯폰기힐즈처럼 호텔·오피스·문화시설·청사 등 다양한 기능의 대규모 복합단지를 계획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아파트 대단지로 조성돼 이 지역 집값 상승만 부채질하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덕은지구가 행정구역은 경기도지만 서울생활권이라는 입지를 적극 활용해 고양시의 부족한 자족기능을 채우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강북 도심과 강남 위주로 구축된 현 기업 환경과 네트워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섬처럼 떨어진 비즈니스 공간만 조성한다면 흥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인고속도로 부천IC 인근 수도군단 공병부대 부지(부천시 오정동 148 일대 약 33만1803㎡)도 아파트 대단지로 개발된다. 부천시는 군·관과 협의한 끝에 2022년까지 군부대 이전을 약속 받았다. 부천시는 부대 부지와 주변 부지를 합친 약 56만㎡ 대지에 공원·생태하천 등을 갖춘 3700가구의 친환경 스마트시티를 2025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부천시가 지난해 2월 계획을 발표하자 그동안 답보 상태였던 오정동 지역 집값이 탄력을 받았다. 군부대 옆 25년 된 세종2차 아파트 전용 82㎡ 평균 매매가는 계획 발표 전 3억1900만원이었으나 발표 후 3억7100만원으로, 휴먼시아2단지 전용 85㎡는 약 4억원에서 4억9000만원대까지 올랐다. 오정동엔 새로 문을 여는 공인중개사사무소도 늘고 있다.

오정지구 전전긍긍, 지자체들은 육사 유치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수도군단 공병부대. 2년 뒤 부대가 이전하면 2025년까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다. / 사진:박정식 기자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수도군단 공병부대. 2년 뒤 부대가 이전하면 2025년까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다. / 사진:박정식 기자

하지만 일각에선 걱정이 앞서고 있다. 이 군부지엔 과거 주한미군부대 ‘캠프 머서’가 1954~1992년 주둔했으며, 1993년부턴 한국군 공병부대가 들어와 있다. 당시 캠프 머서에서 근무했다는 한 미군이 부대가 이곳에 대량의 화학물질과 오염된 의류장비를 매립했다고 폭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방부·환경부가 2011년 현장 조사를 벌였으나 증거를 찾지 못한 채 군부지 토양·지하수 오염도가 기준 이하라는 결과만 발표하자 시민단체들이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오정동 주민들은 지금도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오정동 부동산시장은 또한 부천 대장지구에 수요를 뺏길까 고민하고 있다. 정부는 2년 전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과 함께 부천 대장을 3기 신도시로 지정했다. 대장지구는 올해 지구계획 수립과 보상을 마치면 2025년쯤 완공할 계획이다. 부천 오정동 J부동산 관계자는 “2만 가구를 조성하는 부천 대장은 오정 군부지의 5배 규모인데다 최근 용적률도 상향됐으며 브랜드 아파트들이 들어설 예정”이라며 “두 곳이 완공시기가 비슷해 오정 지역민들이 3기 신도시에 마음을 뺏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끝자락에 위치한 군부지인 육군사관학교(육사)와 태릉골프장도 매번 이전이 거론되는 신규 택지 단골 후보지다. 정부와 여당이 2005년에 국가균형발전 방안으로 수도 이전을 고민할 때도 육사 이전이 거론됐다. 이번에도 불똥이 육사로 튀자 민심과 군심(軍心)이 충돌하고 있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육사의 경기 북부지역 이전을 요구하자 다른 지자체들도 나서 전국 유치전으로 번졌다. 논산 육군훈련소와 계룡대 육해군 본부를 명분으로 일찌감치 육사 로비전을 펼쳤던 충남도 목소리를 높였다.

육사와 골프장의 활용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정부 기조에 맞추려는 국방부의 태도도 불을 붙였다. 국토부 장관이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만난 뒤 경기도 하남의 성남골프장을 태릉골프장 대체 부지로 활용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는 육사 부지가 행정구역상 서울시 관할 부지(181만8181㎡), 구리시 부지(26만4462㎡)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육사와 태릉골프장엔 역대 대통령들의 방문 이력과 한국 근대사가 묻어있어 부동산 개발 개념으로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개발 계획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지역 부동산시장은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인근 T부동산 관계자는 “육사·골프장 부지만 개발해도 약 2만~3만 가구, 인접한 구리갈매지구까지 합치면 최대 5만 가구의 신도시급 대단지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고종옥 베스트하우스 대표는 “국방부 소유 군부지 유휴지가 전국에 800만평 정도인데 그 중 절반이 수도권에 분포한다”라며 “무작위 주택 난개발은 수도권 과밀화를 넘어 서울 블랙홀을 부추길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함께 고려해 선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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