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조선시대 신분과 부를 보여준 대표적 장신구는?

중앙일보

입력 2020.08.07 11:00

업데이트 2021.08.18 09:41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48)

명성황후(1851~1895)는 조선 말기 제26대 왕 고종(1852~1919)의 비(妃)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어머니다. 43세에 암살당해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명성황후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 『나는 조선의 국모다』(이수광,1994년)와 드라마, 뮤지컬 등이 그의 생을 지금도 재조명하고 있다.

작년 11월 한 전시장에서 고미술품과 함께 전시된 19세기 장신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두 세기 전 명성황후가 살았던 시기의 대삼작 노리개였다. 은은한 광택의 진주, 손바닥만 한 크기의 호박과 산호뿐만 아니라 옥, 청금석, 비치 등 다양한 보석이 장식돼 형형색색 화려한 자태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었다. 왕족과 정일품만 착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명성황후의 상궁으로 추정되는 사진. [연합뉴스]

명성황후의 상궁으로 추정되는 사진. [연합뉴스]

명성황후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과 드라마, 뮤지컬 등이 그의 생을 지금도 재조명하고 있다. [사진 뮤지컬 명성황후 포스터]

명성황후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과 드라마, 뮤지컬 등이 그의 생을 지금도 재조명하고 있다. [사진 뮤지컬 명성황후 포스터]

노리개는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부녀자의 장신구로 다채로운 색상과 귀한 패물을 사용해 의상에 화려하고도 섬세한 미를 더해준다. 조선시대엔 목걸이나 귀걸이가 쇠퇴한 대신 노리개가 가장 다양하게 발달한 장신구였다. 옷고름에 매달아 치맛자락으로 늘어뜨리는 노리개는 주체부로 삼는 보패류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어, 다양한 계층의 여성이 폭넓게 사용했다.

조선시대에서 복장은 지위를 나타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관등에 따라 의복의 색을 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차림’이 곧 존비와 귀천을 구분하는 지표였다는 의미다. 장신구는 그 ‘차림’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수단으로, 개인의 기호를 위한 장식물이라기보다 착용자의 신분과 부를 상징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귀한 보패류로 만든 노리개는 시어머니에게서 큰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었고, 특별한 의례에 예물이나 선물로서 교환했을 정도로 여성 장신구를 대표했다.

궁중에서도 노리개는 여성의 지위를 표시하는 중요한 장신구 역할을 했다. 종친의 부녀자나 양반 부인은 머리에 첩지(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착용하던 머리 장식)를 하고 노리개를 차야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으며, 궁녀는 관례를 치르는 날만 노리개 패용을 허락받았다.

이처럼 궁에서 노리개를 찬다는 것은 곧 여성이 자신의 품격과 지위를 내보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지위에 따라 노리개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대삼작노리개

19세기에 만들어진 대삼작노리개. [사진 케이옥션]

19세기에 만들어진 대삼작노리개. [사진 케이옥션]

세 개의 노리개가 한 벌이 되게 만든 것이 삼작노리개다. 금·은·옥석·보패의 진귀함과 크기·규모에 따라서 대삼작노리개·중삼작노리개·소삼작노리개로 구분된다. 대삼작노리개는 삼작노리개 가운데 가장 호화롭고 큰 것으로 주로 궁중에서 사용됐다.

왕비와 세자빈, 정일품 품계를 받은 내·외명부 또는 공주, 옹주와 왕자 군부인 정도로 사용이 제한됐다. 다만 특별히 궁중에서 가례(嘉禮)·탄일(誕日) 등 특별한 축의일이 있을 때는 참례하는 부인도 삼작노리개 패용이 허가되었다.

대삼작노리개는 왼쪽부터 붉은색-흰색-남색의 장식술을 내리고, 각각 백옥의 쌍나비와 손바닥보다 큰 붉은 산호, 그리고 밀화(호박)로 주체부를 장식했으며, 낙지발술의 가닥마다 끝에 금사를 둘러 마무리했다. 세 개의 노리개는 옥으로 된 띠돈으로 하나로 묶었다. 옥제 띠돈에는 희자문(囍字文)이 양각돼 있다. 즐거움을 나타내는 희(喜)자가 두 개인 쌍희(囍)는 부부가 서로 즐거움을 나눈다는 의미로 쓰인다.

1. 붉은색 술의 백옥쌍나비 

백옥쌍나비. [사진 케이옥션]

백옥쌍나비. [사진 케이옥션]

나비 형태로 조각한 백옥판을 진주, 비취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장인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이다. 공작석과 비취로 만든 나비의 몸통 주위로 날개의 푸른 무늬를 만들었고 금빛 연주문(連珠文, 구슬을 이어 띠를 두른 모양의 문양)으로 감싼 진주 4알을 놓았다. 푸른 무늬를 넣은 금판 위에는 각각 금속을 꼬아 가장자리를 덧붙였고, 좁은 면적의 금판 안에 구슬 무늬를 줄지어 새겨 섬세함의 극치를 보인다. 나비 두 마리가 짝을 이룬 것은 부부의 화합과 금슬을 상징한다.

2. 흰색 술의 산호가지

산호가지. [사진 케이옥션]

산호가지. [사진 케이옥션]

산호는 적색, 분홍색, 백색, 흑색 등 다양한 색이 있다. 조선시대에 가장 선호한 것은 연한 붉은 빛과 산뜻한 붉은 색이다. 바닷속 산호층이 만들어낸 겉 부분은 깎아내고 속의 단단한 석회질만을 사용한다. 산호 가지 위에는 밀화(호박) 노리개와 마찬가지로 금빛 꽃줄기를 내렸다. 꽃잎과 나뭇잎에 비취모를 이용하여 푸른 무늬를 냈다. 가지처럼 뻗어 나가 대성하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 산호가지이다.

3. 남색술의 밀화불수 

밀화불수. [사진 케이옥션]

밀화불수. [사진 케이옥션]

밀화는 소나무 수지가 화석화한 호박 중에서 투명함이 덜하고 노란빛을 띠는 것을 말한다. 국기일에야 긴히 사용할 수 있다고 전하는 것으로, 노리개의 장식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다. 밀화로 불수(불수감나무의 열매) 형태를 만들고, 금빛 이파리와 꽃줄기가 밀화를 감싸 내려온 형태이다. 밀화불수의 전면에는 풀숲 사이로 고개를 내민, 불로초를 향해 고개를 숙인 사슴과 소나무, 그 위에 서로 얼굴을 맞댄 한 쌍의 학과 구름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유려하게 양각했다. 또한 뒷면에는 “老松鶴多 壽不老長生(늙은 소나무와 학은 수명이 긴 것처럼, 불로장생하라)”는 음각이 있어 장생에 대한 염원이 담겼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삼작노리개는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호화로운 장신구다. 오늘날엔 삼작노리개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순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면서 19세기의 대삼작노리개를 감상해 보길 권한다. 부부의 화합과 금슬, 백사여의(百事如意), 불로장생 등을 염원하는 옛 여인들의 마음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