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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갈 땐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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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6일엔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4일엔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에 나왔다. 커스텐 시네마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의 지난해 1월 패션. 의회 발언(지난 2월) 도중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영국 노동당 트래시 브라빈 의원. 2017년 12월 프랑스 의회에 축구팀 셔츠를 입고 연설에 나선 프랑수아 뤼팽 하원의원.(왼쪽부터) [연합뉴스, 트위터 캡처]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6일엔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4일엔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에 나왔다. 커스텐 시네마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의 지난해 1월 패션. 의회 발언(지난 2월) 도중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영국 노동당 트래시 브라빈 의원. 2017년 12월 프랑스 의회에 축구팀 셔츠를 입고 연설에 나선 프랑수아 뤼팽 하원의원.(왼쪽부터) [연합뉴스, 트위터 캡처]

“국회의 권위는 양복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일할 때 세워질 수 있다.” 4일 국회 본회의에 원피스를 입고 와 ‘복장 논란’에 휩싸인 정의당 류호정(28) 의원이 6일 CBS에 출연, “국회가 장례식장은 아니다. 관행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한다”며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국회에 출근했다.

류호정 논란으로 본 ‘국회 패션’ #93년 황산성 장관, 바지 정장 출석 #“여자가 건방지게 바지 차림” 비판 #미 여의원들, 단체 민소매 시위도 #프랑스, 축구 유니폼 연설에 벌금

‘의원은 의원으로서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국회법 제25조에 나와 있는 딱 한 줄 뿐인 국회의원 복장 규정이다. 민주당 일부 지지자들이 류 의원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을 거부한 것을 들며 “새끼 마담” “미투 유발” 등 성희롱성 비난을 쏟아낸 것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복장을 두고선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과 ‘국회 관행을 깬 탈권위 복장’이라는 찬성 의견이 맞선다. 인터넷엔 ‘류호정 원피스 브랜드’가 실검에 오르고 해당 제품이 완판되기도 했다. 어찌 됐든 국회 복장 논란은 20여년 전부터 있었고, 시대 흐름과 함께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90년대엔 여성 의원의 ‘바지 정장’도 논란이 됐다. 1993년 11월 황산성 환경처 장관이 바지 정장 차림으로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 답변을 하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자 “여자가 바지 차림으로, 건방지게 손까지 넣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3년 뒤 15대 국회에 입성한 이미경 통합민주당 의원은 동료 여성 의원들과 ‘여성 의원 바지 입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3년 4월 유시민 당시 국민개혁정당 의원이 티셔츠와 재킷, 흰색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처음 출석한 이른바 ‘빽바지 사건’은 유명하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항의했고, 유 의원은 다음날 정장 차림으로 등원해 의원 선서를 할 수 있었다.

2004년 17대 때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긴 수염과 두루마기 고무신 차림으로,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같은 당 단병호 의원은 점퍼 차림으로 본회의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의원직에 오른 김재연 의원은 19대 국회 등원 첫날 보라색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었는데, 치마 길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원전 파동으로 전력난이 심해진 2013년 여름엔 강창희 국회의장이 절전 운동 동참을 위해 노타이 복장을 권고해 국회에 노타이 바람이 분 적도 있다. 이때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전통 세모시를 홍보하겠다며 모시 한복을 입고 본회의장에 등장했다.

국회의원 복장 논란은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논란 속 의원들은 ‘엄숙주의’와 ‘남성중심 의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 영국 노동당의 여성 의원 트래시 브라빈의 오프 숄더형 원피스는 “의회에 적합한 복장이냐”는 논란을 불렀다. 그가 발언하던 중 몸을 한쪽으로 기울일 때 오른쪽 어깨가 노출됐고, 트위터 등에는 ‘모유 수유 중이냐’ 등 비하 발언까지 나왔다.

브라빈은 “내 어깨에 이렇게나 많은 감정이 쏟아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라고 위트로 받아치고는 옷을 곧바로 경매에 내놨다. 그는 낙찰 수익금 3143만 원 전액을 여성지원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복장 규정이 엄격한 프랑스 의회에선 2012년 세실 뒤플로 국토주택 장관이 도마에 올랐다. 각료회의에 청바지 차림으로 참석한 데 이어 의회 연설에 파란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하자, 일부 남성 의원들은 뒤플로를 향해 휘파람까지 불었다. 뒤플로는 “내 옷이 분노를 일으킨다면 지금 당장 옷을 벗겠다”고 대응했다. 2017년엔 ‘라 프랑스 앵수미즈’(LFI·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소속 프랑수아 뤼팽 의원이 “프로 축구 선수들 이적료에 세금을 도입하자”고 제안하며 축구복 차림으로 연설하자 의회는 그에게 관습을 어겼다며 벌금 1300유로(약 180만원)를 청구했다. 이후 ‘의회 복장 규정’이 제정됐고 이에 따라 프랑스 하원 남성 의원들은 의회에 들어갈 때 재킷이나 넥타이를 착용해야 한다.

미국에선 ‘민소매’소동이 있었다. 마샬 맥셀리 의원(공화당·애리조나주)은 2017년 의회 연설 시작에 앞서 “지금 나는 민소매 옷에 발가락이 드러난 신발을 신고 있다”고 말했다. CBS 여기자들이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의사당에서 쫓겨난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였다. 연설 이후 민주당 하원 여성 의원 20명은 매주 금요일을 ‘소매 없는 날’로 정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비즈니스 정장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캐나다의 퀘벡 연대 소속 캐서린 도리온 의원은 핼러윈을 기념해 퀘벡주 의회에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등원했다. 의원들은 “의회를 무시한다”며 불쾌해했고, 도리온은 퇴장당했다. 도리온 지지자들은 ‘나의 후드티, 나의 선택’이라는 트윗 글로 그를 옹호했다. 도리온은 지금까지도 캐주얼 복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민정·이우림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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