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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전쟁 게임 즐긴 ‘양심적 병역거부’, 법원 판단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26)

대한민국 남성은 헌법과 병역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최근 병역법에는 대체역이 새로 편입됐다. [중앙포토]

대한민국 남성은 헌법과 병역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최근 병역법에는 대체역이 새로 편입됐다. [중앙포토]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병역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병역의무는 크게 현역, 예비역, 보충역으로 구별되어 복무방법과 기간이 정해집니다. 현역 중 육군과 해병은 18개월, 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2개월, 보충역 중 사회복무 요원은 21개월 각각 복무합니다. 병무청장의 신체검사에 따라 질병이나 심신장애로 병역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면제되고, 6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복무할 수 없습니다.

최근 병역법에 새로 편입된 복무유형이 있는데, 바로 대체역입니다. 대체역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현역, 예비역 또는 보충역의 복무를 대신하는 사람, 흔히 ‘양심적 병역의무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2018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전향적 판단을 내린 이후 이들의 무죄판결이 확정됐습니다.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해마다 약 600명씩 발생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을 받는 대신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헌법이 정하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대체역을 이행하려는 사람은 병무청 소속의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대체역 편입 신청을 할 수 있고, 위원회는 필요한 사실 조사를 거쳐 신청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심사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도 있는데 심사위원회에서 대체복무 신청이 기각될 경우 행정쟁송 절차를 통해 다툴 수도 있습니다. 대체역은 3년 동안 합숙 복무를 해야 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의 취지에 따라 무기·흉기를 사용, 관리 및 단속하는 행위나 인명 살상 또는 시설파괴가 수반되는 행위에 종사할 수 없습니다.

지난달 15일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35명을 대체역 복무자로 처음 선정했는데요, 이들은 올해 10월부터 교도소와 같은 교정시설에서 급식·물품·보건위생·시설관리 등 보조 업무에 종사하고 현역과 동일한 급여와 휴가가 보장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35명을 대체역 복무자로 처음 선정했다. 이들은 교도소와 같은 교정시설에서 보조 업무에 종사하게 된다. [연합뉴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35명을 대체역 복무자로 처음 선정했다. 이들은 교도소와 같은 교정시설에서 보조 업무에 종사하게 된다. [연합뉴스]

문제는 대체역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양심의 자유로 병역을 거부하는지 가려내는 것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 중 일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양심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없고 병역의무의 이행이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결국 양심을 포기할 수 없고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불이행에 따르는 어떠한 제재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체역 심사위원회 역시 ‘양심의 실체’, ‘양심의 진실성’, ‘양심의 구속성’ 등 3개의 분야에서 각 8개의 종교적 신념과 개인적 신념의 총 16개의 항목을 살펴보겠다고 하는데요. 위와 관련해 최근 논란이 된 사안을 살펴보겠습니다.

A는 아직 정식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지만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B교를 믿습니다.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등 생활의 상당 부분을 종교활동에 매진했습니다. A는 2015년 입영통지를 받았지만 일관되게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습니다. 물론 처벌을 받은 적도 없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적도 없었습니다. A는 5년간 2번의 대법원 판단을 포함한 5번의 병역법 위반 재판을 받았는데요. 여러 번 결론이 뒤바뀌었지만 4번째 하급심에서는 A가 양심의 자유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것으로 보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판단해 하급심으로 돌려보냈습니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9도17322 판결).

대법원은 A가 침례를 받지 않은 점에 주목했습니다. 물론 침례 여부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침례를 받는 것은 B교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으로써 종교적 신념이 얼마만큼 내면화·공고화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A가 재판단계에서 침례를 받지 않은 경위는 물론 향후의 계획도 밝히지 않은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 것입니다. A는 침례만 받지 않았을 뿐 상당한 종교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그러한 종교 활동은 B교 신앙에 관한 확신에 이르거나 그 종교적 신념이 내면의 양심으로까지 자리 잡게 된 상태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행해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즉, 종교적 활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A의 종교적 양심이 확고하거나 진실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앞으로 B교 신자들이 침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대체역 심사를 한다면 인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이 온라인 전쟁게임을 즐겼을 경우에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있는지 기준이 다소 불분명합니다. [사진 pixabay]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이 온라인 전쟁게임을 즐겼을 경우에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있는지 기준이 다소 불분명합니다. [사진 pixabay]

반면 기준이 불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이 평소 유명 온라인 전쟁게임을 즐겼을 때가 그러한데요. 이 사례에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있는지 다소 불분명합니다. 이와 관련해 상반된 하급심 판례가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정리하는 대법원 최종판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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