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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카카오게임즈 소생시킨 그 게임···‘메갈사냥’ 또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0.08.06 06:00

게임업계가 4년째 성별혐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게임업계가 4년째 성별혐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카카오게임즈도 피하지 못했다. 2016년부터 게임업계에서 20회 가량 되풀이되고 있는 ‘게임업계 사상검증’ 논란, 이른바 ‘메갈 사냥’ 얘기다.

무슨 일이야?

다음달 코스닥 상장을 앞둔 카카오게임즈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국 콩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국내 유통하는 모바일 게임 ‘가디언테일즈’가 젠더 갈등에 휘말리면서다.
· 가디언테일즈는 지난 2일 사전 공지 없이 접속장애를 유발하는 긴급패치를 진행했다. 패치 내용은 게임 대사 “이 걸레X아(You Whore)”를 12세 이용가에 맞춰 “망할 광대 같은 게”로 수정한 것. 원문 맥락과 맞지 않는 번역을 두고, 남성 이용자 중심으로 비난이 일었다. ‘광대’가 급진적 페미니즘 진영에서 쓰는 남성혐오 표현(도태한 남성을 ‘조커’에 빗댄 말)이란 주장이 제기된 것.
· 또 이 게임이 여성혐오 표현으로 꼽히는 ‘보이루’ 등을 게임 내 사용 금지어로 지정한 사실이 알려지자 불매운동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남성 소비자들이 “카카오게임즈 내부에 급진적 페미니스트 담당자가 있는 거냐. 이런 게임 안 하겠다”고 나선 것.
· 문제가 커지자 카카오게임즈는 하루만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이 글에도 1시간 만에 비난 댓글 3000여 개가 쏟아졌다. “책임자를 징계하라” “페미는 정신병이다. 카카오게임즈 영원히 불매” “표현을 바꾼 타당한 이유를 대라” 등.
· 카카오게임즈는 5일 사과문을 또 냈다. ▶실무 담당자 교체 ▶‘보이루’ 등 금칙어 해제 ▶“광대 같은 게”를 “이 나쁜X”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남성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다.

카카오게임즈의 12세 이용가 모바일 게임 '가디언테일즈'가 최근 게임 내 "이 걸레 X이"(왼쪽·여성비하 표현은 기자가 모자이크 처리)라는 대사가 논란이 되자 "망할 광대 같은 게"로 수정한 모습 [연합뉴스]

카카오게임즈의 12세 이용가 모바일 게임 '가디언테일즈'가 최근 게임 내 "이 걸레 X이"(왼쪽·여성비하 표현은 기자가 모자이크 처리)라는 대사가 논란이 되자 "망할 광대 같은 게"로 수정한 모습 [연합뉴스]

이게 왜 중요해? 

· 가디언테일즈는 히트작에 목마른 카카오게임즈를 심폐소생한 ‘갓겜(뛰어난 게임)’이란 평가를 받았다. 지난 3일 기준 구글스토어 매출 5위, 평점 5점 만점에 4.9점을 찍었을 정도. 그러나 ‘페미 게임’ 논란 후 이틀 만에 매출 7위, 평점 1.8점으로 추락했다.
· 게임업계는 ‘역대급 논란’을 체감 중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게임 라운지는 며칠간 ‘가테 사태’ 이야기로 가득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그간 업계에 여러 사상검증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 건은 그중에서도 굉장히 큰 사건이다. 회사가 상장(IPO)을 앞둔 점에 터진 일이라 업계에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이런 일이…

게임업계에서 젠더 문제에 대한 사상검증은 5년째 반복돼 왔다.
· 2016년 넥슨의 ‘클로저스’ 성우 교체 사건이 발단이다. 캐릭터 ‘티나’ 역을 맡았던 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트위터에 급진적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 티셔츠 사진을 올렸다가 논란 끝에 교체됐다. 이후 4년간 게임사 20여 곳이 이용자들로부터 넥슨과 유사한 사상검증을 요구받았다. 회사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대부분 논란을 수습했다. 전국여성노조에 따르면 게임업계에서 여성권 지지 목소리를 냈다가 부당대우를 받은 여성 노동자는 5년새 최소 14명이다.
· 2018년엔 갈등이 극대화됐다. 중국 게임 ‘소녀전선’의 국내 일러스트레이터가 그해 3월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 관련 트위터를 공유했다며 남성 소비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게임사는 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캐릭터를 영구 비공개 조치했다. 이를 계기로 일러스트·원화·번역·작가 등 다양한 직군이 사상검증 대상이 됐다. 두 달 간 10여개 게임사 여성 노동자(프리랜서 포함)가 스스로 퇴사하거나 게임사로부터 ‘용역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게임업계 ‘사상검증’ 주요 논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게임업계 ‘사상검증’ 주요 논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뭐가 문제야?

게임사의 사업적 이해,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해진 사회 분위기. 이 둘이 첨예하게 부딪힐 때마다, 게임사는 사업적 이해를 선택하는 편이었다.
· 산업계에선 “개인의 사상을 존중해야 한단 이유로, 직원 수백명이 수 년간 매달린 게임을 포기할 순 없다. (사상검증 논란을 수습하고) 회사의 이해와 직원들의 성과를 살리는 게 회사의 의무”란 입장이다.
·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국가인권위가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사들에게 “게임업계 내 여성혐오 및 차별적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 그러면서 “기업의 이윤은 사회로부터 창출되므로 소비자의 요구가 인권·정의와 같은 기본가치에 반한다면 그 요구를 무시하거나 소비자를 설득·제재해야 책임 있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은 뭐래?

난처하단 입장. 개인의 사상을 존중하고 싶다지만, ‘페미 논란=리스크’로 보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2016년 이후 성우·일러스트레이터 등 프리랜서와 계약할 때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생긴 건 사실이다. 핵심 소비자인 2030 남성 이용자들이 게임 제작에 참여한 프리랜서의 개인 SNS를 찾아보며 사상을 검증하고, (페미면) 기업에 퇴출을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중소 규모 개발사일수록 소비자 눈치를 심하게 살핀다. 올해 2월 인디게임 ‘크로노 아크’ 개발자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미숙한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으로 상심을 드려 죄송하다”며 땅에 머리를 박고 사과하는 인증 사진을 올려 논란이 됐다. 한 중소게임사 3년차 개발자 A(28)씨는 “게임업계는 이용자 반응이 매출에 즉각 반영된다. 회사 사정이 빠듯할수록 이용자가 갑질 수준으로 요구해도 응해야 할 때가 많다”고 했다.

블라인드 게임 라운지에서 화제가 된 '가디언테일즈 사태' 관련 글들 [사진 블라인드 캡처]

블라인드 게임 라운지에서 화제가 된 '가디언테일즈 사태' 관련 글들 [사진 블라인드 캡처]

앞으로는 어떻게?

이제는 게임사들이 왜곡된 소비자주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비뚤어진 소비자주의”라고 진단했다. “소비자는 절대선이 아니다. 오히려 다수의 폭력으로 변질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
· 구 교수는 “게임업계는 남성 중심 산업이다. 성비 균형이 무너진 곳일수록 상대 성(性)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강하다는 것은 여러 연구가 이미 입증한 사실”이라며 “게임사는 직원들 사이에서 성차별적 언행이 쉽게 터져나올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규범 강화, 법무부의 인권경영 확산 등 최근 사회적 분위기를 빨리 인지하고 인권영향평가 제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현숙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탁틴내일 대표)은 “자율규제의 전제는 소비자의 선한 영향력이다. 해외 기업들은 규제 완화를 위해 소비자의 현명한 판단을 이끌어내는 데 공을 들인다. 가령 인터넷·게임에 대해 자녀보다 모르는 부모들에게 관련 정보와 조언을 제공하는 식”이라며 “기업과 문체부가 함께 건전한 소비문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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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답답할 땐, 팩플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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