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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성지 양양 또다른 ‘맛’···정용진 2시간 줄세운 수제 버거집

중앙일보

입력

일일오끼 - 강원도 양양 

서핑 성지로 통하는 양양 인구 해변. 보드를 든 서퍼들이 해변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백종현 기자

서핑 성지로 통하는 양양 인구 해변. 보드를 든 서퍼들이 해변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백종현 기자

양양은 서핑 도시다. 이맘때 양양을 찾는 피서객은 십중팔구 해안으로 빠진다. 한데 파도만 타며 보내기엔 못내 아쉽다. 양양에도 유서 깊은 식당, 이름난 먹거리가 제법 있다. 7번 국도를 오르내리며 자연산 섭(홍합)을 넣은 칼칼한 섭국도 한술 뜨고, 시원한 메밀국수도 양껏 마셔야 한다. 양양 땅을 가로지르는 남대천에는 날쌘 은어가 바글바글하다. 설악산 오색 약수에 발을 담근 뒤 먹는 산채 음식도 꿀맛이다. 참, 재벌 총수가 줄을 섰다는 햄버거집도 바로 양양에 있다.

서퍼들의 간편식

우리가 흔히 ‘양양 서핑 해변’으로 부르는 곳이 현남면의 죽도 해변이다. 인구~죽도~동산으로 이어지는 4㎞ 길이의 해변이 서퍼들의 성지로 통한다. 2012년 두 곳에 불과하던 서프 숍이 지금은 43곳에 이른다. 덩달아 음식 문화도 달라졌다. 횟집이 사라진 자리에 이국적인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가 대거 들어앉았다. 20~30대 젊은 층의 유입으로 펍·포차 같은 술집도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양양 죽도 해변 인근 '파머스키친'의 대표 메뉴인 베이컨치즈버거와 감자튀김. 파머스키친은 최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2시간 기다려 먹고 간 수제 버거집으로 알려지며 전국구 맛집으로 거듭났다. 백종현 기자

양양 죽도 해변 인근 '파머스키친'의 대표 메뉴인 베이컨치즈버거와 감자튀김. 파머스키친은 최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2시간 기다려 먹고 간 수제 버거집으로 알려지며 전국구 맛집으로 거듭났다. 백종현 기자

서퍼의 밥상은 단출하게 마련이다. 간단히 해결해야 더 오래 파도에서 놀 수 있다. 덕분에 햄버거·핫도그 따위의 간편식이 자주 보인다. 스노보드 전 국가대표 출신의 박성진 사장(41)이 운영하는 ‘파머스키친’이 대표적이다. 그는 “짜고 기름진 미국식 햄버거에 물려 담백한 맛을 직접 맛을 연구했다”고 말한다. 각 나라로 원정 훈련을 다니며 햄버거를 맛본 경험이 자연히 내공이 됐단다.

파머스키친 박성진 사장. 스노보드 전 국가대표 출신으로, 은퇴 후 2014년 양양에 버거집을 차렸다. 백종현 기자

파머스키친 박성진 사장. 스노보드 전 국가대표 출신으로, 은퇴 후 2014년 양양에 버거집을 차렸다. 백종현 기자

최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햄버거 먹으려고 번호표 뽑고 두시간 기다림 #파머스키친”이란 글과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남긴 뒤, 전국구 맛집으로 떴다. 평일에도 두세 시간 대기는 기본. 오전 11시~오후 3시, 오후 5~8시 문을 여는데 오픈 1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안전하게 번호표를 받는다. 치즈버거(7000원), 베이컨치즈버거(9000원), 갈릭쉬림프버거(1만1000원), 감자튀김(5000원), 어니언링(4000원)이 단연 인기다. 모두 정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서 인증한 5개 메뉴다.

등산보다 산나물 밥상

용소폭포 인근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 백종현 기자

용소폭포 인근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 백종현 기자

설악산은 속초와 인제 그리고 양양에 걸쳐 있다. 남설악으로 일컫는 남쪽 구역이 양양 땅이다. 대청봉(1708m)을 오르는 최단 경로인 ‘오색 코스(편도 5㎞)’도, 비경으로 꼽히는 용소폭포도 모두 양양의 품에 있다.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 약수 초입에 산채 음식을 내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백종현 기자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 약수 초입에 산채 음식을 내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백종현 기자

남설악의 들머리자, 뒤풀이 장소는 예나 지금이나 오색 약수터다. 그곳에 들러 약수든, 동동주든 한 잔이라도 걸쳐야 비로소 등산의 의식이 완성된다. 오색 약수터 주변은 이른바 산채 음식촌이다. ‘통나무집’ ‘곰취’ ‘산촌’ 등 저마다 정겨운 간판을 한 산채음식점이 열댓 개 줄지어 있다.

오색 약수 초입 '약수식당'에서 맛본 '약수정식'. 갖은 산채 요리와 황태·더덕구이 등이 깔린다. 밥을 약수로 지어 푸르스름한 빛이 돈다. 백종현 기자

오색 약수 초입 '약수식당'에서 맛본 '약수정식'. 갖은 산채 요리와 황태·더덕구이 등이 깔린다. 밥을 약수로 지어 푸르스름한 빛이 돈다. 백종현 기자

초입의 ‘약수식당’이 터줏대감으로 통하는데, 3대가 50년 넘게 가게를 이어온다. 등산이 아니라, 식사가 목적인 단골이 수두룩한 집이다. 약수정식(1만5000원, 2인 이상) 주문이 가장 많다. 더덕‧황태구이를 기본으로 당귀‧두릅‧취나물‧엄나무순‧곤드레‧더덕취나물‧고사리 등 산나물이 한 상 가득 펼쳐진다. 어느 고급 요리 부럽지 않게 푸짐하고 향긋한 상차림이다.

“지난봄 구룡령(1089m)과 점봉산(1424m) 숲에서 직접 뜯어온 산나물”이라고 2대 김성권(69) 사장은 말한다. 약수로 지어 푸른빛이 도는 쌀밥, 샘물로 담근 시원한 동치미 덕에 숟가락질이 더 흥겹다. 남은 반찬은 모조리 포장해주므로 억지로 입에 넣을 필요가 없다. 참기름과 고추장만 있다면 또 한 번 훌륭한 한 끼가 해결된다.

섭이냐 홍합이냐

동해안에서 해녀가 캔 6년산 섭. 일반 양식 홍합에 비해 몸집이 크고, 껍질도 두꺼운 편이다. 전복처럼 식감이 쫄깃쫄깃하고 향이 진하다. 백종현 기자

동해안에서 해녀가 캔 6년산 섭. 일반 양식 홍합에 비해 몸집이 크고, 껍질도 두꺼운 편이다. 전복처럼 식감이 쫄깃쫄깃하고 향이 진하다. 백종현 기자

섭‧담치‧열합 등등 홍합은 이름이 여럿 딸린 조개다. 동해안에서는 제법 구분이 확실한 편인데, 양양 사람들은 자연산 홍합을 ‘섭’이라고 하고, 양식만 ‘홍합’이라 부른다. 강원도에도 해녀가 있다. 양양‧고성‧강릉 앞바다에서 활동하는 해녀가 수심 7m 이상 바다에서 섭을 캔다.

섭과 홍합은 나란히 두고 보면 생김새의 차이가 확연하다. 겉이 매끈한 일반 홍합과 달리 섭은 껍데기가 훨씬 거칠고 두껍다. 나이테도 선명한데, 6년 이상 자란 섭은 어른 손바닥을 다 가릴 정도로 몸집이 크다. 몸값도 다르다. 섭이 홍합보다 5~6배 비싸다. 10㎏에 12~13만원 선이다. 맛은 어떨까. 섭은 전복회처럼 쫄깃쫄깃하고 향이 진하다. 처음 접한 사람은 홍합에 대한 배신감이 바로 밀려온다. 섭국 전문점 ‘옛뜰’의 이원덕(51) 사장도 “식감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도 속여 팔지 못한다”고 말했다.

손양면 '옛뜰'의 섭국. 잘게 썬 섭을 막장과 고추장 푼 물에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다. 백종현 기자

손양면 '옛뜰'의 섭국. 잘게 썬 섭을 막장과 고추장 푼 물에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다. 백종현 기자

섭은 구이‧무침으로도 먹지만, 푹 끓여 국으로 먹는 게 보통이다. 그게 섭국이다. 옛뜰은 막장과 고추장을 푼 물을 바탕으로, 잘게 썬 섭과 감자수제비·부추‧대파 등을 넣어 어죽처럼 걸쭉하게 끓여낸다. 섭국은 뱃사람의 즐기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 술만 맛봐도 그 심정이 대번 이해된다. 얼큰한 국물에 헛헛하던 속이 금세 든든해지는 느낌, 지금도 양양에서는 섭국이 최고의 해장국으로 통한다.

고소한 은어 튀김, 구수한 뚜거리탕

남대천 은어잡이 풍경. 6~8월이 은어 낚시 철이다. 강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은어를 낚는다. 물가에도 은어가 있지만, 몸집이 큰 은어를 잡으려면 강물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은어의 산란이 시작되는 9월부터는 낚시를 할 수 없다. 백종현 기자

남대천 은어잡이 풍경. 6~8월이 은어 낚시 철이다. 강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은어를 낚는다. 물가에도 은어가 있지만, 몸집이 큰 은어를 잡으려면 강물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은어의 산란이 시작되는 9월부터는 낚시를 할 수 없다. 백종현 기자

죽도 해변이 서핑 천국이면, 남대천은 민물낚시의 성지다. 연어‧황어를 비롯해 계절마다 온갖 물고기가 뛴다. 수박 향이 난다는 은어의 낚시 철이 바로 6~8월이다. 이맘때 남대천변에서는 강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은어잡이에 몰두하는 낚시꾼을 쉬이 목격할 수 있다.

은어잡이는 별나다. “곤쟁이를 미끼로 삼기도 하지만, 베테랑은 살아있는 은어를 미끼로 쓴다”고 김기수(59) 문화해설사는 말한다. 일명 ‘도모쓰리(놀림낚시)’다. 그래야 크고 성한 놈이 잡힌다. 제 영역을 침범하는 은어를 공격하는 은어의 습성을 이용한 낚시법. 친구로 친구를 낚는 셈이다.

뚜거리도 남대천의 주인공이다. 망둥이를 닮은 민물고기로 강 하류 바위틈에 숨어 산다. 생긴 건 몰라도 국물 요리로는 일품이다. 추어탕처럼 갈아서 끓여 먹는데, 비린 맛 없이 구수하다.

남대천 '강촌식당'에서 맛본 은어 튀김과 뚜거리탕. 백종현 기자

남대천 '강촌식당'에서 맛본 은어 튀김과 뚜거리탕. 백종현 기자

남대천변 ‘강촌식당’에 들었다. 낚시는 남편 이상욱(68)씨의 몫, 아내 김춘(61)씨는 주방에서 요리를 책임진다. 22년의 세월을 그렇게 지켜온 식당이다. 은어 튀김(2만원)과 함께 뚜거리탕(8000원)이 상에 올라왔다. 통째로 씹어 먹는 은어, 3년 된 막장으로 맛을 낸 뚜거리탕. 끝내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시원하게 얼큰하게

'상운메밀촌'의 메밀물막국수와 메밀육개장칼국수. 양양을 대표하는 여름 별미다. 백종현 기자

'상운메밀촌'의 메밀물막국수와 메밀육개장칼국수. 양양을 대표하는 여름 별미다. 백종현 기자

물회와 함께 동해안의 여름 별미로 통하는 음식이 시원한 국수 요리다. ‘막국수’ ‘물막국수’ ‘메밀국수’ 등 집집이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결국 한 음식이다. 메밀로 뽑은 면을 찬 국물에 말아 후루룩 먹는다. 대접째 들고 들이키면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막국수의 고장인 춘천이나 봉평의 맛이 떠오르긴 하나 양양 사람도, 피서객도 즐겨 먹는다.

손양면 '상운메밀촌'의 최용익 사장. 백종현 기자

손양면 '상운메밀촌'의 최용익 사장. 백종현 기자

손양면 ‘상운메밀촌’의 최용익(64) 사장은 “막국수는 결국 국물이 맛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이 집의 물막국수(8000원)는 사과‧배‧양파 등 15개가 넘는 과일과 야채에 아카시아 꿀을 섞어 일주일 이상 숙성한 국물을 쓴다. 향긋하고 새콤한 국물이 입맛을 당긴다. 메밀육개장칼국수(1만원)도 잘 나간다. 함바집(건설 현장 식당)을 15년간 운영하며 검증한 얼큰한 육개장에 메밀국수를 섞었단다.

장칼국수도 빠질 수 없는 양양의 국수 요리. 멸칫국물에 고추장을 풀고,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다. 장칼국수는 지역마다 곁들이는 재료가 다른데, 홍합을 넉넉하게 넣어 맛을 내는 게 양양 스타일이다. 손양면 ‘송림메밀국수’에서 맛본 홍합장칼국수(7000원)의 국물이 탁월했다.
 양양=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인구해변의 서퍼들. 백종현 기자

인구해변의 서퍼들. 백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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