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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풍이 구닥다리? 20대에겐 신선한 ‘그때 그 게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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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넥슨의 신작 모바일 게임 ‘바람의 나라: 연’.

넥슨의 신작 모바일 게임 ‘바람의 나라: 연’.

‘90년대와의 조우’.

도트체 게임 ‘바람의 나라’ 돌풍 #원로배우 최불암까지 게임 광고에 #‘싹쓰리’ 각종 음악 차트 휩쓸고 #당시 가요 모티브로 소설도 나와

최근 대중문화계에 ‘뉴트로’ 바람이 불면서 1990년대 문화가 전방위적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다.

90년대 바람이 가장 강력한 장르 중 하나는 게임이다. 출시 하루 만에 다운로드 100만 건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넥슨의 신작 모바일 게임 ‘바람의 나라: 연’은 1996년 출시된 PC 게임 ‘바람의 나라’를 모바일로 이식했다. ‘도트 게임’이라 불리는 90년대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주목을 받았다. 도트는 컴퓨터 화면을 이루는 작은 화소 단위다. 과거 저해상도 시절엔 지금의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 대신 적은 수의 도트만으로 그래픽을 구성해 비교적 단순하면서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넥슨 관계자는 “도트 그래픽은 수작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의 3D 그래픽으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많은 품을 들여야 했다”며 “그런데도 ‘바람의 나라’를 좋아하는 유저들이 과거 그래픽에 대한 향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도트 그래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넥슨은 최근 출시한 모바일게임 ‘V4’ 광고에 90년대의 ‘최불암 시리즈’를 접목하기도 했다. 배우 최불암이 직접 출연해 ‘허무개그’로 게임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90년대 가요를 모티브로 쓴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 표지.

90년대 가요를 모티브로 쓴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 표지.

지난달 21일 출간된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는 젊은 여성작가 7인이 1990년대 가요를 모티브로 쓴 테마소설이다. 엄정화, 이소라, 자우림, 박지윤, S.E.S., 한스밴드, 보아 등 90년대 인기를 누린 주요 여성 가수들의 노래를 하나씩 테마로 삼고 이를 통해 첫 우정, 첫사랑 등을 다뤘다. 부제도 ‘테마소설 1990 플레이리스트’다.

최근 주요 가요 차트에서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싹쓰리’도 90년대 유행했던 쿨, 룰라, 투투 등 혼성그룹에 대한 추억을 소환한 전략으로 꼽힌다.

이같은 90년대 뉴트로는 주요 소비 대상인 40대뿐 아니라 20·30대까지 파고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당초 90년대 학번들의 ‘추억 상품’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게임 ‘바람의 나라: 연’은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 남성이 가장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왔다. 또 지난달 23일 게임 매출 순위에선 ‘리니지M’에 이어 2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90년대 문화가 뉴트로로 인기를 얻는 데 대해 몇 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는 90년대 학번은 사회 각 분야에서 허리층을 이루며 주류로 진입하는 단계”라며 “90년대 문화가 부상하는 것은 주력세대의 교체를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데다 X세대를 거친 이들은 가족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화적 소비에도 아끼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인구학적으로도 90년대 학번은 사회 주류 단계에 접어들었다. 90년대는 70만~80만 명가량이 대입 시험에 응시했는데, 이는 지난해 수능 응시자 수 47만3000명과 비교할 때 50~70% 가까이 많은 수치다. 그만큼 90년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이 두텁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2000년대 ‘쎄시봉’ 등 통기타 문화가 주목받았던 현상과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한 추억 소환이 아니라 90년대 문화 자체의 힘에서 기인하는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90년대는 Mnet, KMTV 등 케이블TV를 통한 전문음악채널이 나오고, 영화계에선 100만 관객 작품이 나오는 등 문화적 인프라가 탄탄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40대에게 추억으로 소비되기도 하지만 20대에겐 신선한 문화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싹쓰리가 가요차트를 석권하는 것은 지금 봐도 X세대가 주도했던 90년대 문화가 촌스럽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94학번인 소설가 김어흥씨는 “386보다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문화를 향유한 세대”라며 “‘거품 경제’ 시절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넉넉했고, 당시 과외비와 지금 과외비가 같다는 점을 보면 오히려 90년대 대학생들이 더 풍요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90년대 문화는 국내 대중문화가 본격 개화한 시기로 꼽힌다. 하지만 플랫폼의 한계 등으로 세계 시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특징이 있다. 고구려와 부여가 경쟁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 ‘바람의 나라: 연’도 최근 모바일 게임들이 중세적 판타지를 주로 다룬 것과는 차이가 있다.

가수 손무현씨는 “K팝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했다고 하지만 대중들이 따라부르고 리메이크 하는 것은 여전히 90년대 노래”라며 “그만큼 가사나 멜로디가 대중들의 감수성을 터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영어와 감각적 단어를 나열하는 K팝은 애당초 한국보다는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든 노래에 가깝다”며 “가요를 비롯해 90년대 문화가 갖는 힘은 한국 사회의 감성에 기반을 두는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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