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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빗길 무단횡단자 친 임슬옹…최근 판례는 무죄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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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횡단으로 인해 교통사고가 났다면 보행자의 책임일까, 운전자의 책임일까. 가수 임슬옹씨의 빗길 교통사고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5일 경찰은 "교통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수사해야 임씨의 책임과 처벌 수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무단횡단을 한 보행자의 탓이라는 주장과 교차로에서는 운전자가 방어운전을 했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에 앞서 임씨는 차를 몰고 지난 1일 오후 11시 50분쯤 서울 은평구 DMC역 인근 삼거리 교차로를 지나던 중 횡단보도의 빨간 불에 무단횡단하던 50대 남성 A씨를 들이받았다. A씨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무단횡단하다 사고나면 보행자 책임 커 

지난 1일 가수 임슬옹씨가 SUV 차량을 운전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에 무단횡단하던 50대 남성 A씨를 들이받았다. 사진은 사고가 난 서울 은평구 수색로 삼거리 교차로 모습이다. 이우림 기자.

지난 1일 가수 임슬옹씨가 SUV 차량을 운전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에 무단횡단하던 50대 남성 A씨를 들이받았다. 사진은 사고가 난 서울 은평구 수색로 삼거리 교차로 모습이다. 이우림 기자.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생기면 전방주시 태만에 책임을 물어 운전자가 형사처벌을 받는게 보통이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업무상과실(주의 태만) 또는 중과실 치사상의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하지만 임씨의 사건처럼 보행자가 무단횡단을 할 경우에는 운전자에게 집행유예나 무죄가 선고되기도 한다.

최근 판례를 보면 지난 5월 제주지법 형사4단독 서근찬 부장판사는 오전 5시 30분쯤 마라톤 연습을 한다며 역주행해 달려오는 50대 여성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은 60대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운전자가) 역주행으로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 달려오고 있을 것까지 예상해 속도를 대폭 줄여 운전하거나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 즉시 급정지하는 등의 조치로 충돌을 피해야 할 의무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수원지법 형사3단독 이소연 판사 역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 B씨(31)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는 지난해 4월 오후 8시쯤 용인시 처인구의 왕복 6차선 도로에서 시속 46㎞로 운전하던 중 무단횡단하던 80대 여성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중앙분리시설인 화단 때문에 무단횡단한 피해자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사고 당시 비가 내렸고 피해자가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던 점, 교통사고 분석 감정 결과 ‘사고 회피 불가 추정’ 회신이 온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빗길·야간 사고도 피해자가 불리 

지난 1일 가수 임슬옹씨가 SUV 차량을 운전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에 무단횡단하던 50대 남성 A씨를 들이받았다. 사진은 사고가 난 서울 은평구 수색로 삼거리 교차로 모습이다. 이우림 기자.

지난 1일 가수 임슬옹씨가 SUV 차량을 운전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에 무단횡단하던 50대 남성 A씨를 들이받았다. 사진은 사고가 난 서울 은평구 수색로 삼거리 교차로 모습이다. 이우림 기자.

임씨의 사고에서도 운전자보다 무단횡단 보행자의 책임이 더 클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앤엘)는 “보행자가 빨간 불에 무단횡단을 해 사고가 났을 경우 기본적으로 보행자 과실이 60%, 운전자 과실을 40% 정도로 둔다. 이후 사고 당시 날씨나 시각, 과속ㆍ음주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무죄를 판단한다”고 했다. 특히 정 변호사는 “비가 오거나 야간에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에게 유리한 요소로 평가된다"라며 “피해자와 합의를 했을 경우 대부분 집행유예 처분을 받고 합의를 못 하더라도 과실을 따져 실형을 면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한문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인도 쪽에 있던 보행자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차와의 거리가 가까워 급제동했다고 해도 피할 수 없었다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다. 만약 임씨가 과속을 했을 경우에 대해 한 변호사는 “과속을 했다고 무조건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제한속도 내로 달렸어도 피하지 못할 정도였나를 따지게 된다”라고 했다.

운전자도 교통사고 전력 있으면 불리  

다만 무단횡단 보행자에게 무조건 책임이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대전지법 형사7단독 송진호 판사는 무단횡단을 한 70대 보행자를 보지 못하고 차로 치어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공무원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송 판사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충격할 당시까지도 피해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진술해 전방주시 의무를 위반한 과실의 정도가 무겁고, 전에도 교통사고로 처벌받은 전력이 수회 있음에도 또다시 범행한 점 등을 고려했다”라고 밝혔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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