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60년 넘은 아버지의 흡연을 단번에 끊게 한 한방

중앙일보

입력 2020.08.05 15:00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6)

“담배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젯밤 꿈에 네 엄마가 나타났는데, 내가 담배 피우려는 데도 화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조용히 담배를 뺏더라. 힘들지 않게 잘 될 것 같다.”

반갑고도 신기했다. 아버지는 어머니 살아계실 때 담배로 인해 숱한 구박을 받으셨다. 몇 번이나 금연 결단을 하셨지만, 집에 있는 동안만 간신히 참으면서 어머니 눈을 속이는 것일 뿐 정작 담배 끊을 마음이 없으셨던 분이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나 역시 몇 번 권유했으나 거부당했다.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전자담배로 바꾸는 것에 만족한 상태였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금연 결단을 하셨지만 정작 담배 끊을 마음이 없으셨던 분이다. [뉴스1]

아버지는 몇 번이나 금연 결단을 하셨지만 정작 담배 끊을 마음이 없으셨던 분이다. [뉴스1]

그런데, 두 달 전 뇌졸중이 발병하면서 비자발적 금연이 시작되었다. 응급실 입원 직후 담배와 커피는 절대 안 된다는 의료진의 지시 탓이었다. 퇴원하며 받아든 안내문에도 역시 절대 금할 음식물로 담배와 커피가 명시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바른생활 사나이’인 탓에 의료진의 지시까지 무시하진 못하셨다. 결국 커피는 믹스커피에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로 다소 우아하게 변경하고, 담배는 내과에서 처방받은 금연보조제의 힘을 빌려 견뎌 보기로 했다.

보통 돌아가신 이가 꿈에 나타나면 앞으로 닥칠 위험을 예언하거나 로또 번호를 알려준다는데, 좀처럼 나타나지 않던 어머니까지 꿈에 나타나 금연을 응원해 주신 것을 보면 그간 담배가 꽤나 그리우셨던 모양이다.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던 금연이 의외의 과정으로 실행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계기, 그리고 당사자의 의지 여부가 결정적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엄마 얼굴 어땠어요? 아플 때 모습이에요, 젊을 때 모습이에요?”
“한창 젊고 건강할 때 모습, 예쁘게 웃었다.”
“아빠도 건강해지시려는가 보다!”

며칠 뒤 아버지는 폐암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하셨다. 뇌졸중 진료 중 우연히 발견된 종양에 대해 아버지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하시며 검사 자체를 거부해 오셨었다. (제25화 참조) 일단 검사는 받고 치료 여부는 차후에 결정하자고 편지도 쓰고 설득도 했지만 쉽지 않았던 결단이 어머니 꿈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다. 역시 아버지에게는 어머니가 최고의 해결사!

아버지는 뇌졸중 진료 중 발견된 종양에 대해 검사 자체를 거부해오셨다. 우리가 쓴 편지에도 설득되지 않았던 아버지는 꿈에 나온 어머니 덕분에 검사를 하기로 결정하셨다. [사진 pixabay]

아버지는 뇌졸중 진료 중 발견된 종양에 대해 검사 자체를 거부해오셨다. 우리가 쓴 편지에도 설득되지 않았던 아버지는 꿈에 나온 어머니 덕분에 검사를 하기로 결정하셨다. [사진 pixabay]

2박 3일에 걸친 입원 검사 끝에 아버지는 폐암2기로 진단되었다. 환자마다 건강상태와 종양 위치와 크기, 전이 여부 등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고, 현재 고령이고 여러 지병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을 최소화한 양성자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어진 양성자센터장님과의 면담에서 “기존 항암 치료가 갖고 있는 고통이나 부작용, 후유증이 없어 훨씬 안전하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속으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돌아보면 옛 어른 말씀은 틀린 것이 없다. 모든 일이 마냥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차분히 멀리 보라는 조언을 되새기게 된다.

아버지에게 급성뇌졸중이 발생했다. (낙심)
응급실 입원을 계기로 60년 이상 피워 온 담배를 끊으셨다. (안도)
뇌졸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낙심)
집에만 계시는 아버지를 위해 언니들이 자주 집에 오게 되었다. (안도)
뇌졸중 치료 중 폐암이 발견되었다. (낙심)
다행히 수술이 가능한 초기라 한다. (안도)
초기지만 고령과 뇌졸중 발병을 감안 수술이 불가하다 했다. (낙심)
대신 방사선치료의 부작용을 최소화한 양성자치료를 하기로 했다. (안도)

물론 양성자치료 후 100% 완치된다는 확신은 없다. 완치되더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 재발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비교적 고통과 부작용 없이 치료를 진행할 수 있다는 말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앞서 걱정하기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현재에 충실키로 했다.

퇴원 후 아버지는 최근 폐암 수술을 받은 친구분과 통화하시더니, “수술이 근본적인 방법이라는데 나도 수술받을 수는 없는지 알아봐라”하셨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고 그냥 이대로 살란다”고 하시던 처음과는 사뭇 달랐다. 기본 검사조차 거부하시던 분이 갑자기 ‘수술’을 언급하시니 당황스러웠다. 현재 상황과 검사 결과를 토대로 여러 의료진이 함께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해 드리고 주치의 선생님과 통화를 통해 “아버지의 경우 다른 부위에 전이가 없어 수술한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씀까지 들으신 뒤에야 겨우 고개를 끄덕이셨다. 덧붙여 예전엔 고가의 치료였지만, 이제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드리자 표정이 밝아지셨다. 첨단 설비와 쾌적한 시설을 갖춘 양성자센터의 모습에 치료비 부담도 큰 것이 아닌가 속으로 걱정하셨던 모양이다.

“어르신들 말씀은 언어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숨은 뜻을 살펴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속마음까지 읽어야 한다.”

또 하나의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 추신 : 이 글이 게재되는 8월 5일 기준, 아버지 금연 11주차,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계신다. 복지부에서 진행하는 금연프로그램에 참여(동네 의원 또는 보건소에 문의), 무료로 처방받은 약이 특별한 부작용도 없으면서 효과도 큰 듯하다. 금연 결심을 실행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도전해 봅시다. 화이팅!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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