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 말고 실선 노래를” 조언에 ‘밤의 여왕’ 고음이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0.08.05 10:16

함께 노래를 부르며 소리를 찾아주는 바리톤 사무엘 윤(오른쪽)의 공개 레슨. 김호정 기자

함께 노래를 부르며 소리를 찾아주는 바리톤 사무엘 윤(오른쪽)의 공개 레슨. 김호정 기자

 지난달 말 서울 한남동의 일신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한 소프라노가 무대에서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불렀다. 피아노의 가운데 ‘도’에서 한 옥타브 위의 ‘파’음까지 짧게 끊어 여러번 부르는, 어렵기로 유명한 곡이다. 정확한 음을 내기도 어렵지만 스타카토로 끊어부르고 곧바로 다음 음도 불러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힘겹게 노래를 마친 그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잘 안된다”고 했다.

유럽 무대 20년차 성악가 사무엘 윤의 공개레슨

바리톤 사무엘 윤(49)이 후배 성악가들을 위해 연 공개 레슨 중 한 장면이었다. 사무엘 윤은 5년 전부터 한국의 후배들을 모아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다. 그 중 한 명을 뽑아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에 연수 단원으로 보낸다. 사무엘 윤은 2000년부터 쾰른 오페라에서 활동했고 2014년 종신 아티스트가 됐다. 이후 런던, 베를린, 파리, 마드리드 등에서 노래했고 특히 독일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2012년 주역을 따내면서 화제가 됐다. 20년동안 유럽에서 활동하며 주요 배역을 맡고 있는 대표적 성악가다.

사무엘 윤이 ‘밤의 여왕’을 부른 소프라노에게 첫 마디를 건넸다. “가진 소리가 참 좋은데 그게 발휘가 안된다. 노래가 나가는 길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만들면 그렇게 무리하게 연습하지 않아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사무엘 윤은 소프라노가 고음을 부를 때의 얼굴 표정부터 근육 쓰는 법까지 지도해가며 소리를 바꿔냈다. “하품할 때 표정을 생각해봐. 하품할 때 예쁘게 보일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근육을 이완해야해.” “점선 대신 실선으로 저 객석 끝까지 보낸다고 상상해보자. 그래야 소리에 라인이 나오는 거야.” 자세하게 지도를 받은 후 소프라노의 고음은 바뀌어 있었다. 높은 음에 정확히 도달해 윤기 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소프라노를 비롯해 사무엘 윤은 이틀에 걸쳐 25명을 공개 레슨했다.

사무엘 윤은 “무대 위 공연만큼 후배들을 만나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2015년에 쾰른 극장장을 설득해 한국인 성악가를 위한 자리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성악도들은 공개 레슨을 열어 다같이 노래를 듣고, 사무엘 윤의 조언에 노래가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올해 공개 레슨에는 유난히 참가자가 많았다. 사무엘 윤은 “코로나 19 때문에 유학을 못 떠났거나 도중에 돌아와 국내에 있는 성악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유럽의 어떤 공개 레슨보다도 수준이 높았다”고 했다. 총 100여명이 동영상을 보냈고 이 중 25명이 공개 레슨 무대에 섰다. 이들에게 사무엘 윤은 오랜 유럽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건넸다. 독일어의 모음과 자음을 정확히 잡아주는 것 뿐 아니라, “아침에 갑자기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하게 되어도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라고 충고하거나 “지휘자가 소리를 5%만 줄이라고 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질문하는 식이었다.

사무엘 윤은 “한국의 성악도들은 어렵고 효과적인 노래를 빨리 익히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인 것을 많이 해봐야하는데 그 과정이 짧다. 기초를 쌓으며 본인 색깔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써야한다.” 그는 쾰른 극장 수습 단원을 선발할 때 실력 뿐 아니라 성실성을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 한국인으로 살아남기는 아주 힘든 일이다. 그 과정을 긍정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2015년 그가 선발했던 바리톤 최인식은 오페라 스튜디오의 수습 단원 2년 후 오페라 극장의 정단원이 됐다. “쾰른에 간 후배들이 잘 해줘서 기쁘고 자랑스럽다. 그들이 자신만을 위해 노래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길 기원한다.” 올해 공개 레슨 끝에는 테너 김승직이 선발됐고 내년 시즌부터 쾰른의 오페라 스튜디오에 참가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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