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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왕실 ‘식기 전쟁’ 승자는 대형 화병 보낸 프랑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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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를 통해 첫 공개된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조불수교(1886)를 기념해 1888년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장식용 대형 화병이다. [뉴스1]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를 통해 첫 공개된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조불수교(1886)를 기념해 1888년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장식용 대형 화병이다. [뉴스1]

눈처럼 말간 백자에 우아한 금테, 역시 금으로 치장한 오얏꽃무늬(이화문). 구한말 조선 왕실이 서양에서 주문 제작한 식기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서양 열강의 수교 압박뿐 아니라 낯선 문물에 맞닥뜨렸다. 특히 왕실의 식문화는 잦아진 서양식 연회에 맞춰 식기류부터 통째로 바뀌어갔다. 상하 구분이 없어진 식탁엔 목이 긴 모란무늬 청화백자 대신에 수프를 담는 튜린(뚜껑이 있는 만찬용 그릇)이 들어섰다. 수저 대신 수입산 포크·나이프가 임금의 양손에 쥐어졌다. 고종은 이 식탁에 마주 앉은 사절단을 대접하며 그들 속뜻을 헤아리려 애썼다.

국립고궁박물관 서양식 도자기전 #열강 중 첫 수교 예물 건네며 환심 #고종, 프랑스 문화에 관심 갖게 돼 #왕실의 오얏꽃 문양 주문 제작도

100여 년 전 ‘개화’의 기치 속에 찾아왔던 조선 왕실의 양식기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 ‘신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이다. 개항 전후부터 대한제국 멸망까지 왕실이 썼던 전통의 청화백자부터 프랑스·영국·독일·일본·중국산 도자기까지 총 310건 400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현대) 문물이 어느 시점에 우리에게 뚝 떨어진 게 아니다”(임경희 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란 걸 일깨우자는 취지다.

프랑스 회사 필리뷔트가 조선 왕실 상징 문양을 새겨 제작한 식기.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프랑스 회사 필리뷔트가 조선 왕실 상징 문양을 새겨 제작한 식기.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이 중 눈에 띄는 게 프랑스산 자기다. 박물관 소장 수입자기 유물 1520점 중에 최다는 일본산(1290)이지만 서양 국가 중에선 프랑스(140)가 영국(32). 미국(15), 독일(10) 등을 제치고 가장 많다. 식기뿐 아니라 화병 같은 장식기나 위생기(욕실 물품)도 여럿이다. “프랑스가 병인양요(1866) 때의 침략 국가라는 부정 이미지를 상쇄하고자 수교 직후부터 공들인 문화 외교 때문”(곽희원 학예연구사)으로 해석된다.

이를 잘 드러내는 게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이다. 프랑스 국립 세브르 도자제작소에서 제작한 대형(높이 62.1㎝) 장식용 화병으로 조불(朝佛)수교(1886)를 기념해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했다. 담대한 형태와 화려한 꽃무늬가 당시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을 대변하는 듯하다. 프랑스는 조선과 조약을 체결한 여섯 번째 서양 열강으로 기념 예물을 보낸 첫 국가였다. 살라미나 병 외에 백자 채색 클로디옹 병도 한쌍 선물했다.

프랑스 지앙 지역에서 생산된 매화가지무늬 앙트레와 접시.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프랑스 지앙 지역에서 생산된 매화가지무늬 앙트레와 접시.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이를 주도한 이는 초대 주조선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 한국에 오기 전부터 세브르 박물관 소장가 모임에 속했던 그는 1888년 취임하면서 당대 가장 인기 있던 세브르 화병 3점을 들고 왔다. 고종은 “귀국 대통령이 선물로 보내준 물건들은 여기에는 없는 물건들이니, 그 성의에 매우 감사하오”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플랑시 공사에게 프랑스 건축 서적을 요청하는 등 프랑스 문화에 관심을 보임은 물론이다. 이후 조선 왕실은 프랑스 필리뷔트 자기 세트를 주문 제작해 쓰기도 했다. 왕실이 이화문 자기를 주문 제작한 것은 일본 노리다케 외에는 이것이 유일하다.

고종이 프랑스 대통 령에게 수교 예물 답례품으로 보낸 반화(盤花) 한 쌍.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고종이 프랑스 대통 령에게 수교 예물 답례품으로 보낸 반화(盤花) 한 쌍.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고종도 답례 선물을 보냈다. 12~13세기 고려청자 두 점과 ‘반화(盤花, 금칠 나무에 각종 보석으로 만든 꽃과 잎을 달아놓은 장식용 인조 분재)’ 한 쌍이다. 고종은 청자를 외교 수단으로 여러 차례 활용했는데 이 청자들은 “가난한 나라의 오래된 물건 중에 가장 가치 있는 물건”(미국의 중국도자 전문가 스티븐 우든 부셸)으로 평가됐다. 곽 연구사는 “플랑시 공사는 한국 도자기가 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던 시절 귀임하면서 수백점의 도자 유물을 세브르 제작소 등에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 컬렉션은 이후 파리 만국박람회(1900)에 출품돼 한국 문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 고종의 답례품은 만날 수 없다. 프랑스에서 대여하기로 합의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불발됐다. 김동영 고궁박물관장은 “코로나 사태가 호전되는 대로 별도 전시를 통해서라도 꼭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들머리에 장식된 150여점의 유리 전등 갓으로 관객을 맞는다. 모두 개항기 조선 왕궁을 밝힌 유물들이다. 1883년(고종 20) 미국을 방문했던 보빙사(우호사절단) 일행의 건의로 1887년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에 한국 최초의 전등이 불을 밝혔다. “나는 암흑에서 태어나 광명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보빙사로 미국에 다녀온 민영익)는 말처럼 이렇게 근대는 ‘빛’으로 다가왔다.

100여년 뒤 대한민국은 전시회에서, 자체 기술로 발전시킨 AR·VR 트렌드에 그 빛을 접목하고 있다. 4부 ‘서양식 연회와 양식기’에선 디지털 매핑(mapping) 기법으로 조선왕실의 연회 분위기와 정찬 코스를 재현한다.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에서 쏜 영상을 통해 푸아그라 파테, 안심 송로버섯구이, 꿩 가슴살 포도 요리 등 12가지 프랑스식 정찬이 마치 실제처럼 필리뷔트 양식기에 펼쳐진다. 낯설게 와서 일상이 된 근대(modernity)를 새삼 실감한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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