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을 대외안보정보원(가칭)으로 개편해 해외·북한의 안보정보 수집과 첨단기술 보안에 주력하게 한다는 고위 당·정·청 협의회의 발표가 지난 7월 30일 나왔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내 정보 수집을 중단하고 대외 정보활동에 주력하는 데 초점을 맞춘 개편이다. 이 개편안이 법률 개정 등으로 확정되면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외 업무만 담당하는 정보기관이 탄생하게 된다. 대외안보정보원은 어떤 성격과 모습이어야 할까.
국정원,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키로 #국내 정보 수집 중단, 해외·북한만 전담 #대외정보기관 대명사 이스라엘 모사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보기관’ 명성 #적성국 핵·미사일 대량살상무기 응징 #70년간 국장 12명…평균 5년6개월 재임 #정치 무풍지대, 명예 존중, 국민 지지 #정권 바뀌어도 모사드 국장 계속 근무 #군 장성 출신 넷, 나머지 현장요원 출신 #적진침투 엘리트 특수부대 출신도 4명 #정보역량은 국가·국민 지키는 지략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보기관’
이런 상황에서 외국에선 대외 담당 정보기관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외 정보기관으로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러시아의 해외정보국(SVR), 영국의 비밀정보부(MI6)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외안보정보원과 지향점이 사뭇 다르다. 기능과 목적, 역사적인 맥락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은 지역별·국가별·상황별·목적별로 서로 달리 운영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는 대외안보정보국이 벤치마킹할 주요 대상으로 보인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강력한 정보역량을 확보하면서 국가안보를 위해 혁혁한 성과를 거둔 대외정보기관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안보환경 속에서 당당하게 생존해온 성과가 모사드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보기관’으로 알려질 정도로 모사드는 뛰어난 해외정보기관이다. 그런 모사드의 철학은 무엇이고 어떤 인물이 국장을 맡아 어떻게 조직을 운영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앞으로 한국이 대외담당 정보기관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정보역량을 강화하는 데 요긴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정보기관 국장의 자격·업무·자세를 살펴보기엔 모사드만한 조직이 없을 것이다.
정권·정치와 분리된 모사드 정보활동
모사드가 어떤 기관인지부터 알아보자. 모사드는 1949년 공식 창설된(실제 활동은 47년부터)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정보수집과 역정보, 암살·납치 등 공작을 담당한다. 모사드는 해외만 담당하고 국내 정보는 신베트가, 군은 아만이라는 조직이 나눠 맡는다.
모사드는 사실 ‘정보 및 특수작전 연구소’라는 뜻의 히브리어 약자다. 누구나 아는 해외정보기관을 ‘연구소’로 굳이 위장하려는 모양새부터 철두철미 보안을 앞세우는 정보기관의 특성을 반영한다. 중요한 것은 ‘특수작전’이라는 단어다. 이는 암살·납치·파괴 등 비합법적인 ‘공작’을 뜻한다. 이름대로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해외정보공작국이다. 국민안전과 국가안보를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정보와 공작의 양날의 칼을 들고 있다. 이 둘은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를 위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 모사드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모사드 국장, 평균 5년 6개월 장기 재임
눈여겨볼 점은 모사드가 71년 역사에서 국장이 12명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평균 5년 6개월을 재임했다.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국장 임기도 지속했다. 서로 다른 정당 소속의 총리 3명을 연이어 모신 국장도 있다. 해외 정보 활동이 정권이나 정치와 분리됐음을 의미한다.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정보수집·정세판단 임무를 수행하며 국민안전과 국가안보를 지키고 정보기관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때문에 선출된 권력인 총리나 의회조차 모사드를 비롯한 정보기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풍토가 형성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선거와 선거 사이의 한정된 기간 권력을 위임받은 정권보다 국가와 운명을 함께하는 정보기관을 국민이 더 믿고 지지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모사드는 피 냄새를 마다치 않고 벌이는 은밀하고 살벌한 정보수집과 공작에 목숨 걸고 몸을 던져왔다.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 묵묵히 할 일을 수행할 뿐 그 공적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살벌한 정보수집·공작 동시 진행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는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임무를 수행한다. 첫째, 해외에서의 비밀 정보수집이다. 정보 수집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둘째, 적성국의 무기 개발과 조달의 방지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란 과학자를 수도 테헤란에서 오토바이 폭탄으로 살해했을 뿐 아니라 아랍 적성국을 위해 무기를 만드는 서구인까지 파리 등에서 살해해 악명을 떨쳤다. (공식적으로는 모두 추정이다) 이 때문에 모사드가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무기 개발자는 살려두지 않는다’ ‘유대인을 해친 자는 반드시 보복한다’는 설이 돌기도 했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셋째, 해외 이스라엘인에 대한 테러 예방이다. 1972년 뮌헨 여름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들이 팔레스타인 검은구월단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됐다가 전원 살해된 사건은 국가적인 트라우마가 됐다. 이스라엘은 인질극을 기획한 팔레스타인의 검은구월단 간부들을 찾아서 보복 살해한 ‘신의 분노’작전을 펼쳤으며, 해외 이스라엘인을 테러로부터 보호할 철저한 보안·정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넷째, 특수외교 및 여타 비밀 관계의 발전과 유지다.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오만 등 비교적 적대감이 적은 나라와 공식·비공식 협력관계를 맺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018년 10월 국교가 없는 이슬람국가인 오만을 방문해 술탄(이슬람군주)인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1940~2020년 1월)를 만나 회담했다. 네타냐후는 모사드 국장과 국가안보보좌관을 동행했다. 같은 시기 미리 레게브 이스라엘 문화체육부 장관이 국제유도대회 참석을 위해 국교가 없는 UAE의 아부다비를 방문해 현지 관계자를 만났다. 아랍권에서 수교국이 이집트와 요르단밖에 없는 이스라엘로선 중요한 임무다.
다섯째, 유대인의 해외이민을 공식 허용하지 않는 나라로부터 유대인을 탈출시켜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임무다. 알제리·모로코·튀니지·리비아·이라크·예멘·이란·시리아·레바논 등 이스라엘과 국교가 없는 중동·이슬람 국가에서 알리야(유대인의 고국 귀환)를 원하는 유대인을 수십만 명이나 귀환시키는 데 모사드의 역할이 컸다.
안보 위협 핵·미사일은 가차 없이 응징
여섯째, 전략·정치·작전 정보의 생산이다. 미국 등 동맹국의 선거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판세를 조기에 파악해 조치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는 국가 전략에서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의외의 승리를 거두자 즉시 뉴욕으로 날아가 트럼프의 본거지인 트럼프 타워에서 그를 만났다. 모사드와 외교라인의 사전 정보와 정세 판단, 정지 작업이 없었다면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일곱째, 해외에서 특수작전 수립과 실행이다. 이스라엘은 1981년 적성국 이라크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당시 건설 중이던 오시리크 핵 시설의 정보를 파악한 뒤 공군 폭격으로 제거한 '오페라 작전'을 펼쳤다. 핵 시설의 위치와 구조 정보를 정확하게 입수해 군에 전달한 주인공은 모사드일 수밖에 없다.
모사드는 아랍 적성 국가들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해 혈안이다. 특히 이들 국가가 북한과 교류하면서 무기개발 정보와 물자, 인력을 확보하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이를 막기 위한 공작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해 군에 전달하는 작업도 모사드의 주요 임무다.
이스라엘 건국(1948년) 이듬해에 창설된 모사드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던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등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1960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압송한 작전이다.
국장 넷은 장성, 나머지 현장 요원 출신
주목할 점은 모사드의 역대 수장 12명 중 4명이 군사 정보와 야전을 경험한 군 장성 출신이고 나머지는 모두 현장 요원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행정이나 정무직 그공직자, 특정정당의 지지자·조력자 출신으로 총리나 정치권의 눈에 들어 수장을 맡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역대 수장 중 4명이 이스라엘군의 엘리트 특수부대인 ‘사예렛 메트칼’ 출신이라는 점도 눈에 띤다. 이 부대는 목숨을 내놓고 적진에 은밀하게 침투해 수색정찰·인질구출·요인암살 등 이른바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을 수행한다. 작전 내용에 대해선 영원히 입을 닫는 전통이 모사드와 일맥상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사드는 군과 긴밀하게 협조해 정보 수집과 판단의 시너지를 높이고 군의 문화를 정보와 공작의 자양분으로 삼으며 발전한 셈이다. 안보 분야 정보가 시급한 이스라엘의 환경에 걸맞은 진화로 볼 수 있다.
서방 접근불가 이란·시리아 정보도 척척
모사드는 물불 안 가리는 요원들 덕분 서방의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평가 받는 이란·시리아 등에 침투해 정보 확보는 물론 파괴 공작까지 벌이고 있다. 이러한 모사드의 해외 정보·공작 역량은 미국은 물론 러시아도 이스라엘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모사드의 모든 작전은 철저히 비밀이다. 국장을 포함한 어떤 조직원도 조직원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으로 자신의 위치나 행적을 개인적으로 노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작전이나 요원의 행동·행적은 철저하게 비밀이다. 관련 사건이 노출돼도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게 원칙이다. 아무리 혁혁한 전과도 자랑하지 않으며 참담한 실수나 실패도 시인하지 않는다. 정부나 국회에서 공식 문책도 하지 않는다.
역량 강화, 정보기관 명예존중, 국민지지
요원의 숫자도 베일에 싸여 1200~7000명으로 추정될 뿐이다. 추정 범위가 이 정도라면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예산은 연간 23억 달러 정도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또한 안개 속이다. 안보 관련 작전을 주로 수행하며 적성국의 무기 개발자와 이스라엘인 학살자가 우선 제거 대상이라는 점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정보기관에서 투명성은 적과의 내통이나 다름없으며 철저한 보안은 그야말로 생명줄이다.
모사드가 정치권에 당당한 건 자체 의지·역량과 함께 정치인의 정보기관 명예 존중, 국민의 애정과 지지 덕분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모사드는 ‘신의 분노도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으로 통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국민 안전과 국가 안보 위기만 우려할 뿐이다.
모사드는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라는 구약 잠언 11장 14절을 모토로 삼는다. 정보 역량 강화는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지략의 핵심이라는 철학을 담았다.
국제위상 걸맞은 해외정보기관 키워야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해외정보기관을 발족하고 운영하려면 이런 정보 철학과 함께 정보 역량 강화, 그리고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해외 담당이든 국내 담당이든 정보기관은 정권이나 정치의 하수인이나 전리품이 아니다. 정권을 넘어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국가기관이다. 확실한 국민 안전과 튼튼한 국가 안보를 원한다면 정부와 정치권은 정보기관을 존중하고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