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퍼붓는다 싶으면 '대기천' 그놈 짓...아마존강 2배 물 품기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해 10월 12일 제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일본 시즈오카(靜岡)시의 도로가 물에 잠겼다. 당시 태풍과 대기천이 결합하면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2일 제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일본 시즈오카(靜岡)시의 도로가 물에 잠겼다. 당시 태풍과 대기천이 결합하면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2일 일본을 강타한 19호 태풍 하기비스(Hagibis).
당시 일본 기상 위성 히마와리 8호에서 촬영한 태풍 하기비스의 영상에는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열대 수증기 고위도 지역 보내는 통로 #국내에서는 불과 2~3년 전 연구 시작 #호우 피해 예방 위해 심층 연구 필요

태풍 오른쪽에 남북으로 긴 구름 띠, 남미 아마존 강의 두 배에 해당하는 물을 머금은 수증기 흐름이 관찰된 것이다.
이른바 대기천(大氣川, atmospheric river)이란 현상이었다.

일본 기상위성이 촬영한 2019년 19호 태풍 하기비스와 대기천의 모습. 태풍의 눈 오른쪽 남북으로 곧게 뻗은 구름이 대기천이다.

일본 기상위성이 촬영한 2019년 19호 태풍 하기비스와 대기천의 모습. 태풍의 눈 오른쪽 남북으로 곧게 뻗은 구름이 대기천이다.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일본 기상학자들의 의견을 인용해 "대기천이 태풍과 결합한 것이 관측된 것은 최초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대기천과 결합한 태풍 하기비스는 도쿄 남서쪽 하코네에 하루 922㎜의 엄청난 폭우를 퍼부었고, 80명 이상이 목숨을 앗아갔다.

대기천은 수증기가 가늘고 길게 이동하는 현상이다.
주로 중위도 저기압의 따뜻한 지역에서 나타나는데, 지구 대기에서 수증기의 생성·소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학자들은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고위도 지방으로 수송되는 수증기 가운데 90% 이상이 대기천을 통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로 불리기도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에서 관찰되는 대기천 사례. 오른쪽 그래프는 대기천의 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수증기 수송 속도를 나타낸다.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에서 관찰되는 대기천 사례. 오른쪽 그래프는 대기천의 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수증기 수송 속도를 나타낸다.

대기천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그림. 자료: 미 해양대기국(NOAA)

대기천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그림. 자료: 미 해양대기국(NOAA)

국내에서 대기천 관련 연구가 시작된 것은 불과 2~3년 전이지만,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알려진 현상이다.
기상학자들은 태평양 하와이에서 시작돼 미국 서부 해안까지 따뜻한 수증기를 빠르게 수송하는 폭풍 이동 경로를 '파인애플 익스프레스(고속)'라고 불렀다.

대기천은 미국 미시시피 강물의 15배나 되는 수증기를 품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2월 27일 열대 북태평양에서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으로 흐르는 폭 350마일(563㎞), 길이 1600마일(2575㎞)의 대기천이 관찰됐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만(灣) 북쪽의 소노마 카운티에는 533㎜의 폭우가 퍼부었고, 러시안 강의 수위는 홍수위보다 4m나 더 높은 13.8m까지 차올랐다.
소나마 카운티에서는 1억 달러(약 1200억 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5개 등급으로 구분하기도

3일 오전 8시 24분 천리안 위성이 촬영한 한반도 주변 구름사진. 한반도 중부지방을 서에서 동으로 지나가는 두터운 구름 띠를 볼 수 있다. 여름철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대기천이 발달한다. 자료:기상청

3일 오전 8시 24분 천리안 위성이 촬영한 한반도 주변 구름사진. 한반도 중부지방을 서에서 동으로 지나가는 두터운 구름 띠를 볼 수 있다. 여름철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대기천이 발달한다. 자료:기상청

〈대기천 등급 구분〉 자료: 미 서부 기상홍수센터(CW3E)

〈대기천 등급 구분〉 자료: 미 서부 기상홍수센터(CW3E)

지난해 초 미국 서부 기상홍수센터(CW3E)에서는 이 대기천을 태풍처럼 카테고리 1~5등급으로 구분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등급은 연직 적분 수증기 수송(integrated vapor transport, IVT) 값과 지속 시간을 바탕으로 매기게 된다.
IVT는지표면에서 수직으로 높은 고도까지 가상의 단면 설정하고, 그 단면을 1초 동안 통과하는 수증기의 양(㎏)을 말한다.

이 IVT 값이 250㎏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대기천이라고 하는데, 지속 시간이 24시간 이하를 기준으로 250~500㎏을 1등급 '약함', 500~750㎏을 2등급 '보통', 750~1000㎏을 3등급 '강함', 1000~1250㎏을 4등급 '극심', 1250㎏ 이상이면 5등급 '예외' 등으로 구분한다.

또, 지속시간이 길어지면 같은 IVT 값이라도 한 단계씩 올라간다.
예를 들어, 800㎏의 수증기가 12시간 계속 수송됐다면 2등급 '보통'이지만, 800㎏이 36시간 지속했다면 3등급 '강함'으로, 60시간 지속했다면 4등급 '매우 강함'으로 달라진다.

남해안 여름비 절반 차지

자료: 국립기상과학원(2019년)

자료: 국립기상과학원(2019년)

국내에서도 지난해 대기천에 관한 논문이 출판됐고, 최근에는 관련 내용을 담은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국립기상과학원 연구팀이 한국기상학회지 '대기'에 제출한 '대기천 상륙이 한반도 강수와 기온에 미치는 영향 연구'라는 논문을 보면, 여름철 한반도 남쪽 지역에서는 전체 강수량의 35% 이상이 대기천에 의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남부 해안지역에서는 대기천에 의한 강수량이 40% 이상을 차지했다.

대기천이 상륙한 날은 강수 강도도 증가했다.
상위 5%의 강수 강도를 보인 날을 기준으로 대기천이 나타난 날에는 대기천 없이 비가 내린 날보다 1일 강수량이 10㎜ 더 많았다.
대기천이 상륙하면 산지 지형에서는 강수 강도가 더 많이 증가했다.

자료: 국립기상과학원(2019년)

자료: 국립기상과학원(2019년)

공주대 장은철 교수팀이 국립기상과학원에 제출한 '장마철 집중호우 특성 분석 및 예측성 향상' 보고서에서도 "동아시아에서는 여름 몬순의 영향으로 여름철에 대기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데, 이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동아시아로 수증기 공급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온난화 계속되면 더 자주 발생 

일본 열도에 접근하는 대형 태풍 '하기비스' 위성 사진. [AP=연합뉴스]

일본 열도에 접근하는 대형 태풍 '하기비스' 위성 사진. [AP=연합뉴스]

[자료 일본 기상청]

[자료 일본 기상청]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한반도의 경우 대기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츠쿠바 대학 카마에 유이치(釜江陽一) 교수 등은 지난해 '환경 연구지(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구온난화로 수증기가 증가하면서 동아시아의 여름을 포함해 북반구 지역에서 대기천이 더욱 자주 나타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기상과학원 연구팀은 지난해 논문에서 "동아시아의 경우 여름철에 대기천이 지나갈 확률이 높고, 국내 연간 강수량 또한 여름에 집중되므로, 동아시아에서 대기천이 발생할 경우 호우와 같은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논문 저자인 기상과학원 문혜진 박사는 "현재 국내에서는 기후변화 측면에서 대기천을 연구하고 있고, 아직은 실시간으로 대기천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사후에 분석을 통해 확인하는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태풍 예보처럼 '대기천 예보'를 통해 여름철 호우 피해 예방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