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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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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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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왕의 일대기’라는 뜻의 『라마야나』는 산스크리트어로 기록한 고대 인도의 서사시다. 기원전 11세기부터 전해 내려온 걸 기원전 3세기 시인 발미키가 엮었다고 전해진다. 비슈누 신의 환생인 코살라국 라마 왕자가 왕위에 즉위하기까지 무용담이다. 작품에서 라마 왕자와 대결하는 상대로 마왕 라바나가 나온다. 작품 중간에 라바나가 자신의 왕국을 찾아온 사신을 죽이려 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라바나 동생이 “고대 관습에 따라 사신이나 전령을 죽이면 안 된다”고 만류한다. 외교사절의 안전을 보장하는 외교관 특권의 역사는 수천 년이나 된다. 오래된 일종의 관습법이다.

관습법이다 보니 항상 잘 지켜진 건 아니다. 전쟁 도중 외교사절을 처형하는 장면이 역사 속에 종종 등장한다.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은 상대국에 외교관 특권을 요구했다. 그리고 자국 외교사절이 해를 입으면 상대를 멸망시켜 보복했다. 13세기 초 몽골 사절단과 카라반을 학살한 뒤 멸망한 카와라즈미안 제국이 대표적 사례다. 근대에 들어서도, 프랑스 혁명 후 혁명 정부와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적대적으로 행동했다는 이유로 파리 주재 일부 외교관을 투옥했다.

외교 관계에서 불평등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특정 외교 사안을 둘러싼 오해와 갈등도 생겨난다. 그 잘잘못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일이 잦아지자 국제사회가 해결책 모색에 나섰다. 1961년 4월 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엔 주재로 외교 관계와 외교 특권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53개 조의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채택했다. 3년 뒤인 1964년 4월 24일 시행에 들어갔다. 협약에 따르면 ‘외교관의 신체는 불가침이다. 외교관은 어떠한 형태의 체포 또는 구금도 당하지 아니한다.’(29조) ‘외교관은 접수국의 형사재판 관할권으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31조1항) 외교관 면책 특권의 주요 내용이다.

뉴질랜드 정부가 성추행 혐의를 받는 외교관 문제로 한국 정부를 압박한다. 뉴질랜드에서 사법 절차를 진행하게 해달라며 총리에 이어 부총리(외교부 장관)도 나섰다. 국내 여론은 외교부와 해당 외교관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것 같지 않다. 전문가들은 외교부에 대해 ‘외교적’ 해법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외교적’이라는 용어에 담긴 뜻이 참 심원하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