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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판 뉴딜’ 명목으로 관제 펀드 또 만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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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한국판 뉴딜 사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의 제안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들이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한다. 펀드로 모은 자금은 5G·자율자동차·친환경 분야 등에 투자한다는 복안이다. 아직 정확한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원금 보장에 연 3% 안팎의 수익률을 제공하는 조건이 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당정, 연 3% 수익 보장 뉴딜펀드 추진 #민간 자율성 위축에 재정 부담도 우려

부동산에 치우쳐 있는 시중 부동자금을 정책과 맞물린 생산적 투자처로 유도하고 국민의 재산 증식도 돕겠다는 의도는 이해할 만하다. 현재 은행권 수신 금리가 1% 남짓인 상황에서 원금을 보장해 주고 수익률도 예금 이자의 2~3배 정도에 달한다니 국민 관심도 끌 법하다. 그러나 특정 산업 육성을 내걸고 국가가 주도하는 관제 펀드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선 원금과 시장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려면 결국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정부가 주도한 관제 펀드는 대부분 성과가 좋지 않았다. 친환경 기업 투자로 관심을 모았던 이명박 정부의 ‘녹색펀드’는 수익률 부진으로 현재 대부분의 자금이 이탈했다. 박근혜 정부 때 생긴 ‘통일펀드’도 남북관계 경색으로 최근 1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현 정부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펀드’는 반도체 산업에 힘입어 비교적 선방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여전히 변수가 많다.  재정을 들여서라도 펀드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발상이라면 재고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민심 이반을 수익 보장형 펀드로 만회하려 한다는 의심까지 사는 상황이다.

관제 펀드가 민간 투자의 흐름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최근 민간 투자 활성화 방안으로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소유를 허용하기로 했지만, 각종 규제를 둘러치는 바람에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을 의식해 CVC의 차입 한도, 외부자금 조달 비중, 해외투자 자산 비중 등에 촘촘한 제약을 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관제 펀드 출범은 민간 벤처 투자의 자율성과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관제성 뉴딜펀드 조성 과정에서 민간 기업이나 금융사에 대한 손목 비틀기가 나타나지 않을까도 걱정스럽다.

뉴딜 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면 굳이 관제 펀드를 조성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민간의 자율성과 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관제 펀드를 통해 조성되는 산업 생태계는 오래가기 힘들다.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을 신산업이나 벤처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완화나 민간 펀드에 대한 간접 지원이 차라리 더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