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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찰나의 표정, 그걸 위해 액션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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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화려한 문신과 과감한 패션을 선보인 이정재는 ’촬영장에서 스태프들로부터 ‘과한데 이상하게 어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화려한 문신과 과감한 패션을 선보인 이정재는 ’촬영장에서 스태프들로부터 ‘과한데 이상하게 어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끝까지 내 식대로 응징한다. 이상하리만치 집요하고 히스테릭한 모습이 ‘레이’한테 읽히지 않으면 인남(황정민)을 그렇게 쫓는 것에 대해 관객을 설득 못 시킬 것 같았어요. 어디까지 밀어붙여야 하는가. 내가 최대한 과하게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인가, 테스트 해봤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주연 이정재 #베테랑 킬러 쫓는 교포 야쿠자 역 #3개국 오가며 황정민과 추격전 #“해본 역할 중 가장 독특한 캐릭터”

5일 개봉하는 범죄 액션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에서 암살자 인남을 뒤쫓는 무자비한 재일교포 야쿠자 레이를 연기한 배우 이정재(48)의 말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레이를 “내가 해본 역할 중 가장 독특한 캐릭터”라 소개했다.

황정민과는 범죄 느와르 ‘신세계’(2013) 이후 7년 만의 재회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 정민이 형이 캐스팅돼 있었어요. 출연 결정에 영향이 꽤 있었죠.” 그러나 ‘신세계’와는 “다른 색깔”이란다. “정민 형과 (‘신세계’ 때와 서로) 역할을 바꾼 것 같은 느낌이죠.”

영화에서 레이는 자신의 친형 같은 존재를 암살한 인남을 일본·한국·태국까지 3개국을 넘나들며 추격한다. 목·가슴팍을 뒤덮은 화려한 문신, 의사 가운이 연상되는 흰색 긴 코트를 휘날리며 첫 등장하는 일본 장례식장 장면부터 강렬하다.

“맹목적으로 인남을 쫓기만 해서는 지루하지 않을까 했어요. 왜 저렇게까지 쫓는가를 대사나 상황이 아니라 그냥 레이를 딱 보는 순간 ‘쟤는 저럴 것 같애’라고 룩(Look)과 표정, 느낌으로 설명되게 해보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이죠. 첫 장면이 가장 중요했어요.”

시나리오에 레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개인 스타일리스트와 상의하며 스타일을 찾아갔다고 했다. “첫 미팅 때 USB에 담아간 룩을 쫙 한번 선보였죠. (최종 선택되지 않은) 핑크 머리에 흰 부츠, 주황색 반바지 등을 보여줬더니 다들 당황하더라고요. 영화팀이 잡은 룩은 군중 속에서 식별되지 않는 훨씬 다크한 킬러였거든요.”

태국에서 펼친 자동차 추격 액션. 이번 영화는 전체 분량의 80%를 해외에서 촬영했다.

태국에서 펼친 자동차 추격 액션. 이번 영화는 전체 분량의 80%를 해외에서 촬영했다.

인남 역의 황정민은 이번 영화 액션에 대해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낯설었다. 정재와 연습을 많이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레이는 칼·총·맨주먹 등을 총동원해 봐주는 상대 없이 ‘인간 사냥’을 벌인다. 인남에게도 복수를 넘어, 오직 목숨줄을 끊으러 온 지옥 사자처럼 공격을 펼친다. ‘빅매치’(2014)에서 서울 도심 속을 질주했던 우직한 파이터 익호, ‘도둑들’(2012)의 유들유들한 도둑 뽀빠이에겐 없던 모습이다.

“연기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찰나의 표정이죠. 그 표정을 위해서 전체 액션신을 하는 거라 보면 되거든요. 액션도 액션이지만, 끝난 다음에 얼음을 씹어먹거나 하는 것이 저에겐 중요했어요.”

레이가 빨대 꽂은 아이스커피를 즐겨 드는 설정은 “사람을 죽이러 온 애가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독특함을 표현하려고” 그가 고안한 것이다. 레이를 만난 사람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극 중 대사는 코엔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살인마의 명대사를 따왔다.

“가만히 있을 때도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 이상한 표정, 그런 느낌을 유지하고 싶어서 현장에서도 철저히 혼자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촬영 끝나고도 주위에선 제 얼굴에 레이 느낌이 남아있다고 그러시더군요.”

두 번째 만난 황정민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신세계’ 이전의 기억부터 떠올렸다. “형이 ‘달콤한 인생’ 이후 몇 작품 할 때까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형이 애기 안고 산책하는 장면도 보고 서로 인사도 했거든요. ‘신세계’ 땐 그 황정민과 같이 연기하는 것 자체가 설렜죠. 정민 형과 ‘신세계’보다 연기적으로 더 열심히 해서 재미난 영화 찍어보자, 그런 얘기 많이 했어요.”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해 배우 28년 차. 최근엔 첩보 액션 영화 ‘헌트’(가제)로 직접 주연을 겸해 감독 데뷔한다고 발표했다. 영화 ‘태양은 없다’(1999)부터 22년 지기 ‘절친’이자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 공동 대표인 배우 정우성을 공동 주연으로 점찍고 출연을 설득 중이다.

“‘도둑들’ 때 홍콩 배우 임달화 선배가 ‘지난달에 영화 프로듀싱을 했고 이번 달엔 직접 쓴 시나리오가 제작에 들어가고 또 몇 달 후엔 직접 연출한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 세게 맞은 듯했어요. 아, 배우·연출 나눌 것 없이 영화인이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큰 자극을 받았죠. 이후로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조금씩 적어보며 아이템을 준비해왔어요.”

계속해서 도전하는 이유는 “한계를 느껴서”라고 했다. “오래 연기하다 보니까 내 안에 있는 건 거의 다 꺼내쓴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요.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는 아주 큰데, 이정재라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보여드렸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죠, 솔직히. 그럴 땐 운동이나 산책하다 보면 힘이 좀 생긴 것 같고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에 함께한 황정민 형, 박정민씨 같은 연기를 보며 자극도 받죠.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어디든 가고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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