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지 2년 반이 넘었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답방은 요원해 보인다. 한·중 관계가 날로 악화하는 미·중 관계의 유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 심화, ‘항미원조’ 선전 돌입 #중국군 참전 70주년인 10월 25일 기념 #베이징과 단둥에 항미원조기념관 재개장 #‘전랑’ 주연 우징 출연, 항미원조 영화 촬영 #CCTV, 드라마 ‘압록강 넘어’ 제작중 #
2일 홍콩 명보(明報)와 중화권 인터넷 매체 둬웨이(多維) 등에 따르면 올 하반기 중국 방송과 영화, 드라마 제작에서 중점 주제로 한국전쟁 70주년을 소재로 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움)’가 정해졌다.
최근 무력 충돌 운운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사이가 나빠지는 미국에 각을 세우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 이면엔 중국 인민에 대미 적개심을 고취해 난국을 타파하자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중국 인민혁명군사박물관은 중국 사회에 공개적으로 ‘항미원조와 관련한 문물과 사진’ 등을 수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군사박물관엔 1995년 만든 항미원조기념관이 있는데 2010년까지는 간헐적으로 전시하다 지난 10년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한데 민간의 한국전 참전자나 유족으로부터 관련 물품을 받아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 참전 70주년이 되는 오는 10월에 다시 개관하겠다는 것이다. 또 폐관 상태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 있는 항미원조기념관도 동시에 문을 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선 지난 17일 중국 방송라디오총국은 전국 규모의 회의를 갖고 항미원조 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나서기로 했다. 항미원조 주제의 영화나 드라마는 중국 업계에서 이제까지 사실상 ‘금기’ 분야로 꼽혔다.
지난 2001년 중국 중앙텔레비젼(CCTV)이 거액을 투자해 찍은 ‘항미원조’ 드라마 시리즈가 당국으로부터 상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 2001년 9.11 테러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 중국은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반테러 공조를 약속한 터였다.
이후 한국전쟁 정전 55주년이던 2008년과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 2010년, 또 정전 60주년인 2013년 등에도 항미원조를 주제로 영화 촬영을 신청했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모두 불허됐다. 이후엔 이렇다 할 신청도 하지 않게 됐다.
한데 지난해 5월 미국과의 무역 마찰이 격화되며 중국의 입장이 돌변했다. 미국과의 항전 의지를 고취하기 위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과거 찍었던 영화 ‘상감령’과 ‘영웅아녀(英雄兒女)’, ‘기습’ 등을 잇달아 방영했다. 중국 고위층에선 편수 부족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올 하반기 대대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중국에서 크게 히트한 영화 ‘전랑(戰狼)’과 ‘유랑지구(流浪地球)’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유명 배우 우진(吳京)도 항미원조 주제의 영화 ‘금강천(金剛川)’을 찍는다고 한다. 제작비는 4억 위안(약 680억원)으로 알려졌다.
장진호 전투를 그린 ‘빙설장진호(氷雪長津湖)’는 5억 2000만 위안을 들여 이미 지난해 말부터 촬영 중이다. 여기에 ‘최후의 방어선’, ‘혈전 상감령’ 등과 같은 영화도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CCTV가 거액을 들인 TV 드라마 ‘압록강을 넘어서’도 준비 중이다. 한마디로 중국 영화계와 방송가에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전쟁물이 봇물을 이룰 예정이다. 미국이 주요 타깃이긴 해도 한국에 불똥이 튀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이 같은 중국 내 항미원조 열기는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는 오는 10월 25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0월엔 중국 당국이 외국의 여러 지도자를 초청해 대대적인 항미원조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행사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참여 여부가 관심을 끈다.
이처럼 중국에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항미원조 열기가 고조되는 동안엔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한류(韓流)의 중국 재상륙 시점 또한 그만큼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