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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첫 장애·비장애 복합시설…160분 토론서 갈린 주민들

중앙일보

입력

서울 강서구 ‘어울림플라자’ 주민설명회 보니

서울시가 전국 최초의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복합 문화복지공간 '어울림플라자' 건립과 관련해 7월 30일 강서평생학습관에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주민들이 질의응답에 앞서 서울시의 사업계획과 안전대책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전국 최초의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복합 문화복지공간 '어울림플라자' 건립과 관련해 7월 30일 강서평생학습관에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주민들이 질의응답에 앞서 서울시의 사업계획과 안전대책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서울’이라는 비전을 내걸고 전국 최초로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쓰는 복합 문화·복지공간을 짓겠다고 했지만 추진계획을 세운 지 5년이 지나도록 새 건물이 들어설 부지의 건물 철거도 못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장애인·비장애인 복합시설 난항 #인근 학교 학부모 “공사 시 아이들 안전 걱정” #장애인단체 “계획보다 장애인 시설 확 줄어” #인근 지역 주민 “장애인시설이라 반대 아냐”

이 문화·복지공간의 이름은 어울림플라자다. 말 그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지낸다는 뜻이다. 서울시는 지은 지 40년이 넘어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은 서울 강서구 등촌동 옛 한국정보화진흥원 건물을 허물고 어울림플라자를 짓기로 했다. 총 사업비는 1140억원에 달한다.

시는 2013년 옛 한국정보화진흥원 건물을 매입한 뒤 2015년 어울림플라자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당초 장애인 교육·연구 등을 위한 장애인플라자를 계획했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어울림플라자로 바뀌었다. 2017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위·수탁 계약을 했으며 지난해 하반기 기본설계안이 나왔다.

올해 7~8월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내년 하반기 착공해 2024년 2월 준공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역 주민,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 장애인 단체 등의 각기 다른 의견으로 철거 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이다.

'어울림플라자'가 들어설 구 한국정보화진흥원 건물과 그 옆 백석초등학교. [사진 네이버지도 캡처]

'어울림플라자'가 들어설 구 한국정보화진흥원 건물과 그 옆 백석초등학교. [사진 네이버지도 캡처]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주민 의견을 듣기 위해 강서평생학습관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이들의 의견이 2시간 40분여 동안 설명회장을 가득 메웠다.

먼저 한국정보화진흥원 건물 옆 백석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공사 위험에 우려를 표하며 대책을 요구했다. 등촌동 주민이자 백석초 학부모인 A씨는“공사 기간 통학로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소음·비산 등으로 학생들 건강, 학습권이 침해받을까 우려된다. 과거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의 면담에서 주민들의 동의 아래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등촌동 주민은 “원래 건립 목적은 장애인복지시설이었는데 설계안을 보면 장애인시설은 전체의 20% 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 20%를 위해 굳이 이 건물을 지어 아이들이 정신적 고통과 피해를 봐야 하는 거냐. 건물을 짓는 정체성과 목적이 뭐냐”고 물었다.

어울림플라자는 연면적 2만3758㎡로 지하 4층, 지상 5층 규모다. 복합문화센터가 전체의 22.5%, 임대시설이 21.5%, 장애인복지시설이 20%, 주차장 등 공용시설이 36%를 차지한다. 수영장, 도서관 등 주민편의시설과 장애인치과병원, 교육을 위한 객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서울시 '어울림플라자' 조감도. [사진 서울시]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서울시 '어울림플라자' 조감도. [사진 서울시]

조경익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장은 “강서구 지역의 문화복지시설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서울시는 앞으로도 장애인·비장애인 공간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면서 “현세대가 조금 참으면 공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에 주민들은 “성인은 몰라도 왜 어린아이들에게 희생을 감수하라고 하느냐”, “함께하는 사회를 원한다고 했는데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요구할 이유는 없다”며 재반박했다.

일부 주민은 수영장, 도서관, 지하주차장 등을 꼭 포함하지 않아도 되니 공사 기간과 범위를 축소해달라고 했지만 서울시는 다른 주민들의 요청이 있었다며 조율이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사 건물 바로 옆에 산다는 한 주민은 “장애인시설이 들어온다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평생 일해 마련한 집인데 채광, 안전, 소음, 사생활 침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단체도 나섰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고건 전 서울시장 때부터 상의하던 문제인데 어느 날 장애인플라자가 어울림플라자로 바뀌었다”며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우리는 가만히 있겠느냐. 장애인도 주민”이라고 토로했다. 장애인 가족을 둔 한 여성은 “장애인 치과가 들어오기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3년 정도면 끝날 공사인데 답보 상태인 것이 마음 아프다”면서 양보와 협의를 호소했다.

장애인, 비장애인을 위한 복합 문화복지공간 '어울림플라자'가 들어설 부지의 현재 모습. [사진 서울시]

장애인, 비장애인을 위한 복합 문화복지공간 '어울림플라자'가 들어설 부지의 현재 모습. [사진 서울시]

어울림플라자가 완공되면 주민들에게도 좋을 것이라며 불필요한 논쟁을 그만하고 구체적 안전대책을 마련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한 주민은 주민 의견을 모으기 위한 협의회를 구성하자는 의견을 냈다.

SH공사 측이 공사 기간 통학로 안전 확보는 물론 외부 전문기관의 관리감독에 따라 안전하고 지역에 최적화된 공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주민들은 서울시와 SH공사, 강서구가 서로 책임을 떠밀며 그 동안 주민들과 원활하게 소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백석초의 합의 없이는 강서구에서 철거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백석초 교장이 통학로 안전대책협의회 구성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원만한 추진을 위해 계속 협조를 구하고 함께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주변 아파트, 백석초 학부모, 인접 주민 등 그룹별 소통을 더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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