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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구하다 딸까지 급류 휩쓸려…가족 살리고 아빠 매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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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전 7시쯤 양계장 집 엄마랑 딸이랑 맨발에 산발을 하고 찾아와 ‘살려 달라’고 외치며 온 동네를 뒤집고 다녔어요. 아저씨는 창문으로 이들 가족 3명이 나가게 도운 뒤 포클레인으로 주변을 정리하다 집이 쓰러지려 하니까 몸으로 받치고 있었대요. 갑작스러운 산사태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음성 낚시터, 제천 캠핑장서 2명 #서울 도림천에서도 80대 숨져 #충주 출동 소방대원 급류에 실종 #충북선·태백선 열차 운행 중단

2일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주민 1명이 매몰돼 숨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마을 주민들은 피해 현장 근처에 모여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10분 화봉리의 한 양계장에서 산사태로 토사가 밀려 들어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2시간여 뒤 소방당국은 A씨(58)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웃집 70대 부부는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비가 쏟아진 건 처음 봤다”며 “양계장 집 무남독녀 외동딸이 다 커서 좀 먹고살 만해졌는데 그렇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안성시 죽산면 장원리에 사는 B씨(73·여)는 매몰됐다가 신고 3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자정부터 오후 2시까지 집계된 누적 강수량은 안성 286.5㎜, 여주 264㎜, 이천 231㎜, 용인 204.5㎜ 등이다.

충북 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린 2일 충주시 엄정면의 한 도로가 침수돼 있다. 엄정면에는 이날 오후 1시까지 312㎜의 폭우가 내렸다. [연합뉴스]

충북 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린 2일 충주시 엄정면의 한 도로가 침수돼 있다. 엄정면에는 이날 오후 1시까지 312㎜의 폭우가 내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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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북부 지역과 강원도 남부 지역에 시간당 50㎜가 넘는 강한 비가 계속 내리면서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충북소방본부와 단양소방서에 따르면 단양군 어상천면 심곡리에선 오전 11시55분 밭에서 배수로 물길을 내던 주민 C씨(72·여)가 논에 빠져 급류에 휩쓸리자 이를 본 셋째 딸(49)과 딸의 지인(54)이 그를 구하려다 함께 실종됐다. 딸의 동생은 “‘엄마’하고 소리친 뒤 언니와 지인이 잇따라 논에 뛰어들었는데 5초도 안 돼 사라졌다”며 “몇년 만에 언니와 휴가 맞춰 놀러왔는데…”라고 말했다. 충주에서는 오전 10시30분쯤 산사태로 유실된 토사가 축사와 농가를 덮치면서 D씨(56·여)와 E씨(77·여) 등 주민 2명이 숨졌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 인근 낚시터에선 F씨(59)가, 제천시 금성면의 캠핑장에선 G씨(42)가 숨졌다. 캠핑장에 있던 손님 166명은 인근 교회로 긴급 대피했다.

충주시 산척면의 한 하천에서는 가스 폭발로 인한 주택 붕괴 현장에 출동하던 충주소방서 구조대원 H씨(29)가 도로 유실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소방당국이 27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수색 중이나 폭우로 사고 지역 하천의 수량이 늘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이날 오후 5시3분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담터계곡에서 물놀이하던 20대 남자 2명이 물에 휩쓸렸다가 구조됐으나 한 명은 숨졌다. 한국철도(코레일)에 따르면 이날 폭우로 충북선 제천~대전 전 구간과 태백선 제천~동해 전 구간의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일부터 이틀간 내린 폭우로 2일 오후 8시 기준 인명피해는 사망 7명(서울1, 경기1, 강원1, 충북4), 실종 8명(충북8), 부상 6명(경기2, 강원2, 충북2)으로 집계됐다.

앞서 지난 1일 낮 12시3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화교 인근 도림천에서 급류에 휩쓸린 I씨(80대)가 구조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숨졌다. 영등포구 대림역 인근 도림천 산책로에서는 행인 20여 명이 고립됐다가 1시간여 만에 전원 구조됐다. 상습 침수 지역인 강남역 일대에 또 물난리가 났다. 맨홀 뚜껑이 열린 채 하수가 역류하고 흙탕물이 인도를 뒤덮었다.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데다 도로 포장률까지 높아 기습 폭우에 도로·인도 등이 물바다가 된 적이 있다.

김민욱 기자, 충주·단양=신진호·박진호 기자,
안성=채혜선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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