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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전환 당연하단 與…3년전 김현미 "월세전환, 서민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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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월세 옹호’라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4년 후 꼼짝없이 월세, 이제 더 이상 전세는 없겠구나”라고 외쳐 큰 호응을 얻은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을 반격하려다 벌어진 일이다. ‘속도전’ 속에 정책 목표의 정당성과 수단의 유효성에 대한 상임위 차원의 토론이 생략된 채 장외 논쟁을 벌이다 혼란스런 민심에 불을 지르는 모양새다. 학계에서도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하는 보편적 민심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냈다”(윤주선 홍익대 교수)는 지적이 나온다.

헛발 짚은 반격

‘윤희숙 신드롬’ 에 맞선 민주당 측 첫 주자는 3선의 박범계 의원이었다. 그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4년 뒤 월세로 바뀔 걱정? 임대인이 그리 쉽게 거액 전세금을 돌려주고 월세로 바꿀 수 있을까”라며 윤 의원이 제기한 전세 소멸 우려를 일축했다. 이어 “(윤 의원이)임차인을 강조했는데 오리지날은 아니다. 연설 직전까지 2주택 소유자”라며 윤 의원 신상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대구·경북(TK) 지역 사투리를 지칭한 듯 “이상한 억양”을 운운해 통합당으로부터 “지역 비하 발언”이라는 반발을 샀다.

불에 기름을 부은 건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었다.“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 전세제도 소멸을 아쉬워하는 이들의 의식 수준이 개발시대에 머물러 있는 거다.” 전세의 월세 전환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취지의 주장이었지만 “의식 수준”을 거론하는 비하성 발언은 성난 무주택 민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윤 의원이 이어 “은행 대출로 집을 구입한 사람도 이자를 은행에 월세로 지불하는 월세입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쓰자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내 집을 갖고 은행 이자를 내는 것과 영영 집 없이 월세 내는 게 어떻게 같은가”, “월세를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라는 비난이 넘쳤다. 윤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마치 전세는 선이고 월세는 악이라고 규정짓는 것 같아 글을 쓰게 됐다”며 “결국 임대차 보호법 통과로 인해서 임차인의 선택은 넓어지고 보호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완성추진당 국토연구원/서울연구원 간담회에서 박범계 부단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완성추진당 국토연구원/서울연구원 간담회에서 박범계 부단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부동산만 나오면 왜

민주당과 정부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의 전세 선호를 모를 리 없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2017년 6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안호영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자료에 “전세의 월세 전환과 전셋값 상승으로 서민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면 서민이 힘들어진다는 전제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말이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30일 전세 소멸을 두고 “어쩔 수 없다. 꾸준히 지속해 왔던 현상”이라며 안타깝지만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월세 전환을 지지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까지 끌어들였다.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전세서 월세 전환 흐름 거스를 수 없다”는 2014년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공유하면서다. 최 부총리는 2014년 12월 경제정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요건 완화 ▶택지·건설 규제 개선 ▶금융세제지원 추진 등 시장을 ‘풀어주는’ 정책을 대거 내놨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서민 주거 불안 해소가 시급하다”는 논리였다.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고 매매시장을 활성화하겠다.” 지난 7·10 후속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보유세·양도세를 동시에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올린 현 정부·여당과는 정반대 스탠스다. ‘전세→월세 전환 가속’이라는 현실인식은 같았지만 완전히 다른 대처를 내놓으면서 한 말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미래통합당에 '윤희숙 바람'이 불고 있다.윤 의원은 지난달 30일 임대차 3법에 반대하는 본회의 5분 연설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 초선'이 됐다. 인기몰이 요인으로는 전문성에 바탕을 둔 논리와 호소력이 꼽힌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에 '윤희숙 바람'이 불고 있다.윤 의원은 지난달 30일 임대차 3법에 반대하는 본회의 5분 연설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 초선'이 됐다. 인기몰이 요인으로는 전문성에 바탕을 둔 논리와 호소력이 꼽힌다. [연합뉴스]

정치 공세 가속

여권이 좌충우돌한 가운데 야당은 부동산을 소재로 한 정치 공세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강남 부동산 잡는데 헌법이 방해가 된다면, 헌법도 고치겠다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열차가 헌법이라는 궤도에서 이탈했다”며 “사적 소유는 모두 국가가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은 150년 전 칼 마르크스가 던진 공산주의”라고 썼다. 배준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월세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전세보다 훨씬 부담이라는 것은 상식같은 이야기다. 왜 부동산 정책이 22번이나 실패하는지 이해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민심이 단기 득실에 민감하다고 분석한다. “당장 서민들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봐야한다. 월세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월세 지출만큼 삶의 질이 줄어드는 저소득층에는 월세가 당연히 나쁘다”(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설명이다. 윤주선 홍익대 교수는 “전세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기 때문에 (윤희숙 의원) 연설이 화제가 되는 것”이라며 “전세는 목돈이 들어가 있어서 주거 사다리라고 하는데 거기다가 대고 월세가 나쁘지 않다고 하는 건 목돈이 없는 사람들 사정을 아예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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