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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0분이면 될 복합기 설치, 한 시간 끙끙 댄 어느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76)

요즘 집에서 일하는 ‘언택트’수요가 많아 2주 기다려야 한다던 복합기가 주문한 지 사흘 만에 왔다. 주문이 몰리니 서둘러 물건을 확보한 것 같다. 설명서 봐가며 설치하는데 처음부터 헷갈린다. 지시대로 카트리지를 끼웠지만, 본체가 안 닫힌다. 세게 누르면 부러질 것 같아 한참을 전전긍긍, 이런, 포장용 플라스틱을 안 뺐네. 별것도 아닌 일에 한 시간이나 걸렸다.

역설적으로 그런 굼뜬 동작이 나의 가장 효과적인 노하우다. 집안 곳곳을 손볼 때도 그렇다. 분수에 맞게 일을 해야지, 기술자 흉내 내다간 낭패 본다. 뭘 풀 때는 조립할 때 생각해서 폰으로 사진 찍어두고, 페인트칠도 소심하게 야금야금, 중간에 공구 찾으러 다니지 않도록 시작 전에 충분히 준비….

요즘은 소비자가 직접 사용 못 할 만큼 어렵게 만들어놓은 물건이 별로 없다. 설명서 봐도 모르겠으면 유튜브가 있다. 세면대 팝업 교체, 한 스위치에 전등 두 개 연결, 실리콘 작업 모두 유튜브에서 배워 천천히 하나씩 해결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늘 바삐 서두는 습성이 몸에 붙었다. 퇴직 후 나 혼자 걷는 길에서조차 의미 없이 서두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를 늦춰 주변을 살펴보면 빠르게 살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pixabay]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늘 바삐 서두는 습성이 몸에 붙었다. 퇴직 후 나 혼자 걷는 길에서조차 의미 없이 서두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를 늦춰 주변을 살펴보면 빠르게 살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pixabay]

손재주만 그런 게 아니다. 온라인에서도 모바일 간편결제, 공인인증, 카드 등록, 지문 등록, ISP 설치…. 정신없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된다. 퇴직 후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독학할 수밖에 없는데, 생각과 몸을 여유롭게 바꾸니 하나둘씩 아는 게 늘고, 그러면서 ‘천천히’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천천히’의 결정판은 자기 살 집을 직접 짓는 사람이다. 업자에게 맡기면 성에 안 차고 돈도 많이 드니 직접 해보겠다며 집 짓기 학교부터 시작해서 전문가 도움받아가며 몇 년에 걸쳐 짓는다. 존경스럽다.

‘천천히’가 정답인 건 알겠는데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실 아직도 식당에서 종업원이 천천히 움직이거나, 상대방이 밥을 아주 늦게 먹거나, ARS에서 뻔한 소리가 나오면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어려서부터 빠르고 능숙한 게 미덕이라고 배웠고, 그 습관 덕분에 먹고 살았으며, 퇴근 후 쉴 때조차 ‘생활의 달인’을 보며 빠른 손놀림에 감탄했으니 몸속에 ‘빨리빨리’ 유전자가 생긴 것 같다.

늘 바쁘게 살던 시절에는 잘못한 일도 없이 죄인 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하루 24시간 동안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노심초사, 행동은 허겁지겁. 그나마 젊은 체력이라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박헌정]

늘 바쁘게 살던 시절에는 잘못한 일도 없이 죄인 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하루 24시간 동안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노심초사, 행동은 허겁지겁. 그나마 젊은 체력이라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박헌정]

그러니 만사 귀찮다며 늘어져 있다가도 뭘 할 땐 정신 차리고 후딱 해야지, 느릿느릿한 건 문제 있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천천히’가 ‘익숙지 않음’, ‘더듬거림’으로도 여겨진다. 특히 회사에서는 늘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흐름을 추구한다. 비서실장 시절에 윗분 모시고 낯선 장소에 가면, 사전에 동선을 파악해도 현장에 도착하면 잠시 두리번거리는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윗분은 잠시 기다려주는데 오히려 다른 동행자들이 눈치 살피며 “어디야? 박 실장, 안 와봤어?” 하며 재촉한다. 그들이나 나나 ‘빨리빨리’와 ‘쩔쩔매기’에 인이 박였다.

어쩌면 그게 직장인의 숙명이라, 다섯 시 반에 일 주고, 일곱 시에 회식 장소에서 “언제 와?” 전화하고, 이튿날 아홉 시에 결과물 찾는 불가해한 현실에서도 버틸 수 있던 건 ‘빨리빨리’의 힘이었다. 그렇게 바쁘고 급한 삶을 표현하는 말은 ‘허겁지겁’이다. 출근도, 점심도, 보고도, 외근도 늘 허겁지겁했다.

어느 날 자정 넘도록 야근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집에도 못 가고 졸음 참으며 뭔가를 빨리, 많이, 완벽하게 만드는 목적이 뭘까. 결국은 승리를 인정받은 후 대량 폐기하기 위한 것 아닐까. 그게 자본주의 경쟁의 민얼굴이자 활력 아닐까.

현업을 떠난 이후 한동안 몸이 기억하는 그 조급함 때문에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서둘다가 종종 실수하곤 했다. 뭔가 빨리할 때는 시간이 없어 서두는 게 아니다. 빨리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는 지루하게 빈둥댄다.

익숙한 사람은 10분이면 될 일이 한 시간이나 걸렸다. 중간에 커피 마시고 카톡 보내고 강아지와 놀아주고 포장 상자 뒤처리까지 포함해서다. 바쁜 마음으로 했으면 피곤한 작업이었을 텐데 급한 마음 없이 느릿느릿했더니 재미있었다. [사진 박헌정]

익숙한 사람은 10분이면 될 일이 한 시간이나 걸렸다. 중간에 커피 마시고 카톡 보내고 강아지와 놀아주고 포장 상자 뒤처리까지 포함해서다. 바쁜 마음으로 했으면 피곤한 작업이었을 텐데 급한 마음 없이 느릿느릿했더니 재미있었다. [사진 박헌정]

가끔, 자기 속도를 철저히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을 본다. 세상의 기준보다는 늦지만 꿋꿋하게 자기 방식대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애초에 세상 모든 일에는 우리 행복에 부합하는 정상 속도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다가 뭔가 더 얻기 위해 조금씩 빨라졌고, 그 속도를 선도하며 무리하게 구는 사람이 나왔고, 세상은 그들을 ‘부지런하다’며 칭찬했고, 우리 대부분은 그들을 표준으로 삼아 점점 본래 속도를 잊고 세상 속도대로 움직였다.

평생 그렇게 속도 높여 일하다가 일이 쏙 빠져나간 자리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습성만 남았다. 그러니 활동이 없을 때는 초조해진다. 여전히 바삐 움직이며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싶겠지만, 잠시 쉬는 것도 나 자신을 채우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예전의 속도감을 잊어야 한다. 전성기처럼 빨리해야 할 일은 남아 있지 않고, 더구나 느린 것은 빠른 것보다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중장년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응하는 데는 느린 속도를 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자기가 살 집을 몇 년에 걸쳐 쉬엄쉬엄 짓는 것처럼, 속도 싸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빨리빨리’가 부지런함이 아닌 것처럼 ‘천천히’도 게으른 게 아니다. 빨리하면 많이 할 수 있고 천천히 하면 충실해진다. 분위기 좋은 디저트 카페의 아이스크림은 천천히 음미하고, 더운 날씨에 뚝뚝 흘러내리는 ‘하드’는 호로록거리며 빨리 먹는 것처럼, 그 둘이 섞여야 행복하다.

우리 50·60세대는 대부분 빠른 것에만 익숙하다. 어떻게 하면 더 느리게 천천히 살 수 있을지 연구해보면 어떨까.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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