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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협력 말라는 우상호에 "네"…약속 지켰다 맞는 감사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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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춘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박근혜 정권이든 이명박 정권이든 문재인 정권이든, 잘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감사원이 소신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최재형 감사원장 후보자=“국민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엄정하게 업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국가를 위한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12월 21일, 당시 후보자 신분이던 최재형 감사원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발언이다. 이날 청문회장에선 여야 할 것 없이 최 원장을 향해 “감사원장에 임명될 경우” 감사원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엄정하게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 원장은 “그것이 어떠한 가치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며 일관되게 답변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 2017년 12월 21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 2017년 12월 21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당시 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의원들은 최 원장에게 감사원이 지난 정부가 아닌 현 정부에 대해서도 칼을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상직 한국당 의원=“(감사원 독립을 보여주려면) 야당이 감사해야 한다고 정치적으로 문제로 삼는 것, 이것을 감사하면 됩니다.”

▶최 후보자=“야당이 요구하는 사안이라도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윤 의원=“그게 어떻게 보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담보하는 길이다?”

▶최 후보자=“네, 공감합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청문위원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의 감사원이 ‘표적 감사’ ‘코드 감사’ 논란에 휩싸였다며 감사원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강화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을 주로 물었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의 감사원장들과 달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상호(민주당) 청문위원장=“감사원같이 중요한 감찰기관은 강골 공무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옷을 벗을지언정 부당한 지시나 압력은 이겨내겠다는 공직자가 많아야 국민이 믿습니다. ‘정권에 협력해서 승진해야지’, 또 ‘퇴임 이후에 좋은데 가야지’란 생각을 가득하고 있으면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하기가 어렵겠지요.”

▶최 후보자=“네, 유념하겠습니다.”

당시 청문회장에선 판사 출신 최 원장이 사법연수원 시절 몸이 불편한 동료를 매일 업고 출퇴근시킨 일과 아들 둘을 입양해 키운 사연 등 이른바 ‘미담’도 소개됐다. 여당 의원들은 최 원장이 문재인 정부가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기준으로 제시한 이른바 ‘7대 비리’에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추켜세웠다. 이와 관련,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까 칭찬해 드릴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고 했다.

2년 반 뒤 돌변한 민주당 “최재형 사퇴하라”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2년 반이 흐른 지금, 민주당이 돌변했다.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업무보고 자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최 원장을 향해 3시간 10분가량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거여(巨與)의 법사위 일방 강행에 반발해 통합당 의원들은 모두 퇴장한 상태였다.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을 여당에서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권에선 ‘월성 1호기 원자력 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가 임박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왔다.

여당 의원들은 이날 주로 최 원장이 지난 4월 월성 1호기 직권심리 과정에서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을 문제 삼았다. 최 원장은 문 대통령의 대선 지지율을 언급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발언의) 전체적인 맥락은 다르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소병철 의원은 “(최 원장이) 정치인인지, 사적인 이해가 있는 것인지 의혹을 품게 된다”고 했다. 신동근 의원은 “(최 원장이) 원전 마피아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불편하고 또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고 소리쳤다.

감사원법 제2조 1은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감사원 직무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수행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 원장에 대한 ‘탄핵’도 언급했다.

野 “제2의 윤석열, 약속 지킨 대가는 찍어내기”

차량에 탑승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7일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차량에 탑승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7일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통합당에선 “최 원장에 대한 여당의 공세가 도를 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여권이 자신들 구미에 안 맞는다고 헌법과 감사원법이 독립성을 보장한 국가 최고 감사기구 수장을 핍박하고 공격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통합당 법사위의 조수진 의원은 최 원장을 “제2의 윤석열”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최 원장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인사청문회에서 한 약속을 지키는 중”이라며 “약속을 지킨 대가는 윤석열 총장의 사례처럼 어김없이 여권에 의한 찍어내기로 돌아왔다”고 했다.

전주혜 의원은 “청와대가 추천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의 감사위원 제청을 최 원장이 거부한 괘씸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와 관련한 2년 반 전의 최 원장 답변은 이랬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청와대가 감사위원 누구를 제청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 온다면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하겠습니까?”

▶최 후보자=“감사위원의 자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냐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청와대로부터 어떤 특정 인물에 대해서 제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과연 그 인물이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 분인지를 충분히 검토해서 적임자를 제청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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