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 자세한 모습은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차분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납골당에 한 예비부부가 작은 상자를 안고 들어옵니다. 상자 안에는 털이 하얀 말티즈 15살 모모가 눈을 반쯤 감고 잠든 듯 누워있습니다.
[애니띵] 반려동물 장례식
평소 좋아하던 빨간 담요 위에 몸을 뉜 모모를 보호자 채주희(34)씨와 최성호(29)씨가 물끄러미 봅니다. 가방에서 종이 한장을 꺼냅니다. 모모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길에 해주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입니다.
“모모 '무지개다리' 건너는 날. 모모가 좋아했던 노래 들려주기, 모모에게 보내는 편지 읽어주기, 즉석 사진 찍기, 마지막 인사”
이런 반려동물의 장례식이 생소한 분도 적지 않을 듯 합니다. 저와 함께 모모의 마지막 7시간을 지켜보면 어떨까요.
15살 모모 ‘강아지별’로 떠나던 날
지난 6월 20일 오후 2시, 주희씨는 예비신랑 성호씨와 함께 모모를 데리고 경기도 광주시 펫포레스트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만성 심부전이 심해진 모모는 사흘 전 가는 숨을 내쉬다 잠들 듯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반려견의 장례식도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염습부터 추모, 입관, 화장, 유골 수습까지 보통 5~7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먼저 접수를 위해 장례 서류에 이름, 성별, 나이, 몸무게 등 ‘견(犬)적사항’을 적습니다. “모모, 수컷, 15살, 1.45㎏”
접수를 마치면 추모실로 이동해 염습합니다. 위생 장갑을 낀 장례지도사 2명이 알코올 묻은 솜으로 모모의 몸 곳곳을 닦아줍니다. 얼굴, 수염, 귀도 빗질하고요. 모모에겐 분홍색 고름이 달린 하얀 명주 수의를 입혔습니다.
이승에서 마지막 몸단장을 한 모모는 나무로 짜인 관에 들어갑니다. 추모실 벽에 설치된 화면엔 모모가 건강할 때 모습이 담은 사진들이 나옵니다. 지켜보던 주희씨의 눈가로 꾹 눌러왔던 눈물이 흐릅니다. 주희씨가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모모야.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먼저 가 있어. 나중에 누나랑 형이 보러 갈게. 그때 마중 나와 줄 거지? 고마워.”
이어 모모의 관이 화장터로 향합니다. 화창했던 추모실 밖에 어둠이 깔리고 하늘엔 어슴푸레한 달이 걸렸습니다. 1시간 뒤, 한 줌 재가 된 모모가 작은 상자에 담겨 돌아옵니다. 손목시계의 시침이 9시를 가리킵니다. 7시간 만에 장례가 모두 끝난 겁니다.
장례 안 하면 쓰레기봉투로…“가족한테 어떻게 그래요”
지난해 기준으로 대한민국엔 총 591만 가구가 856만 마리의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부산에 사는 사람(340만명)보다 2.5배 많은 반려동물이 있는 거죠.
그런데 예상외로 반려동물 장례식은 생소하다는 분들이 많은 편입니다. 왜 그럴까요? 현재 전국에 정식으로 등록된 동물 장묘업체는 46곳뿐입니다. 서울엔 단 1곳도 없죠.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혐오시설’로 낙인찍혀 들어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 탓입니다. 그래서 차량에 소각로를 싣고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불법 이동식 화장업체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죠.
반려동물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보호자에겐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정식 등록된 장묘업체를 통해 시신을 처리하지 않으면 현행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버리거나 동물병원에 보내 의료폐기물로 처리해야 하죠. 보호자의 마음대로 동네 뒷산, 집 마당에 묻는 건 불법이란 거죠. 이 또한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장례비용이 만만치는 않습니다. 한국동물장례협회에 따르면 체중 5㎏ 미만 반려동물의 기본 장례비용은 평균 20만원대입니다. 염습과 추모예식, 화장, 유골함 등이 포함된 가격이라고 해요. 비용은 반려동물 몸무게에 비례해 늘어납니다.
부담스러운 비용에 장례식장을 찾기가 망설여지진 않을까요. 주희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족이 죽었는데 쓰레기봉투에 버릴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에겐 장례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했다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반려동물과의 작별, 사흘은 슬퍼하고 오세요”
그래서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찾는 발길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강성일 펫포레스트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존중하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장례식장을 찾는 보호자들이 매년 늘고 있다”며 “할머니·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찾아와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부족해 안타까운 상황도 벌어진다고 해요.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들은 반려동물이 죽자마자 장례식장에 데려오는 일을 예로 듭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간 없이 급하게 장례식부터 치르고 나면 ‘펫 로스(Pet-Loss) 증후군’으로 자칫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에요.
강 장례지도사는 “반려동물이 사망하고 적어도 72시간 동안은 시신이 훼손되지 않는다”며 “집에서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갖고 나서 장례식장에 찾아오길 권장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모모와 주희씨가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7시간. 지금 모모는 이 추억을 간직한 채 강아지별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겠죠?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이 그렇듯, 지구상 모든 생물도 그들의 스토리가 있죠. 동물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든 ‘애니띵’은 동물과 자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공성룡·왕준열·김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