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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주가1500%↑ 코닥, 에볼라가 살린 후지…기업의 변신은 무죄

중앙일보

입력

필름은 잊자. 코닥은 이제 제약회사다. 블룸버그

필름은 잊자. 코닥은 이제 제약회사다. 블룸버그

일본의 후지, 미국의 이스트만 코닥.
‘필름’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면 구세대 인증이다. 두 기업이 1990년대까지 전 세계 필름카메라 산업의 양대 산맥이었던 건 맞다. 그러나 2020년 여름 현재, 두 기업의 포트폴리오에서 ‘필름’ 두 글자는 과거 유산의 상징이다. 디지털 쓰나미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코닥ㆍ후지 모두 뼈를 깎는 혁신을 했기 때문이다.

코닥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아예 ‘필름’을 지웠다. “제약사로 전환한다”고 발표하면서다. 이젠 코닥 파마수티컬(제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코닥은 바이오에서 답을 찾았다.

후지는 더 기민하게 움직였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당시 신약 아비간(Avigan)을 개발했던 회사가 후지필름의 자회사 도야마(富山) 화학공업이다. 코닥은 코로나19, 후지는 에볼라를 계기로 바이오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행복한 비명…주가 15배 폭등, 9137억원 대출 지원

1888년 설립된 코닥은 업계 세계 1위를 구가했지만, 혁신의 속도에서 후지에 뒤졌다. 2012년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구조조정을 해 겨우 파산 위기는 면했다. 혁신 시행착오도 겪었다. 2018년엔 자체 가상화폐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쓴맛을 봤다. 그러다 이번에 제약으로 눈을 돌렸다. 특허가 만료돼 복제약품 생산이 가능한 지네릭(generic) 약품의 원료 생산에 집중하겠다고 나섰다. 코로나19 시대 미국 연방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춘 선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의약품 원료생산을 중국ㆍ인도에 주로 의존해왔던 미국이 코로나19로 인해 자급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짐 콘티넨자 코닥 회장은 “향후 약품 원료 제조가 코닥 매출의 30~40%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와 코닥에 2000년대 초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필름카메라의 몰락 속에서 다양한 나름의 제품을 출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진은 2004년 후지필름이 출시했던 인화자판기. 실적은 좋지 않았다. [중앙포토]

후지와 코닥에 2000년대 초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필름카메라의 몰락 속에서 다양한 나름의 제품을 출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진은 2004년 후지필름이 출시했던 인화자판기. 실적은 좋지 않았다. [중앙포토]

시대를 읽은 전략은 정부의 전폭 지원으로 이어졌다. 미국 정부는 코닥의 제약사 전환에 7억6500만달러(약9107억원)의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전쟁 때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DPA)을 근거로 한 대규모 대출 지원이다. 대통령이 기업에 특정 물자 생산을 지시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직접 지원 사격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 등을 통해 “코닥의 의약 성분 제조 지원을 돕기 위해 DPA를 33번째로 활용하게 됐다”며 “우리 일자리를 되찾고,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제약 제조 및 공급 능력을 갖춘 나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경제 최측근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코닥의 뉴욕주 로체스터 공장으로 시찰보냈다. 약 648만㎡(196만평)에 달하는 공장부지를 둘러보고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제스처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모리스빌에 있는 후지필름의 다이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스 공장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 회사는 코로나19 백신 원료약을 위탁 생산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7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모리스빌에 있는 후지필름의 다이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스 공장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 회사는 코로나19 백신 원료약을 위탁 생산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는 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코닥의 주가는 지난 3월23일 주당 1.55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약사 전환 발표에,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까지 더해지며 29일(현지시간) 기준 33.2달러까지 올랐다. 30일엔 뒷심이 살짝 빠지면서 29.30달러로 마감했지만 투자자의 기대감은 여전히 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1일 “지난주 코닥의 주가는 1500%나 폭등한데다 거래량도 파산신청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고 전했다.

순식간에 300% 오른 코닥 주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순식간에 300% 오른 코닥 주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본업이 사라질 때…‘기술의 재고정리’를 하라  

일찍이 제약 산업에 뛰어든 후지필름은 혁신 DNA를 강조하는 게 사내 문화로 뿌리내렸다. 후지의 모토는 ‘혁신으로부터의 가치(Value from Innovation)’다. 일본경제(日經ㆍ닛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출신인 다마키 다다시(玉置直司)는 일본 기업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한 저서 『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에서 후지의 혁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실적이 좋아도 본업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후지필름은 본업 주변에서 해답을 찾았다.”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이미 갖고 있던 기술의 곁가지를 치는 방식이다. 후지가 디지털 의료 화상 시스템 제품으로 영역을 확장한 게 대표적이다. 후지는 사진용 필름 기술을 개발하면서 X선 진단 장치 필름 및 관련 화상 처리 장치 개발 기술도 보유했다. 이를 확대해 유방암 조기 발견 및 전자 내시경 등을 위한 디지털 검사 시스템을 제품화했다.

두 번째로는 이미 가진 기술을 활용하되,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분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바이오와 화장품 분야가 후지가 찾은 답이었다. 사진 필름의 주원료가 콜라겐이라는 데 열쇠가 있다. 콜라겐은 피부 탄력에 중요한 물질이다.

후지필름이 출시한 안티에이징 화장품 라인. [중앙포토]

후지필름이 출시한 안티에이징 화장품 라인. [중앙포토]

다마키 전 지국장은 “후지필름은 사진의 색이 바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항산화 기술 노하우도 갖고 있었다”며 “(이미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를 인간의 피부에 적용했다”고 적었다. 후지필름은 이런 혁신을 두고 ‘기술의 재고정리’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재고를 점검하듯 기술 역시 계속 리뷰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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