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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번 교배에 20만 달러…주인만 좋은 슬픈 명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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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57)

흉노, 돌궐, 몽골은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질주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중국을 침략하고 괴롭혀 만리장성을 쌓게 했다. [사진 pixabay]

흉노, 돌궐, 몽골은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질주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중국을 침략하고 괴롭혀 만리장성을 쌓게 했다. [사진 pixabay]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을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질주하던 흉노, 돌궐, 몽골. 그들은 변방에서 끊임없이 중국을 침략하고 괴롭혀 만리장성을 쌓게 하였다. 그중 돌궐의 후예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말 ‘아할 테케(Akal-Teke)’가 있다. 전신이 황금빛을 띠고 있어 황금말이라고도 불린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쇼나 스포츠 이벤트에 가끔 등장하는데, 개체 수가 매우 적은 희귀종이다.

세계적인 명마들 중 하나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이 원산지인 무게 800~1000kg의 ‘페르슈롱(Percheron)’이 있다. 힘이 세고 경쾌해 운송용으로 쓰이며 경주마 ‘멧쳄(Matchem)’은 이 말의 후손이라고 한다. 미국의 ‘로키 마운틴 호스’는 19세기 수말 로키 마운틴 스탤리온을 현지 암말과 교배시킨 것으로 특이한 보법으로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명마이다.

중세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집시 배너(Gypsy Vanner)’. 유럽 집시의 이동 수단으로 쓰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갈기와 뭉툭하고 튼튼한 하체, 숱이 풍부한 꼬리털, 흑백이 교차하는 몸색은 보는 것만으로도 로맨틱한 느낌을 자아낸다.

집시 배너는 유럽 집시의 이동 수단으로 쓰였다 해서 그 이름으로 불렸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집시 배너는 유럽 집시의 이동 수단으로 쓰였다 해서 그 이름으로 불렸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우리가 제주도에서 보는 제주마는 1273년 원나라의 탐라 침략 시 유입된 몽고 혈통이다.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한 사이즈로 한라 말이라고도 불린다. 유럽산 말보다는 작지만 칭기즈칸이 세계를 제패할 때 쓰인 말이다. 영하 40도의 추위도 이겨내며 지구력이 강해 거친 환경에도 잘 적응한다.

최고의 경주마는 영국의 토종말 ‘러닝 호스’와 아랍의 씨수말을 교배해 나온 ‘서러브레드(Thoroughbred)’다. 바람을 가르며 다이내믹하게 달려서 ‘말 중의 말’이라 불린다. 다음은 ‘사막의 바람으로 만든 말’이라 불리는 아라비아말이다. 가장 오래되고 순수한 혈통을 자랑한다.

북아프리카 튀니지 해변이 고향인 ‘바브(Barb)’는 재빠르고 민첩해 베르베르 족이 스페인 침공 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말 ‘안달루시아(Andalusian)’는 잘 생긴 근육질로 발걸음이 크고 당당해 고등마술이나 투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말은 어떤 말일까. 미국 켄터키 더비에서 우승한 말이다. 매년 5월 첫 번째 토요일,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열리는데 세계 각국에서 이를 보러 오는 관중이 25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3살 전후의 말 20마리가 2km의 주루를 2분여 만에 달려 순식간에 승부를 결정짓는다.

켄터키 더비에서 우승한 말 소유주는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우승상금 186만 달러(우리 돈 22억 원)은 별게 아니다. 2015년 37년 만에 켄터키 더비를 비롯한 미국 인기 경마에서 3관왕을 차지한 서러베드 종의 ‘아메리칸 파로아(American Pharoah)’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명마의 씨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단 한 번의 교배 비용은 20만 달러에서 시작, 수요가 폭등하자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이후에는 그 가격이 비밀에 부쳐졌다.

그런 종마는 하루 4번 정도 교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 사육사의 전언이다. 한 번에 20만 달러면 하루에 80만 달러(약 10억 원)를 벌 수 있다. 최고 수준의 명마는 한 시즌에 암말 200여 마리와 교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말의 소유주는 몇 달 만에 수천만 달러를 간단히 번다고 한다. 어떤 명마는 일 년에 536번 교배한 기록도 있다.

‘타핏(Tapit)’이란 백마는 한번 교배 비용으로 30만 달러를 기록한 적도 있다. [사진 pxhere]

‘타핏(Tapit)’이란 백마는 한번 교배 비용으로 30만 달러를 기록한 적도 있다. [사진 pxhere]

경마 실력으로는 파로아보다 못한 ‘타핏(Tapit)’이란 백마는 한번 교배 비용으로 30만 달러를 기록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명마의 경매 낙찰가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라고 한다. 그 외에도, 마장마술, 사냥, 장애물 경주마 등 다양한 용도로 명마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런 명마는 귀족이나 큰 부자의 영역에 속한다.

명마의 이런 천문학적인 교배 비용 때문에 목장에 수십 마리의 명마와 건강한 암말을 소유하고 이를 비즈니스로 하는 기업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 번의 교배비용으로 보통 3000달러에서 5000달러를 받는다.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고, 빨리 교배를 하려면 프리미엄을 받기도 한다. 명마로 인정받으려면, 3년 이내에 경마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혈통이 좋은 교배용 말은 투자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보통 마리당 2만~3만 달러 정도 하는데, 일 년 정도 잘 키우면 6만 달러 정도에 팔 수가 있다고 한다. 5만 달러에 사서 그 다섯 배인 25만 달러에 판 경우도 있다. 투자 목적의 사모펀드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말 사육에는 위험도 많이 따른다. 다리를 다치거나 부상을 입으면 말 가치는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명마의 씨를 받은 말을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이라고 한다. 적어도 3개월 이상 잘 키우면 성공이라고 하는데, 한 살 정도 된 파로아 명마 혈통은 백만 달러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니 짐작이 된다. 경마에서 우승해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명마는 그 뒤에 숨은 사육사의 엄청난 수고가 따른다고 한다.

만약 말로 태어났다고 해보자. 주인에게 천문학적인 수입을 안겨주는 명마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춥고 배고픈 때가 있더라도 고삐 없는 말이 되어 초원을 마음껏 달리는 야생마가 되고 싶은가.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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