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동훈과 김경수 '공범'일까···힌트 주는 3년전 살인사건 판례

중앙일보

입력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이철 전 VIK 대표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동훈 검사장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드루킹’ 김동원씨는 킹크랩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포털 댓글 작업을 했다. 김경수 경남지사 역시 당시 다른 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공범으로 볼 수 있을까.

대법원에 따르면 이렇듯 실행 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사람에게 공동정범으로 형사적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공모’와 ‘공동가공의 의사’를 증명해야 한다. 2인 이상의 사람 사이에 구체적인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암묵적으로 특정 범죄행위를 위한 뜻이 맞았다면 공모 관계는 인정된다.

문제는 공동가공의 의사다. 특정한 범죄행위를 하기 위해 마치 한 몸처럼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이루고자 하려는 의사를 말한다. 타인의 범행을 알면서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범죄 실행의 전 과정에서 각자의 지위와 역할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서로를 이용하려는 관계가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돼야 한다.

시신 일부 받았어도 공범 적용 안 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8살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의 박모양(왼쪽)과 김모양. [뉴스1]

8살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의 박모양(왼쪽)과 김모양. [뉴스1]

2017년 당시 17살이던 김모양은 8살 여자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의 일부를 박모(18)양에게 건넸다. 1심은 박양이 김양과 살인을 사전에 공모하고 지시했다고 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박양을 공범으로 보지 않았고, 징역 12년형으로 대폭 감형했다. 두 사람은 온라인상 마피아 역할극에서 만나 범죄와 관련한 대화를 자주 나누던 사이였다. 이를 토대로 박양이 범행 당일 새벽까지는 김양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 진지하게 인식하지 않았고, 살인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날 낮 “사냥을 나왔다” 등 김양의 말을 듣고 실제 살인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방조했다는 혐의만을 적용했다. 대법원도 이를 인정했다.

“해볼 만하다”는 대화로 공동정범 가능할까

한동훈 검사장. [연합뉴스]

한동훈 검사장. [연합뉴스]

다시 채널A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는 2월의 녹취록이 두 사람이 공모한 증거라고 본다. 이 전 기자가 “이철 아파트 찾아다닌다. 교도소에 편지도 썼다”고 말하자 한 검사장이 “그런 건 해 볼 만하지. 그런 거 하다가 한 건 걸리면 되지”라고 답한 부분이 공모 혐의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는 한 검사장이 이 전 기자의 취재 목적에 동의하고, 자기 뜻을 이 전 기자를 통해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검사장이 이 전 기자의 취재를 묵인하는 정도지 어디에도 이를 넘는 공동가공 의사를 추단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며 “적어도 이 녹취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전 기자의 변호인 역시 “한 검사장과 편지 작성‧발송을 공모했다는 증거로 제시된 녹취록 대화 내용만으로는 공모관계가 도저히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견해”라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에 불리한 댓글 작업…공범 아니라는 증거일까

김경수 경남지사.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지사. [연합뉴스]

김경수 지사의 경우는 어떨까. 김 지사 측은 드루킹 김씨와 공범이 아닌 증거로 ‘역작업’을 이야기한다. 특검이 제시한 범죄일람표에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를 향한 우호적인 댓글에 비공감을 클릭하거나 문 후보에 비판적 댓글에 공감을 클릭한 부분이 섞여 있다.

김 지사의 변호인은 “김 지사가 킹크랩의 존재를 안다면 이들이 역작업을 할 수 있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며 “김씨가 김 지사와의 공모관계 때문에 킹크랩을 운영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댓글 순위를 조작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반면 특검은 역작업은 전체의 1%에 해당하는 오류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그 증거로 “헷갈렸나 봐요. 죄송해요” “무조건 비추천하시면 안 돼요. 선플도 있어요” 등 댓글 작업을 하던 이들이 나눈 대화를 제시했다. 특검은 또 킹크랩 개발 후 작업결과가 매일 김 지사에게 보고됐으며 김 지사가 순위조작 대상 기사목록을 보내주기도 했으니 공모해 범행한 것이라고 본다.

김 지사의 항소심 재판은 9월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 사이에서도 김 지사의 유·무죄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선고까지는 난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