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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기간 끝나면 지방 떠날 것 vs 의사 없는 수술실 놔둘 건가…뜨거운 ‘의·병’ 전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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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호 08면

의대 정원 확대 논쟁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놓고 의사단체와 병원 사이의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달 24일 광주 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놓고 의사단체와 병원 사이의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달 24일 광주 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나서면서 의료계 안팎으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에 이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 등 주요 의사 단체는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지역 의료기관 근무환경 개선과 의료진에 대한 적정한 보상책 마련 없이는 지역별, 전공별 의료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1000명 당 의사 수, OECD 최하위 #절반 수도권 집중, 지역 쏠림 심각 #의사들 “주 80시간 이상 근무 #열악한 의료 환경부터 개선해야” #병원 “지방시설 줄줄이 문닫아 #지역 의사 늘리면 숨통 트일 것”

지난달 23일 정부와 여당은 2022학년도 입시부터 매년 400명씩 향후 10년간 의대생을 증원하기로 합의했다. 중증·필수분야에서 최소 10년 동안 지방 근무를 하는 지역 의사 300명, 역학조사관과 중증외상 등 특수분야 50명, 기초과학 등을 담당할 의과학자 50명이다. 지역 의사로 선발되면 10년 의무 복무를 하지 않을 경우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40개 대학 3058명으로 동결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치과·한의사를 제외한 의사 10만 6144명 가운데 수도권에 자리 잡은 경우가 5만 7303명(53.9%)에 달한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가 3.06명이지만 세종은 0.03명이다. 주요 다른 국가와 비교해 의사 수도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우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평균 3.4명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평균 2명으로 최하위다.

의료진 확보가 중요한 병원 입장에선 환영하는 분위기다. 강원도 속초·양양·고성·인제 지역에는 현재 분만 산부인과가 없다. 지난 2월 속초의 한 산부인과가 의료사고 논란에 휩싸여 분만 업무를 중단하자 아이를 낳으려면 강릉 등 타지역 병원을 찾아야 한다. 강원도는 오는 8월부터 속초의료원에 분만산부인과를 운영할 예정이었지만 암초를 만났다. 분만실과 신생아실에 필요한 전문의 3명과 간호사 13명 중 현재 전문의 1명과 간호사 6명만 채용한 상태다. 산부인과가 없는 지방자치단체는 충남 6곳, 경북 5곳, 전남 6곳에 달한다. 2017년 국민 보건의료 실태 조사에 따르면 흉부외과 전문의와 응급실 부족으로 인구 10만명당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경남이 45.5명으로 서울(28.3명)보다 60% 높았다.

지역별 의료 격차는 흉부외과·비뇨기과·외과·산부인과 등 이른바 비인기과일수록 심하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을 경우 피할 수 있는 사망을 의미하는 치료 가능한 사망률이 경북 영양군은 서울 강남구보다 364% 높았다. 충북은 서울보다 31% 높았다.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과 응급실이 없는 기초자치단체만 140곳이 넘는다. 그나마 있던 지방 병원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 지역 공공 의료시설은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끙끙 앓는다. 대한병원협회(병협) 관계자는 “지방에서는 서울보다 더 높은 보수를 제시해도 전문의가 내려오려 하지 않아 병동이나 수술실을 비워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역 의사가 배출되기 시작하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반면 의사 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인구 절벽으로 병원을 유지할 최소한의 환자 수마저 부족한 지방에 의사를 배치해봐야 의무 복무 기간이 지나면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형갑 대공협 회장은 “외과를 비롯한 다수의 진료과목에선 여전히 주 80시간이 넘는 고강도 근무가 이뤄지고 있고 2년 단위 계약직 일자리도 갈수록 늘고 있다”며 “인력 수급보단 당장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드는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도농 간 의료 불균형이나 특정 전공과목 쏠림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은 인구 10만 명당 평균 의사 수가 171.3명(1990년)에서 217.5명(2006년)까지 확대됐지만, 지역 편차는 더 커졌다. 일본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의료에 공헌할 의사를 양성하는 한편, 의료진 부족 문제가 심각한 지역에는 중앙 정부가 의사를 파견하는 ‘투트랙’의 종합 대책을 2006년 마련했다. 우리나라의 의대 증원은 교육과 수련을 의료계에 미룬 채 정부는 과실만 얻으려는 정책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불만이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지역에서 산부인과 하나를 운영하려면 기본적인 환자 수요와 의료진들이 장기근속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며 “적절한 유인책이 없이 무조건 지역 근무를 강요할 순 없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정원을 늘린 간호 분야도 지역별, 진료과별 쏠림을 극복하지 못했다. 대학알리미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간호대 입학정원은 1만4166명(174개 대학)에서 2019년 2만33명(203개 대학)으로 10년 사이 70% 넘게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간호사 17만 3469명 중 11만 3305명(65.3%)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 8만 4254명(48.5%)이 수도권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10년 전보다 인력은 상당히 많아졌지만, 이들의 업무 강도나 열악한 처우는 여전히 제자리”라며 “의료진들이 왜 지역 근무를 기피하는지 뿌리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 등 단기적 처방 대신 의대생 교육이나 전문의 지원 시스템 등 의료 체질 개선부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의대생 교육부터 병원 내 필요한 의료 시스템 지원이 모두 각자도생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관련 부처가 의료 시스템에 대해 가이드라인만 제시하지 말고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양성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는 “예방의학이나 기초의학은 국가 의료 정책에 큰 줄기를 설계하는 분야인 만큼 연구 데이터, 관련 기관 설립 및 운영, 인력 관리에 정부가 주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0년 만에 세 배로 늘어난 변호사…정부·기업 ‘취업 영토’도 넓어졌다

전문 인력 수급을 둘러싸고 11년 째 논쟁 중인 분야가 있다. 전문 직군의 한 축을 맡은 변호사 업계에선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이래로 변호사시험(변시) 합격자 수를 놓고 수년 동안 갈등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2012년 제1회 변시를 앞두고 법무부 산하 변시 관리위원회는 변시 합격자 수를 전국 25개 로스쿨 총 입학 정원(약 2000명) 대비 75%인 1500명으로 결정했다. 올해 합격자 수가 소폭 상승했지만 이후 9년째 국내 변호사 합격자 수는 ‘입학 정원 대비 75%’로 굳어져 왔다.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수급에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2011년 대한변협에 개업등록을 한 변호사 수는 1만976명이었지만 이듬해 로스쿨 변호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2015년 변호사 2만 명 시대를 맞이했고, 2022년엔 3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변협은 줄곧 합격자 수 하향 조정을 주장해오고 있다.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은 “로스쿨 교육 제도의 개선 없이 합격자 수만 늘릴 경우 국민에게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만 가중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법조인 양성이란 본래 로스쿨 취지가 퇴색되고 ‘변호사 양성소’로 전락했다는 게 대한변협 측 입장이다. 지난해 한국법제연구원이 전국남녀 44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59.5%(2643명)가 로스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로스쿨 개선 사항으로는 로스쿨 입학 정원 강화(23.3%)와 변시 합격 기준 강화 (23.1%)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로스쿨 측은 사실상 ‘변시 합격률 50%’를 강조하며 현행 기준보다 변호사 합격을 늘려야 한다고 반박한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관계자는 “법무부가 응시자 대비 합격률이 아닌 ‘입학 정원’으로 못 박은 상황에서 재시, 삼시 응시자가 누적돼 변호사 합격률이 점점 하락하는 추세”라며 “오히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국내 변호사 수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살펴보면 2014년 우리나라는 GDP 1억 달러당 변호사 수는 0.93명이다. 반면 미국은 7.3명, 독일은 4.2명, 영국은 5.5명으로 주요 국가보다 현저히 낮다.

변호사 취업난도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대다수의 변호사가 송무 시장에만 진입했던 과거와 달리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증가하고 평균 연령도 낮아지면서 정부 출연기관과 기업체로 진출하는 변호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변호사 업무가 무궁무진해지면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취업 한파는 과장된 분석”이라며 “오히려 지역별로 로스쿨을 운영하면서 지역 내 변호사 수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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