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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예술’의 유혹…아토피 잡고 습도에 강한 미장 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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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호 22면

흙벽 인테리어 배우기

유럽식 천연 미장을 한 서울 연남동 와인바 ‘웬디앤 브레드’ 내부. 김현동 기자

유럽식 천연 미장을 한 서울 연남동 와인바 ‘웬디앤 브레드’ 내부. 김현동 기자

태백산 자락에 있는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탄탄마을. 이 작은 마을에는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우리나라 광산촌 최초의 광부 아파트였던 화광아파트가 철거된 자리에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 위로 포크레인이 분주하다. 공사 현장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곳에 태백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도시재생·친환경 붐 타고 인기 #태백시 탄탄마을 ‘광부의 골목’ #미장 강좌에 주민 등 30명 모여 #석탄·고령토 등 바른 벽화 꿈 #카페·아파트 인테리어 수요 부쩍 #서울엔 청소년 대상 미장공방도 #서구권 미장 장인·기업들 많아

지난 15일 이곳에는 태백시 도시재생과 소속 공무원들과 지역 활동가들, 주민 등 30여 명이 모였다. ‘과거와 현재, 세계의 미장 기법’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도시재생 활동가 백겸중 화가는 “마을 꾸미기 활동에 흙미장을 적용해보려고 한다”면서 “한때 전국적으로 마을 환경 개선을 위해 실시됐던 페인트 벽화는 약 2년마다 보수가 필요해 관리가 힘든데, 흙미장은 온도·습도에 강하고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탄탄마을은 일제강점기부터 탄광 산업이 시작된 마을이다. 노후화된 집들이 이웃하며 담장으로 이어져 있고, 산사태의 위험을 막기 위한 시멘트 옹벽도 지어져 있다. 태백시는 여기에 ‘광부의 골목’이라는 테마로 태백의 흙을 사용한 미장 작업을 펼칠 계획이다. 지역 주민과 활동가들도 미장 기술을 배워 직접 미장에 참여한다. 정연태 태백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화려한 페인트 벽화가 아닌, 태백시에서 나는 석탄이나 흰색의 고령토, 붉은색 흙 등을 섞은 자연 미장 벽화로 마을에 스토리도 입히면서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장 기술 익히면 빈집 수리해 활용도”

유럽식 천연 미장을 한 서울 연남동 와인바 ‘웬디앤 브레드’ 내부. 김현동 기자

유럽식 천연 미장을 한 서울 연남동 와인바 ‘웬디앤 브레드’ 내부. 김현동 기자

흙이나 석회, 석고 등 천연 재료를 이용한 자연 미장에 관심을 보이는 건 태백시뿐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붐이 일면서 낡거나 비어있는 집을 고치고 다시 짓는 일이 많아졌다. 또 친환경적인 재료·공법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자연 미장을 배우려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장에 대한 이론·기술 강연을 해온 김성원 생활기술과놀이멋짓연구소장은 최근 순천·논산·문경 등 전국 각지에서 미장 워크숍을 열고 싶다는 문의를 받고 있다. 김 소장은 “인구 감소로 인해 빈집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미 빈집 증가가 심각한 문제”라며 “지역 주민이나 청년들이 비교적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미장 기술을 익혀 빈집을 수리할 수 있다면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전했다.

자신의 집을 직접 짓고 싶은 이들도 미장 기술을 배우러 찾아온다. 전북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유네스코 석좌 흙건축학교에서는 흙집을 짓기 위한 여러 공법을 시민들에게 교육하고 있는데 미장도 그중 하나다. 교육생의 연령대는 16세 중학생부터 76세 최고령자까지 다양하다. 서울·경기·부산 등 대도시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강민수 한국흙건축연구소 교육국장은 “집을 지을 때 다른 부분은 전문가가 필요하거나 업체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장은 조금만 배우면 직접 할 수 있어서 접근하기 쉽고 활용 범위도 넓다”고 말했다.

“성별 떠나 예술 감각·기술 더욱 중요”

크리킨디센터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미장 워크샵. [사진 김성원]

크리킨디센터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미장 워크샵. [사진 김성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미장 수업도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립 청소년미래진로센터인 크리킨디센터는 청소년을 위한 미장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6월

1기 미장학교를 열어 17~29세 청소년 참가자를 모집했고, 일본 미장기능사를 초빙한 워크숍 등 비정기적인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로 온라인 교육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화경(24)씨도 크리킨디센터와 비슷한 청년 작업장학교에서 스무살 때부터 미장을 배웠다. 환경과 에너지,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강씨는 유럽의 예술적인 미장을 접한 뒤 매료됐다. 그는 “미장이 남성적인 작업으로 보이기 쉽지만,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성별을 떠나 예술적 감각이나 기술이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미장에 관심을 갖는 청년들이 많아지면 국내 미장도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미장에 대한 인식이 ‘시멘트 바르는 단순 노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미장 기술 숙련자나 장인이 많지 않고 그나마도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반면 미장 산업이 발달한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등에는 미장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장인들과 미장 전문 기업이 있다. 세계적인 자연 미장 기업인 영국의 ‘클레이웍스’는 미장 장인 네트워크인 CPN(Clay Plaster Network)를 설립해 장인들과 정보를 교류하고 연수 기회도 제공한다. 이 밖에도 독일의 ‘클레이텍’, 미국의 ‘아메리칸 클레이’와 ‘바사리 플라스터 앤 스타코’ 등이 흙 미장재 전문 회사들이다.

독일의 천연 석회 미장재를 5년 전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온 송호삼 바우만하우재 기술이사는 최근 1~2년 사이 국내에서도 유럽식 인테리어를 원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공 의뢰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카페·바·갤러리·스튜디오는 물론 아파트 인테리어 의뢰도 들어온다. 송 이사는 “아토피 질환이나 공기의 질 등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인테리어 경향도 도배에서 페인트로 바뀌면서 국내 수요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청소년에게 미장이 블루오션 될 것

전남 장흥에서 흙부대집 내부 색채미장을 하고 있는 김성원 소장(왼쪽에서 둘째).

전남 장흥에서 흙부대집 내부 색채미장을 하고 있는 김성원 소장(왼쪽에서 둘째).

김성원 생활기술과놀이멋짓연구소장은 “미장은 과거의 기술이 아니다”고 말한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미장 기술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흙미장은 시간의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시공 기간이 길고 배합된 재료나 기후 등에 따라 작업 단계에 들이는 시간을 달리해야 하는 어려움은 분명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를 상쇄할 만큼 장점이 많다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일명 스타코(Stocco)나 핸디코트(Handy Coat)라 불리는 현대 미장재들은 대개 화학합성수지 접착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유기성휘발물질을 지속적으로 뿜어내 호흡기 질환이나 아토피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자연 미장을 한 벽은 미세한 기공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공기 정화, 습도 조절, 소음 완화, 탈취 작용을 한다. 또 자연 미장재는 재사용이 가능하고, 부숴서 흙으로 돌려보내도 환경에 영향이 없어 폐기할 때도 친환경적이다. 김 소장은 “무엇보다 자연 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높은 조형성과 질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흙은 다양한 형태로 반죽해서 별별 형태를 만들 수 있고, 벽에 음각·양각으로 입체적 벽화를 새길 수도 있어요. 석고는 다양한 모양의 틀에 부어 멋진 실내 장식을 사용하기에 편리한 재료죠. 비(非)균질성과 우연성도 매력이에요. 자연 미장한 벽에 빛이 비치면 미묘하고 섬세한 그림자가 생기고 빛의 각도에 따라 수시로 변하거든요. 자연 미장한 벽이 쉽게 질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다양한 색상의 안료를 섞어 색채 미장을 해보면 기대치 않았던 색깔과 효과가 나타날 때가 많아요.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매번 고유하고 특별한 결과가 만들어지죠.”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에게도 미장은 충분히 공부해볼 만한 블루오션 분야라고 강조했다. 코딩이 필수가 되는 사회에서는 도리어 코딩이 경쟁력이 되지 못하고, 3D 프린팅이나 드론도 레드오션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김 소장은 “과거처럼 ‘노동자’에 머무르지 말고, 자신의 기술을 콘텐츠로 활용하는 크리에이터나 전시회를 여는 미장 예술가 등 융합적 장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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