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삼백초·어수리…21가지 나물 샤브샤브 ‘입 호강’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697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나물요리의 별천지

솔내음은 해발 330m 높이에 자리했다. 나물은 두 철탑 사이 산자락 전체에 조성한 서대산 약용 자연휴양림(59만5041㎡·18만평)에서 생산한다. 맞은편 광대산에서 본 전경이다. 신인섭 기자

솔내음은 해발 330m 높이에 자리했다. 나물은 두 철탑 사이 산자락 전체에 조성한 서대산 약용 자연휴양림(59만5041㎡·18만평)에서 생산한다. 맞은편 광대산에서 본 전경이다. 신인섭 기자

초근목피(草根木皮)에 의지해 겨우 연명하던 보릿고개의 세월을 넘어 영양 과잉과 비만을 온 국민이 걱정하는 시대로.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인 식생활의 가장 큰 변화다. 그사이 가장 안타까운 상실은 수많은 나물이 밥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나물은 수천 년 동안 제2의 주식이자 목숨을 이어준 끈이었다. “아흔아홉 가지 나물을 알면 3년 가뭄도 살아낸다”는 속담이 전할 정도다. 지금으로부터 50~60년 이전 반만년의 식생활이 그랬다.

산약초 전문 음식점 ‘솔내음’ #금산 ‘서대산 약용자연휴양림’ #18만 평 숲에 나물밭만 6만 평 #국물은 약재 8종+채소 9종 달여 #사계절 30가지 안팎 나물 상차림

산업화 이전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한 농경사회였다. 온 나라가 농사에 의존해 살았다. 그 시절 봄이면 농가의 양곡 항아리는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춘궁기는 6월 하순 보리를 수확해야 끝났다. 이른바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다. 야생 나물은 대부분 이 시기에 싹튼다. 나물들이 있어 험난한 보릿고개를 살아서 넘을 수 있었다.

산약초 샤브엔 51가지 나물·나무·버섯

솔내음의 대표 음식인 산약초 샤브는 21가지 나물과 버섯이 나온다. 반찬은 채소와 나물 13가지가 쓰였다. 국물은 8가지 약재와 9가지 채소를 달인 물을 섞어 만들었다. 신인섭 기자

솔내음의 대표 음식인 산약초 샤브는 21가지 나물과 버섯이 나온다. 반찬은 채소와 나물 13가지가 쓰였다. 국물은 8가지 약재와 9가지 채소를 달인 물을 섞어 만들었다. 신인섭 기자

요즘 초등학교 4학년 음악 교과서에는 ‘나물노래’라는 자진모리 장단의 전래동요가 실려 있다. 가사에 6가지 나물과 4가지 나무가 나온다. 이 노래의 성인 버전은 나물타령(또는 끔대타령)이라는 노동요다. 지역에 따라 사설이 다양하게 바뀌는 이 민요에는 나물이 많게는 99가지까지 등장한다. 예전에는 이 노래를 익히는 것이 일종의 신부 수업이었다. 전통사회에서 산·들나물을 뜯거나 가족의 식생활을 챙기는 일은 여성 몫이었기 때문이다.

나물타령이 잊힌 만큼 우리 밥상에서 나물의 자리도 좁아졌다. 아흔아홉 가지나 됐다던 야생 나물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시장에 나오는 산나물은 원래 야생이었지만, 재배한 것이 대부분이다. 푸새(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풀)가 남새(반찬으로 쓰려고 밭에서 기르는, 곡물 이외의 농작물)로 바뀐 셈이다. 경제성을 따르자면 어쩔 수 없는 변화지만, 맛을 따지면 아쉽기 그지없는 변질이다.

이런 시류의 변화를 거슬러 야생에 가까운 나물을 키우는 데 인생을 걸고 23년째 매진하는 사람이 있다. 깊은 산중에서 그 나물들로 요리를 개발해 음식점도 운영한다.

지난달 21일 그 산에 찾아갔다. 대표 음식인 산약초 샤브(1인 2만원, 2인 이상 가능)에는 51가지 나물·나무·버섯으로 만든 음식이 올라왔다. 버섯 4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59만5041㎡(18만 평)의 숲에서 키우거나 저절로 자란 것들이다. 나물은 계절 따라 더 늘어나기도 한다.

핵심 재료는 긴 사각접시에 담겨 나온 싱싱한 남새·푸새·버섯 21가지다.

머위, 석잠풀(초석잠) 순, 느타리버섯, 왕고들빼기, 돌미나리, 느티만가닥버섯(흰색), 참죽(가죽) 순, 곰취, 겹삼잎국화(키다리꽃) 잎, 황금팽이버섯, 당귀 잎, 두메부추, (자색)참나물, 섬쑥부쟁이(부지깽이나물), 느티만가닥버섯(갈색), 파드득나물(반디나물/시장에서는 참나물로 판매), 재배한 삼백초(멸종위기 야생식물 Ⅱ급)·(산)방풍·어수리·엉겅퀴 잎, 장식용으로 잘라 나물에 올린 파프리카.

나물

나물

이걸 익혀 먹는 국물은 엄나무·오가피나무·헛개나무·당귀·천궁·황기·감초·골담초 등 8가지 약재를 8시간 달인 물에 9가지 채소 달인 물을 섞고 천일염으로 간을 한 진국이다.

반찬은 가시오가피·잔대 순과 일당귀 잎 묵나물, 산마늘(명이)·두메부추·고추냉이 잎 장아찌, 섬쑥부쟁이 나물, 오이 양파 겉절이, 멸치 꽈리고추 볶음, 배추김치, 열무 얼갈이 물김치. 거기에 얼려서 얇게 썬 한우 등심(1인 100g)이 함께 나온다.

처음 나온 국물은 당귀 향이 두드러지고 감초 맛이 나서 한약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나물·버섯·고기를 한 가지씩 데칠 때마다 새로운 향과 맛이 가미되고, 소고기 맛까지 얹히면 향기롭고 구수하고 달곰해져 오묘한 맛을 낸다. 식성에 따라 좋고 싫음이 분명하게 갈릴 이 음식은 채식 성향인 사람에게는 별천지와 같을 듯하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기를 추가 주문해 나물을 조금씩 곁들여 먹으면 맛의 신천지를 경험할 수도 있겠다.

식사는 약초밥(3000원)을 시켜 먹거나 남은 국물에 칼국수(3000원)·만두(6000원)를 추가로 주문해 끓여 먹을 수 있다. 참죽나물 전이나 비빔밥(각 1만원)도 흔치 않은 별미다.

이곳은 충남 금산군에 있는 ‘서대산 약용자연휴양림’ 안에 2013년 3월 문을 연 산약초 전문 음식점 ‘솔내음’이다. 서대산(904m)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휴양림은 이 산 정상에서 서북으로 뻗은 능선의 큰 바위절벽 아래 펼쳐진 해발 250~750m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크기를 가늠해보려고 휴양림 전경이 건너다보인다는 앞산 광대산(626m) 7부능선의 제2봉에 올랐다. 거기서도 북쪽 일부는 보이지 않았다. 59만5041㎡(18만 평)의 임야는 생각보다 넓었다.

그 숲의 3분의 1 면적에서 채소와 산약초를 키운다. 나무 밑에서 수풀과 섞여 저절로 자라는 것도 많다. 겨울에도 생나물을 쓰려고 4297㎡(13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운용하고, 주인이 나물로 즐겨 먹는 오가피나무만을 키우는 외부 전답도 1만3223㎡(4000평)가 있다. 생산 품목은 50여 가지, 생산량은 8t에 달한다. 그걸 생으로 또는 저장(삶아 말리거나 물 섞어 급랭)·가공(장아찌)해 사계절 내내 30가지 안팎의 나물이 오르는 상을 차린다. 여분은 판매도 한다.

휴양림 안에는 숲속의 집(펜션), 나무오두막(8월 2~3동 준공 예정), 나물 가공장 3967㎡(1200평)와 판매장, 관상식물 재배 유리온실, 실내외 교육장, 잔디광장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고3 때 받은 병아리 103마리로 시작

주인 김창현(구명 영식·60)씨는 1997년 이곳을 매입했다. 생산·가공·판매, 교육과 잔치·휴식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숲속 농장 겸 종합 휴양센터를 조성하려는 마스터플랜은 기간을 23년으로 잡았다. 올해가 완성의 해다.

시작은 103마리의 병아리였다. 농업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978년 그는 양계장으로 현장실습을 다녔다. 실습을 마칠 때 주인은 수고했다며 병아리 한 상자를 줬다. 그걸 키우다가 양계장을 시작했다. 19년 동안 닭을 키우면서 1982년부터 닭과 달걀 유통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농사꾼이 장사꾼이 되지 않으면 농사지어 남 좋은 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산해 직접 유통하자. 이 생각은 이후 그의 삶의 방식을 결정했다. 1988년에는 수퍼마켓을 차려 사업영역을 종합식품유통으로 넓혔고, 곧이어 영계백숙 식당을 겸업했다. 6년 뒤에는 땅을 빌려 잔치타운과 예식장 사업을 시작했다. 예식장은 잘됐지만 새로운 꿈이 그를 흔들었다. 푸르른 숲에 둘러싸인 잔디광장에서 치르는 영화 같은 결혼식이다. 드넓은 산을 매입한 이유다.

23년 뒤 그의 꿈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멋진 결혼식이 아니라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산약초 전문 음식점이 된 것이다. 휴양림 매출이 한 해 8억원이다. 5억5000만원을 ‘솔내음’에서 올린다. 나머지는 가공나물 판매 수입이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