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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50대에 요리와 사진으로 오랜 꿈 이룬 언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8)

며칠 전, 반가운 메일이 도착했다.

“선생님, 지중해 샐러드 책 증쇄한대. 11쇄네!”

메일 알림음이 울렸을 때, 마침 시우 언니가 옆에 있었다.

“어머나. 좋은 책인 건 맞으니까요. 그때 어떤 마음으로 매일 왕복 네 시간이나 걸리는 데까지 촬영하러 갔던 건지.”

며칠 전, 『지중해 샐러드』가 11쇄를 찍는다는 메일을 받았다. 시후 언니는 그 소식을 듣고 감격하며 목포 사투기가 남은 특유의 목소리로 말했다.[사진 pxhere]

며칠 전, 『지중해 샐러드』가 11쇄를 찍는다는 메일을 받았다. 시후 언니는 그 소식을 듣고 감격하며 목포 사투기가 남은 특유의 목소리로 말했다.[사진 pxhere]

시우 언니는 6년 전 나온 『지중해 샐러드』가 11쇄를 찍는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하며 목포 사투리가 남은 특유의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또 한 권의 졸저 『지중해 요리』와 함께 출간한 첫 요리책이라 더욱 감개무량했다. 유행의 주기가 빠른 한국에서 묻히지 않고 오랜 시간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해 서울로 온 시우 언니도 요리책 스태프로 참여했다. 언니는 그때가 인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된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7년 전 여름, 매일 아침 일곱 시면 편집자의 경차에 산더미 같은 조리도구와 식재료를 쌓아 올려 연희동을 출발했다. 우리는 광화문의 한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던 시우 언니를 태우고 아침 출근 러시 아워의 혼잡한 틈바구니에 섞여 경기도 광주에 있는 사진 스튜디오까지 3일을 꼬박 오갔다.

시우 언니와 나의 공통점은 운전을 못 한다는 것. 누군가 스튜디오가 있는 산속까지 차로 데려다주지 않으면 우리 두 사람은 정처 없이 헤매다 미아가 됐을 거라며 지금도 우스갯소리를 한다. 지중해의 자연 느낌을 재현하려고 편집자와 겨우 찾아낸 스튜디오였기 때문에 요리 팀과 스타일리스트 팀 모두 촬영을 위해 필사적으로 출퇴근했다.

아침 아홉 시에 시작된 촬영은 새벽 두 시까지 이어졌다.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타협하지 않는 사진가와 편집자 사이에서 스태프들은 초췌해져 갔다. 시우 언니는 집에서 기다리는 남편이 걱정한다며 서울행 막차 버스를 타러 홀로 스튜디오를 뒤로 한 날도 있다.

“버스에 탔더니 피곤했는지 웩웩 헛구역질을 했지 뭐야.”
다음 날 이른 아침, 시우 언니는 차에 타자마자 아무 일도 아니란 것처럼 말했다.

시우 언니와는 일본어 수업이나 아들의 악기 연주회로 교류가 있던 엄마들 모임을 통해 알게 됐다. 원래부터 요리를 좋아해 여러 요리교실에 다니던 언니가 연희동 요리교실에 다닌 것도 벌써 십 년이 지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2층에서 그럭저럭 요리교실을 운영하던 곳에 나타난 시우 언니의 모습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좀 지켜볼 요량이었던지 처음에는 말수도 적고 친한 친구와 함께여도 홀로 묵묵히 요리교실을 즐긴 뒤 돌아가는 듯한 인상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삼 년째가 되던 봄, 『지중해 요리』와 『지중해 샐러드』 요리책 촬영이 잡혀 시우 언니에게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시우 언니와는 일본어 수업이나 아들의 악기 연주회로 교류가 있던 엄마들 모임을 통해 알게 됐다. [사진 pixabay]

시우 언니와는 일본어 수업이나 아들의 악기 연주회로 교류가 있던 엄마들 모임을 통해 알게 됐다. [사진 pixabay]

“제가 해도 되는 거예요? 재미있어 보이니까 해볼게요.”
언니는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에세이를 낸 경험은 있지만 요리책은 처음이어서 나의 긴장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요리교실에서 만나는 언니에게 요리를 전공하는 딸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았고, 지중해 요리나 스페인 요리와 친숙하지 않은 데도 주방에 언니가 함께 있어 주면 안심이 되곤 했다.

첫 요리책이 출간되고 계절이 한 바퀴 돌았다. 한 달에 한 번 수업이 있는 날이면 시우 언니는 등에 작은 배낭 가방을 메고 왔다.
“뭐예요, 그건? 가방에 뭐가 있어요? 보기보다 무거울 것 같은데.”

“카메라예요. 하하하하하. 카메라 샀어요.”

달에 한 번인 수업이라 시우 언니는 다음 수업과 사이에 다른 요리교실이나 카메라 강좌 등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배웠다. 언니는 어느 정도 요리를 배운 뒤 요리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러다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잘 찍고 싶어서 사진 기술을 배우려고 신문사가 주최하는 강좌를 들었다. 곧이어 사진 동료가 생기자 주말에도 여러 지방으로 출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시우 언니는 연희동에 올 때 꼭 그 카메라를 들고 와서 요리교실 정경이나 완성된 요리를 향해 연방 셔터를 눌렀다. 렌즈에 담긴 요리와 나의 표정, 수강생의 웃는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시우 언니 사진은 정말 근사해요. 재능이 꽃핀 느낌이야. 근데 요리 사진 톤이 조금 노랗게 보여요.”
시우 언니는 진심으로 의견을 전해도 농담으로 되받아친다.

“선생님이 노랗게 보인다고 하니까 진짜 그렇네요. 좀 연구해볼게요.”

그 이후 언니의 요리 사진에서 노란 끼가 사라졌다. 시우 언니의 사진 솜씨가 능숙해질수록 언니의 행동반경도 넓어졌다. 요리 블로거 동료와 교류가 많아졌고, 사진이 좋다며 여러 레스토랑에서 블로그에 홍보를 부탁해오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급하게 어시스턴트 일을 부탁해도 휴대폰 메시지로 알겠다는 한마디면 용건이 끝났는데, 점차 시우 언니의 스케줄에 맞춰 촬영과 행사 일정을 정하게 되었다.

“선생님, 정말 미안한데 그날 요리 블로거 만나러 기차 타고 춘천까지 가야 해요.” 시우 언니는 나처럼 운전면허가 없는 것도 아닌데, 카메라로 터질 것 같은 작은 가방을 등에 메고 매일같이 바쁘게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시우 언니의 사진 솜씨가 능숙해지면서 언니는 요리 블로거 동료와 교류가 많아졌고, 사진이 좋다며 여러 레스토랑에서 블로그에 홍보를 부탁해오기도 했다. [사진 pixnio]

시우 언니의 사진 솜씨가 능숙해지면서 언니는 요리 블로거 동료와 교류가 많아졌고, 사진이 좋다며 여러 레스토랑에서 블로그에 홍보를 부탁해오기도 했다. [사진 pixnio]

몇 년 전 서울시가 주최하는 돈의문 프로젝트로 일 년간 오픈 클래스를 요리교실과 동시에 운영하게 됐다. 스태프가 필요해 곧장 시우 언니에게 전화해 내용을 설명했다. 서울시에서 공간만 제공하고 음식점 영업을 허가하지 않아 커피 한 잔도 팔 수 없지만, 재미있는 행사이니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때마침 연희동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나는 연희동과 광화문을 매일같이 오갔다. 근처에 살던 시우 언니도 조리도구와 식재료를 넣은 천으로 된 캐리어 카트를 달그락달그락 끌면서 걸어 다녔다. 물론 언니의 소중한 카메라는 등에 멘 가방이 들어 있는 채였다.

지금은 지나 가버린 시간. 시우 언니를 비롯해 연희동 요리교실로 이어진 다양한 사람의 이해와 협력으로 즐겁게 일해올 수 있었다. 애제자 은하, 캐나다로 떠난 현정, 그리고 소연, 나리까지. 음식을 통해 새로운 만남이 생기고 지금도 이어져 있는 관계. 순수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고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보는 열정, 거기서 얻어지는 만족감. 역시나 요리교실을 계속 운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왜 젊은 제자를 안 두는 거예요? 나 같은 아줌마보다 젊은 사람들을 키워야죠.”

“흐음, 왜 그럴까요? ‘제자로 받아주세요!’ 하는 사람도 없고, 일단 요리를 전공한 젊은 친구를 어떻게 모집하면 좋을지도 모르겠고. 내 성격 탓인가?”

항상 든든한 시우 언니는 나보다 두 살 위다. ‘언니!’ 하고 부르고 싶지만 오랜 세월 쌓아온 사제 관계라 갑자기 그렇게 친숙한 호칭으로 부르기 힘들다. 애제자 은하와의 관계처럼 ‘바람이 빠져나갈 만큼의 틈’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조건이라고도 생각한다. 25년이나 지내온 한국 사회에서 지금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이른바 ‘언니, 동생’이라는 호칭이다. 둘은 때로는 서로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단단히 팔짱을 끼는 관계기도 하다. 시우 언니와 그런 사이가 되면 더욱 돈독해질 수 있을까 기대도 되지만, 이제 와 ‘언니~’라고 허물없이 대하기는 어렵다. 요리의 세계에서 성공하길 꿈꾸는 청년을 모집하라는 시우 언니의 조언은 가끔 뇌리를 스치지만, 촬영 일정이 잡히면 여전히 시우 언니에게 먼저 도움을 청한다.

돈의문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시우 언니는 오랜 꿈이었던 ‘원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만큼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냈다. 그 공간에서 음식을 통해 시우 언니다운 형태로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일을 실현하고 있다. 이십 대에 결혼해 육아하고 시부모님을 보살피느라 자기다운 일을 전혀 하지 못했던 언니는, 오십 대가 된 지금 청춘을 구가하는 중이다.

현미쌀과 올리브 샐러드 레시피

재료(4~6인분)

현미 2컵
보라색 양파 1/2개, 쪽파 4~5개, 마늘 1쪽, 파프리카 노랑, 빨강 각 1/2개
블랙 올리브 15개, 그린 올리브 15개, 방울 토마토 12개
파슬리 3큰술. 앤초비 2조각 정도
드레싱: 레몬즙 1개분, 올리브 오일 6큰술, 소금 1/2큰술, 후춧가루

만들기

1. 쌀 2컵당 물 6컵을 넣고 냄비에 넣어 끓인다.
2. 쌀이 설익은 상태로 익으면, 채에 받혀서 찬물로 헹군다.
3. 마늘은 잘게 다지고 양파, 쪽파, 파프리카는 크기 1㎝로 큐브로 자른다. 토마토는 세로로 4등분 한다.
4. 볼에 쌀과 나머지 재료를 모두 넣고 버무린다.
5. 미리 섞어둔 드레싱을 뿌려 잘 섞는다.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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