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맥주 만드는 보리와 밥 짓는 보리, 뭐가 다르지?

중앙일보

입력 2020.07.30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48) 

맥주는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인이 처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수메르인의 유적에서 맥주를 양조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린 석판이 출토됐다. 수메르인들이 재배한 보리와 밀로 빚은 술은 시카루(Sikaru)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보리로 맥주를 빚은 역사가 6000년 이상이나 된 것이다.

보리는 쌀, 밀, 옥수수, 콩과 함께 5대 식량 작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리의 사용량을 보면 맥주 재료로 사용되는 양이 동물 사료용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사진 pixabay]

보리는 쌀, 밀, 옥수수, 콩과 함께 5대 식량 작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리의 사용량을 보면 맥주 재료로 사용되는 양이 동물 사료용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사진 pixabay]

엄밀히 말하면 맥주의 주재료는 보리가 아니라 맥아(Malt)다. 맥아는 보리의 싹을 틔운 후 열을 가해 구운 것이다. 맥주는 곡물의 당을 효모가 섭취하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만들어진다. 효모는 보리 속에 들어 있는 전분을 소화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당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보리를 맥아로 만들면서 전분이 당으로 분해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맥아는 알코올의 원료가 되는 만큼 기본적으로 맥아가 많이 공급될수록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가 만들어진다. 또 맥아는 맥주의 풍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맥주에서 감지할 수 있는 쿠키, 비스킷, 빵, 캐러멜, 건포도, 커피, 초콜릿과 같은 맛과 향을 맥아가 만들어낸다. 이와 함께 맥아의 색상은 완성된 맥주의 색상과 직결된다. 어두운 색상의 맥아를 많이 사용할수록 맥주의 색상이 검은색에 가까워진다.

 맥주의 다양한 색상. [사진 황지혜]

맥주의 다양한 색상. [사진 황지혜]

보리는 쌀, 밀, 옥수수, 콩과 함께 5대 식량 작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리의 사용량을 보면 맥주 재료로 사용되는 양이 동물 사료용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쌀, 밀, 호밀, 귀리, 옥수수 등 당분을 갖고 있는 곡물이라면 무엇이든 발효시켜 술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보리가 주재료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맥주가 탄생한 지역에서 보리 재배가 용이했고, 또 다른 주요 작물이었던 밀은 주식으로서 역할을 했다는 등의 조건이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보리 자체의 특질이 맥주라는 알코올음료를 만드는 데 더없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먼저 보리에는 당으로 전환될 수 있는 많은 양의 전분이 함유돼 있다. 전분은 보리의 가장 중요한 구성물질로 건조 보리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맥주 양조의 핵심 과정인 알코올 발효가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맥아는 알코올의 원료가 되는 만큼 기본적으로 맥아가 많이 공급될수록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가 만들어진다. [사진 pixabay]

맥아는 알코올의 원료가 되는 만큼 기본적으로 맥아가 많이 공급될수록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가 만들어진다. [사진 pixabay]

특히 발아, 양조, 발효 등 맥주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효소’가 풍부하다는 점은 보리를 맥주의 주인공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효소는 화학작용을 돕는 고분자 단백질로 맥주 제조 공정에서 물질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효모가 알코올 발효를 할 수 있도록 곡물 속의 전분을 당류로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효소는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다. 수확한 보리에 수분을 더하면 보리 안에 있던 효소가 활성화해 싹이 나기 시작한다. 적당한 순간이 되면 발아를 멈추고 말리게 되는데 이것이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과 같은 것이다. 이 엿기름에 열을 가해 구운 풍미와 색깔을 부여하면 맥아가 완성된다. 맥아에 뜨거운 물을 부어 물에 당이 녹아 나오게 하는 과정에서도 효소는 역할을 한다. 효소의 작용으로 맥아 속 전분이 단순당으로 분해돼 효모가 섭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와 함께 당이 물에 녹아 나온 후 여과 과정을 거칠 때 보리에 붙어있는 겉껍질은 여과대 역할을 하면서 맥즙과 다른 불순물을 분리한다. 다른 곡물과 달리 보리의 겉껍질은 타작하는 과정에서도 낟알에 붙어있다. 보리 중에서도 탈곡 과정에서 껍질이 잘 떨어지는 종류가 있는데, 이는 밥을 지어 먹을 때 활용하는 쌀보리로 맥주용으로 쓰이는 보리와 다르다.

옥수수나 쌀의 경우 자체 효소가 없기 때문에 발효를 시키기 위해서는 효소를 추가로 사용해야 하고, 여과 지지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겉껍질도 없다. 밀, 호밀 등을 맥주 양조에 사용할 때도 겉껍질을 추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보리를 다른 곡물과 비교해 완벽한 양조 곡물로 평가한다.

맥주 양조용 곡물로 보리만큼 효율성과 효과성을 겸비한 곡물은 없지만 다른 곡물들도 조연으로서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보리의 토대 위에 밀이나 귀리, 호밀을 맥주 양조에 활용하면 비단과 같이 부드러운 질감이 나타나고 두툼한 거품이 오래 유지된다. 또 귀리는 맥주의 바디감이 도드라지게 한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죽을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쌀, 전분, 옥수수 같은 것을 넣으면 맥주의 맛이 가벼워진다. 흔히 마시는 대기업 맥주에는 보리와 함께 이런 부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보리 맥아 100% 맥주에 비해 옅은 맛이 완성된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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