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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의 퍼스펙티브

중국·이스라엘 정책 빼고 다 오바마 시대로 회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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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 바이든의 대외정책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조 바이든(77)이 도널드 트럼프(74)를 꺾고 제46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바이든은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올해로 희수(喜壽)를 맞은 바이든의 이력은 비교적 단순하다. 나이 서른에 델라웨어 주(州)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내리 36년간 워싱턴에서 의정 활동을 했다. 이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파트너로 8년 간 부통령을 지냈다. 1988년과 2008년 대권에 도전했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쓴잔을 마셨다. 본선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무대 폭넓은 경험은 강점이나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인식은 한계 #동맹 중시하고, 다자주의 질서 신봉 #시진핑과 특수 관계, 자산이자 부채

바이든은 자타가 인정하는 외교통이다. “나는 현존하는 주요국 최고지도자들을 모두 알고 있고, 그들도 나를 알고 있다”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오바마가 그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것도 국제 문제에서 자신의 경험 부족을 보완하려는 목적이 컸다. 바이든은 미·중이 수교한 79년 베이징에서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을 만나고,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면담하는 등 30대 때부터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만난 60여개 국 지도자 150명의 명단은 그의 이력서나 마찬가지다. 리스트에는 9명의 이스라엘 총리, 6명의 옛 소련 및 러시아 최고지도자, 5명의 독일 총리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바샤르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 있다. 바이든은 2001년 6월부터 1년 반, 2003년 1월부터 2년간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활약하며 대중에 국제 전문가 이미지를 각인했다.

특히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習近平)과는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시진핑이 부주석이고, 바이든이 부통령이었던 2011년 초부터 1년 6개월 동안 두 사람은 양국의 2인자 자격으로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8번 만났다. 통역만 대동한 채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며 개인적 친분을 다졌다.

조 바이든

조 바이든

미·중 신(新)냉전 시대를 맞아 시진핑과의 특수 관계는 바이든에게 자산이면서 부채가 되고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을 ‘중국의 꼭두각시’로 비하하며 중국을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자신과 바이든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있다.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바이든을 겨냥한 선거 전략 성격이 강하다. 그렇게 많이 만났으면서도 시진핑과 중국의 감춰진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비난이다. 이를 의식한 바이든도 얼마 전부터 시진핑을 ‘악한(thug)’이라고 부르며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인권 탄압, 불공정 무역 관행을 규탄하는 등 시진핑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오랜 외교 활동 경험에 비해 국제 문제에 대한 바이든의 식견이나 판단력은 별로라는 지적도 있다.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 바이든은 미국의 무력 개입에 반대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침공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오바마의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에는 반대했다.

바이든의 대외정책 구상과 공약

바이든의 대외정책 구상과 공약

뒤늦게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후회한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는 2014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바이든은 지난 40년 동안 거의 모든 주요 외교 정책이나 국가안보 이슈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꼬집었다.

바이든은 미 동부 출신의 전통적 백인 엘리트들처럼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로 분류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세계를 끌고 가는 미국의 리더십을 중시하는 초당적 주류 진영에 속해 있다. 바이든은 동맹을 중시하고, 다자주의를 신봉한다. 그가 당선되면 미국의 외교 노선은 중국과 이스라엘 정책 등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오바마 이전으로 회귀할 것으로 보인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이란핵협정(JCPO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세계보건기구(WHO) 등 트럼프가 탈퇴하거나 파기한 국제기구와 국제 협정에 복귀할 것이 확실시된다. 내달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의 대외정책 공약이 공식 발표될 예정이지만, 그는 이미 후보 토론회, 언론 회견, 싱크탱크 토론회 등을 통해 자신의 대외정책 구상과 공약을 밝힌 바 있다.〈표 참조〉

바이든의 대외정책 구상과 공약

바이든의 대외정책 구상과 공약

국제 문제에 대한 바이든의 인식과 시각은 구시대적이란 지적도 있다. 바이든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국제질서와 지금의 국제질서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21세기의 ‘시황제’로 등극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종신 집권이 현실화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비(非)민주적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바이든의 대외정책 구상과 공약

바이든의 대외정책 구상과 공약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집착하는 바이든의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외정책에서도 ‘신(新)사고’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중심의 중동 정책을 재검토하고,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필요한 협력은 하고, 동맹이라도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 터키, 헝가리 등은 다른 동맹국들과 구별하고,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을 반영해 군을 혁신하는 등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바이든은 달라진 세상의 변화를 대외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까. 물론 그가 이겼을 때 얘기다.

주한미군 철수 ‘노’, 한·미 동맹 강화 ‘예스’

바이든은 북한과의 외교 협상에는 찬성하지만, 트럼프 스타일의 톱다운(top-down) 방식 정상 외교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실질적 성과 없이 독재자를 정당화해 주는 역효과만 낳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구체적 단계를 밟는다는 전제 하에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북한과 외교 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김정은과 만날 수도 있지만, 트럼프처럼 사진 찍기용이 아니라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 전략의 일환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동맹국 및 중국과의 공조가 중요하다고 바이든은 말한다. 트럼프는 대북 협상 과정에서 아시아 동맹국들, 특히 그중에서도 한국을 소외시키는 잘못을 저질렀다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서울-워싱턴 관계의 강화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외교·안보 분야에 관한 뉴욕타임스의 질문에 답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예스(Yes·예)’ 또는 ‘노(No·아니오)’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군사력을 이용해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나.
“예스. 무력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을 보호하고, 목표가 분명하고 달성 가능하며 국민의 동의가 있을 때 사려 깊게 사용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에 반한다.”
김정은과의 일대일 외교를 지속할 생각인가.
“노.”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강화할 생각인가.
“예스.”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있기 전에는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인가.
“예스.”
주한미군 철수를 시작하는 데 동의할 것인가.
“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