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몽고메리 장군이 최고로 친 지휘관은 ‘똑·게’

중앙일보

입력 2020.07.29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4)

인류는 유사이래로 모든 사물과 현상에 등급을 매겨 서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별하고 대우를 달리해 왔다. 대부분 부정적 결과를 낳았지만. 로마의 계급사회가 그랬고,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그렇다. 우리 역사에서도 엄격한 사농공상의 신분 제도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계급과 등급은 인간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등급에 따른 차별은 인류의 추구 가치인 평등과 자유, 민주에 역행하지만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분류와 등급 매김이 반드시 나쁜 것인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긴 하다. 바로 그러한 분류와 등급매김을 통해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던 독일의 롬멜을 물리친 영국의 몽고메리 원수는 1차세계대전 당시 적국의 군인이자 군사전략가였던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을 들어 우수한 지도자의 자질을 강조한 바 있다. 몽고메리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지휘관의 등급을 얘기했는데 이는 사람의 등급을 매겨 반면교사의 지혜로 삼은 대표적 사례이다. 잘 알다시피 지휘관의 유형으로 똑똑함과 멍청함,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조합해 ‘똑·부’, ‘똑·게’, ‘멍·부’, ‘멍·게’로 나누어 어떤 리더가 바람직한지 강조한 바 있다.

고양이 사회에도 서열이 있다. 사람의 사회도 이런저런 등급을 매겨 차별하고 별도의 대우를 한다. [사진 한익종]

고양이 사회에도 서열이 있다. 사람의 사회도 이런저런 등급을 매겨 차별하고 별도의 대우를 한다. [사진 한익종]

인생2막, 직장생활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리더가 지녀야 할 자질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 몽고메리의 지휘관 등급 매기기에 착안해 인생 2막, 직장생활 할 때 돈을 벌고 인생 3막인 은퇴 후 생활에 쓰는 행위에 관해 사람의 등급을 생각해 봤다.

우리 옛 격언에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라’라는 말이 있다. 이 격언에 빗대 나는 사람의 유형을 ‘개·정’, ‘개·개’, ‘정·정’, ‘정·개’로 나누어 봤다. 개처럼 번다는 얘기는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근면 성실히 번다는 긍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정승처럼 쓴다는 말은 품위와 격조를 갖춰 널리 이롭게 돈을 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버는 입장에서 정승처럼, 쓰는 입장에서 개처럼은 조금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정답은 없으니 나름대로 판단해 보시길. 어쨌거나 ‘개·정’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부류이며, ‘개·개’는 개처럼 벌어 개처럼 쓰는 부류이다. ‘정·정’은 정승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부류이고, ‘정·개’는 정승처럼 벌어 개처럼 쓰는 부류를 이른다. 정승처럼 벌어 개처럼 쓰는 부류가 최악의 등급임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소위 금수저로 태어나, 혹은 대박 나는 아이디어로 정승처럼 벌어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호의호식하는, 개처럼 쓰는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자기가 벌어 자기를 위해 쓰는 걸 뭐라고 탓할 마음도 없고 이유도 없다. 다만,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회한의 말을 남기는 수많은 유명인사의 사례를 보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깊은 감동을 전한 서울 명동의 명품수선가가 있었다. 그는 어렸을 적 서울로 상경해 명동 일대에서 구두닦이를 시작으로 구두수선을 배웠고, 그 후 명품 수선에 각별한 실력을 발휘해 이 나라 내로라하는 사람의 명품을 감쪽같이 복원하는 명인으로 등극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는 많은 돈을 모았고 명동에 자기 사업장을 내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그동안의 고생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재산을 지켰겠지만 그는 자신의 고향 대학에 12억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했다. 자신처럼 배우고 싶어도 학비가 없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후손에게 써 달라고. 그 소식을 듣고 솔직히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나 같으면 어땠을까? 아마 나 같았으면 개처럼 벌었으니 나만을 위해 개처럼 쓰는 ‘개·개’가 아니었을까 하고. 그분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라고 한 옛 격언에 딱 맞는 삶을 사는 분이다.

인생 후반부를 사는 내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도 개처럼 번 것은 맞는 것 같다. 열심히 직장생활 했으니. 정승처럼 쓸 수 있는 경우도 가능하니 더욱 다행이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해 명품수선 장인처럼 거액을 기부할 수 있지는 않지만, 신이 내게 주신 달란트를 이용해 이웃을 위해, 요양보호소에 계신 어르신을 위해 재능기부 등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푸르메재단이 매년 시행하는 가수 션과의 마라톤 기부행사를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버츄얼런이라는 행사로 대체했다. 버츄얼런 완주 후 메달을 걸고 기념촬영. [사진 한익종]

푸르메재단이 매년 시행하는 가수 션과의 마라톤 기부행사를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버츄얼런이라는 행사로 대체했다. 버츄얼런 완주 후 메달을 걸고 기념촬영. [사진 한익종]

며칠 전 푸르메재단에서 매년 진행하던 가수 션과의 마라톤 기부행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버츄얼 런이라는 개별 온라인 확인 달리기로 전환돼 행사가 치뤄진 바 있다. 자신이 장소·구간·시간을 정해 달리거나 걸은 후 결과 영상을 제출하면서 장애환아 치료, 재활기금으로 3만6500원을 기부하는 행사였다. 아내와 함께 걸으며 느낀 ‘개·정’의 기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열심히 걸어서 좋은 일에 돈을 썼으니. 걷기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노인 기거 시설에 노력 봉사를 했었다. 적은 돈이지만 기부도 하고, 돈은 아니지만 내 재능을 이용해 노력 봉사를 했으니 정승처럼 쓴 하루였던 것 같다. 누구나가 정승처럼 인생 후반부를 살 수 있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인생 후반부, 몽고메리의 분류대로 리더로서 ‘똑·게’로 사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라’ 라는 우리네 격언에 맞게는 살 수 있겠다. 아직도 인생 후반부를 자기만을 위해 개처럼 쓰면서, 그런데도 늘 뭔가가 부족하고 못마땅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깊게 생각해 보자.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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