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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제사만큼은…" 고집하던 안동 양반댁도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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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1)

우리의 제사문제는 민감하고 까다로운 이야깃거리다. 지난주에 올린 글에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고 찬반을 말씀해 주셔서 놀랐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우리 민족의 예문화다. 나는 제사도 역사와 전통, 문화를 대표하는 한 부분이지만 그것에 변화를 주어 그렇게도 살아보니 괜찮더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직도 종갓집에선 한 달에 한 번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다. 많은 어머니들이 ‘내 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고 싶다’라고 하신다. [중앙포토]

아직도 종갓집에선 한 달에 한 번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다. 많은 어머니들이 ‘내 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고 싶다’라고 하신다. [중앙포토]

특히 안동은 유교 문화의 메카라 아직도 종갓집에선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다. 밤늦은 시간에 홀로 지내는 사람도 있다. 70대가 넘어선 많은 어머니의 한결같은 마음이 ‘내 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고 싶다’라고 한다.

백 년도 안 된 시간에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 공동체 문화였던 우리네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이 멀어졌는지 서로에게 관심을 안 주고 살아가는 홀로 일상이 되어버렸다. 관심과 배려가 오히려 흠이 되는 세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낀 최첨단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하고 흔들고 있다. ‘모일 모시에 ㅇㅇ님의 제사를 모셨으니 확인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신호로 대신하는 게 아닐는지 걱정이다.

얼마 전 책모임을 통해 ‘호모사피언스’와 ‘에이트’를 감동으로 읽었다. 변화도 시대를 따라가는 문화의 한 모습이란 말이 이해가 간다. 세상이 급변하고 그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를 알려준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것에게 지배받기보다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인간의 감성, 사랑, 소통 등 인문학적 교육을 우선으로 꼽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무리 삶이 변해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인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 속에 어울려 사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더 행복감이 크고, 우리가 점점 사람과 어울리기를 멀리하는 사이에 가족과 공동체는 해체되고 세상 속에서 점점 더 외롭게 살다 죽어간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아 밑줄 친 내용이다.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인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 속에 어울려 사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더 행복감이 크다. [사진 pexels]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인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 속에 어울려 사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더 행복감이 크다. [사진 pexels]

삶의 한 부분인 제사의 모습이라도 변화시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즐거운 시간, 행복한 시간으로 바꿔 보면 인간이 기계와 다른 모습으로 어울려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좁은 소견이다. 정치·경제·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해도, 가족과 함께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움직이면 먹고 사는 건 해결된다. 사회의 소속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등만 잘 지켜도 그럭저럭 잘 사는 비결이다.

오랫동안 제사문제로 옥신각신하던 안동 권씨 양반 집안인 앞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밤중에, 먹을 이도 없는 제사상을 차리고 혼자서 절을 하는 모습도 보기 싫다며, 부인은 제사가 끝나고 나면 늘 투덕거리셨다. 제사 문제만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던 남편이 변했다. 얼마 전 허리 수술로 힘들어하는 부인을 위해 당신 살아있을 때 큰 결정을 내리셨다. 명절 차례는 지내지만 여러 번 지내던 제사는 한 번으로 모아서 치르기로 한 것이다.

제삿밥 먹으러 오라 이른 아침에 부른다. “마지막으로 잔 올립니더~ 가족의 평화를 위해 그리하였으니 용서 하시소”라고 고하는데 울컥했다며 그래도 내심 좋아하신다. 밤 12시에 지내던 것을 저녁 7시로 바꾼 것도 자랑한다.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아닌가. 죽기 전에 해결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기운이 난 목소리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문제로 투덕거린다. 남편은 “고생만 하다가 일찍 돌아가셔서 평생 가슴에 응어리로 남은 엄마 기일로 합치자”하고, 부인은 “난 시모님을 못 뵈었으니 잘 모른다. 장날이면 도포자락 휘날리며 다녀오셔서 엿가락 건네주시며 나를 예뻐해 주신 시아버지가 더 생각나니 그날에 합치자”며 다른 의견을 낸다.

나는 훈수를 둔답시고 말했다. “그거야 간단하지요~두 분이 가위 바위 보를 하던가, 사다리 타기를 하던가. 그리고 아무 날이면 어때요? 이전까진 따로따로 오시다가 이제부턴 손잡고 같이 오실건데요 뭐. 그 문제는 서로 져 주는 게 이기는 거네요~~호호호.”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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