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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검찰은 수사심의위 권고를 조건 없이 수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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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진명 작가

김진명 작가

법이 있는 한 누구나 세 발짝만 걸으면 범죄자다. 난마처럼 얽힌 수많은 법이 인간의 모든 언어와 행동을 규제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 어떤 행위를 범죄로 지목할 수도, 이해하고 덮어줄 수도 있는 기소독점은 최상위의 권력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검찰이 기소를 전담하므로 오로지 검찰의 시각에 의해서만 선악이 결정된다.

국민 눈높이 심의위 권고 무시하면 #검찰의 자율 개혁 기회 날아갈 것

하지만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현대사회는 유죄와 무죄 사이의 경계가 칼로 두부 자르듯 선명하지 않다. 검찰의 시각만으로 범죄자를 규정하면 필연적으로 국민의 정서와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한 예로 복지부동 공무원은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으니 검찰에는 깨끗한 공직자이지만, 국민에게는 직무유기를 일삼는 세금 도둑이다. 반면에 까다로운 민원에 앞장서는 공무원이나 국가 경제를 이끌어온 기업인은 국민이 고맙게 받아들이지만 이해 상충으로 검찰에 불려 다닐 공산이 높다. 그런데도 검찰에만 기소권을 주는 것은 국가의 형사소추가 개인의 인권과 삶에 치명적인 만큼 고도의 전문 지성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검찰의 기소독점은 부정과 긍정의 경계선 위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검찰이 내놓은 개혁책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다. 이 위원회는 범죄의 규정에 있어 국민 정서를 소중히 받아들이고 정치 검찰의 구태로부터 완전히 탈피하겠다는 검찰의 뼈저린 다짐이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법조인 외에도 학계·언론계·시민단체·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됐다. 심지어 이 위원회에의 부의를 결정하는 시민검찰위원회는 주부·택시기사·우편배달부 등 생활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검찰이 이 위원회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검찰 주변에서 나오는 발언은 지극히 위태롭다. 위원회의 권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원들의 법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쏟아내기 일쑤이다. 국민의 상식과 정서를 폭넓게 수렴하고자 검찰 자신이 비법조인으로 구성한 위원회를 이렇게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배심원 재판제도가 보통사람들의 상식을 검사나 변호사의 전문적 지식보다 귀중하게 받아들임으로써 협소한 법조의 시각을 극복하고, 법전으로는 볼 수 없는 진짜 삶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을 배울 일이다.

더욱이 검찰은 위원회가 압도적 다수로 결정한 권고조차 거부할 조짐을 보인다. 검찰이 심의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이는 의도치 않게 옥상옥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한 목적으로 보아야지 검찰이 입맛에 따라 위원회 권고를 받거나 말거나 하겠다는 규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런 뜻이라면 있으나 마나 한 이 위원회는 권력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검찰이 경찰수사권 독립의 격랑을 피하려 급조한 눈가림에 불과하다.

필자는 검찰 수뇌부가 사안을 가리지 않고 위원회의 권고를 조건 없이 수용하는 것만이 개혁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길이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검찰이 유·불리를 따져가며 받고 안 받는 행태를 보인다면 위원회의 권고가 나올 때마다 사회는 두 편으로 쫙 갈라져 정쟁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권위를 잃은 위원회는 해체되고 자신이 만든 위원회를 자기 손으로 붕괴시킨 검찰에 차후 자율 개혁의 기회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건 검찰 자신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외부 인사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검찰의 수사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검사들이 빠져들기 쉬운 ‘내가 곧 법’이라는 위험한 무의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죽비이기 때문이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검찰이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고자 탄생시킨 민주 사법의 정화인 만큼 초심을 지켜 소중히 키워나가기 바란다.

김진명 작가